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날 데려가


진성은 자연스럽게 윤제의 앞에 가서 앉았다.

약간 낡은 의자는 끼익, 소리를 냈다.

윤제는 입가의 미소를 천천히 지워내고 말 없이 진성을
쳐다보기만 했다.

진성또한 말 없이 마주보고 있기는 했지만 윤제와 달리 진성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한참을 말 없이 서로를 쳐다만 보다 침묵을 깨고 말을 꺼낸
사람은 윤제였다.

'' 날 데려가줘. ''

진성은 윤제의 말을 듣고서는 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진성이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대자 끽, 하고 소리가 났다.

'' 이런. 그건 좀 싫은데, 어쩌지? ''

윤제는 진성을 날카롭게 째려봤다.

진성은 그런 윤제가 재미있는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크큽..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 내가, 너를 좋지 않게 평가한다는 거 알고 있지 않나? ''

윤제는 입술을 깨물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당연히...알고 있지만... 당신이 날 데려가지 않으면... 난.. ''

'' 뭐, 내가 데려가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나? ''

진성이 살짝 비꼬는 듯한 말투로 묻자 윤제는 눈에 띄게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내 바스락 소리를 내며 윤제가 꺼낸 작은 포스트잇.

진성의 손 앞으로 곱게 접힌 포스트잇을 내민 윤제는
떨고 있었다.

윤제의 상태를 살피던 진성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포스트잇을 집어 펼쳤다.


'' 이게 뭐길래 우리 꼬마 능구렁이님께서 이렇게 떨고 계시나? ''

찬찬히 포스트잇에 적혀있는 글씨를 읽던 진성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싸늘하게 굳은 얼굴을 드러냈다.

'' 이게, 도대체 뭐지? 왜 이런걸 갖고 있었나? ''

윤제는 테이블 위에 엎드리며 울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나도 몰라... 지난 주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손님이
떨어트리고 가신 거야... ''

포스트잇에 적힌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였다.

[ 백윤제
4살 남자아이.
혈액반응 일치.
신체적 특이사항 없음.
신체적 결함 없음.
장기기능 우수.
각막, 폐, 심장 이식예정.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주의 바람.
기간 내 입양되지 않는다면 실험실로 이송 예정.
10일 이내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예정대로
10일 후 오후 2시에 처리. ]

포스트잇에 적힌 글씨체를 살피던 진성은 처음엔 예연을
의심했었지만 예연의 둥글둥글한 글씨체와는 달리
하나하나 알아보기 힘든 악필임을 보고 의심을 거뒀다.

'' 이것 때문에 널 데려가라고 하는 건가? ''

포스트잇을 다시 곱게 접어 윤제에게 돌려준 진성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대답이 없는 윤제의 모습에 진성은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윤제의 뒤로 가서 섰다.

자신의 뒤에 선 진성이 신경쓰였는지 윤제는 고개를 돌려
진성을 쳐다봤다.

'' 이 내용,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보여준 적은? ''

진성의 물음에 윤제는 말 없이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었다.

진성은 후... 하고 한숨을 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 왜 하필 이런 일에 날 끌어들이는 건지... ''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윤제는 모두 들었는지 진성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 내일이 10일 째야.. 그 쪽지를 떨어트리고 간 손님 이후로는
아무도 안 왔었단 말이야... 난 살고싶어..그러니까 부탁이야.
날 데려가줘. 제발.... ''

울 것만 같은 목소리와 눈물이 살짝 고여있는 눈은 매우
처량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도와주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로.

진성은 잘 정돈된 자신의 머리카락을 흐트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윤제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 너, 말 안들으면 파양해버릴 거다. 알아서 잘해. ''

진성은 말을 마치고 바로 휴게실을 나가버렸지만 윤제는
보이지 않는 진성의 뒷 모습을 보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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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5-18 22:43 | 조회 : 2,267 목록
작가의 말
platypus

소고기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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