입학식

"인적자원 양성 아카데미 한국지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입학식의 진행을 맡은 22대 학생회장 연호와입니다."


빛이 유리돔에 닿아 산산이 부서지는 한가운데. 단상 위에 올라 있던 그가 마이크를 향해 식의 시작을 알리는 음성을 뱉었다.


단단한 목소리가 너른 공간을 따라 울리자, 실내 광장에 모인 신입생들은 일사불란하게 흐트러진 대열을 정리했다. 깔끔하게 맞춰입은 교복이나, 유난히 상기된 얼굴이 저마다 새학기에 대한 설렘을 담고 있어 보였다.

반면에 따분한 행사를 참관하게 된 재학생들은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떠 있었다. 서로 주위를 둘러보며 얼굴을 익히기 바쁜 신입생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을 훑어보며, 목에 걸리거나 재킷 주머니에 달린 학생증을 예리한 눈으로 살폈다.


"쟤네가 그 쌍둥이들 맞지? 자연계 능력의 초능력자."


수군거리던 무리의 단발 머리 여학생이 맨 앞줄에 선, 똑닮은 남학생 두명을 가르켰다. 초능력자중에 쌍둥이가 드물고 자연계 능력은 희귀하기 때문에, 입학전부터 무성하던 소문을 반신반의한 물음이었다.


"맞아, 여태껏 안 알려진 게 이상한데...레벨 5와 레벨 8의 S급이야."


"그렇지? 아, 저 애 방송에 나오는 여자애잖아!"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또 누군가를 가르켰다. 무리의 학생들은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 꽤나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기에, 그 여학생의 가슴팍에 달린 학생증이 또렷히 보였다. -재학생이라면 항상 소지 해야하는 학생증은 학년마다 색이 다르며 앞면 중앙에 사진과 이름이 있고, 상단 좌측에 등급과 하단 우측에 레벨이 작게 박혀 있는 디자인으로 상대에 대한 식별이 용이하게 만들어짐.-


"누군가했더니. 곽세별이면 학생증 없이도 전국민이 알잖아."


"스카웃 돼서 유학이나 갈 줄 알았는데...-"


그들은 뒤를 휙하고 쏘아본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서야, 말꼬리를 흐리며 입을 닫았다.


막 내빈 축사를 위해 물러난 호와가 랭커들이 모여 있는 사이로 몸을 앉히자, 기다렸다는 듯 주위에서 저마다 신입생들에 대해 떠들어댔다. 학교의 아이돌로 통하는 랭커들은 평상시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았으나, 올해는 예외적이게 자리가 가득 차 북적였다. 정신 사나워 한마디가 나올법도 했지만,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적당한 호응을 섞는 게 과연 개교 이래 최초로 3학년이면서 학생회장 자리를 꾀찬 이다웠다.


"사실 우리 회장님의 관심은 따로 있잖아?"


호와 옆의 빈 의자-일부러 비워둔 듯한.-에 털석, 앉은 부회장 도로시가 친근하게 물었다. 시니어 이어를 뜻하는 보라색 바탕의 학생증이 그녀의 목에 걸려 팔랑 거렸다.


"저기 저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였지."


두명의 시선 끝에는 햇살 아래 반짝이는 베이지색 머리카락의 남학생이 있었다. 잔뜩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 주위의 파릇파릇한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었다. 작게 한숨을 쉬는 호와는 안중에도 없는지, 도로시는 어머, 실물이 훨씬 예쁘네! 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월권을 사용한 게 알려지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거야. 잘못 틀어지면...-"


"선배. 이미 우리 손을 떠난 일이잖아요?"


심각한 얼굴로 속삭인 걱정이 무색하게 그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죽을 거면 혼자 죽으라고 투덜거렸지만 미처 지우지 못한, 후배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슬슬 지겨운 행사의 끝이 가까워졌다.


"본교의 전통에 따라 선서는 입학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차출된 다섯명의 랭커 학생들이 대표로 낭독하겠습니다. 호명되는 학생은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건네받아 앞차례의 멘트를 정리하고, 다음 순서를 진행하는 호와의 지시에 맞춰 식은 일사불란하게 돌아갔다.


윤주원, 도경, 곽세별, 도원, 난기류.


학생들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시샘이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는 등 반응이 제각기 달랐는데, 마지막에서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난기류? 누구야?"


"뭐야 F급이잖아?!"


"말도 안돼!"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진 장내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도로시는 선후배 개념도 없이 이어지는 랭커들의 이의 제기에 침묵으로 대응하다 자리를 떠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꿋꿋이 계속되는 엄숙한 식순에 생각보다 금새 정숙을 되찾았다. 더한 최악의 상황도 각오했던 호와에게 이만한 잡음은 문제도 아니었다.


"-이상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정규수업은 내일부터 시작되며, 오늘까지 기숙사 입실을 마쳐주시기 바랍니다."


폐막사가 끝나자 다들 삼삼오오 모여 밖으로 나가거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반나절동안의 자유시간이 생겼으니 어떻게 시간을 때울 것인지나 '그' 새로운 랭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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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19 16:23 | 조회 : 65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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