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구원의 또 다른 이름(2)

놓아 줘야지. 날 떠나게 만들어야 한다. 정추권님도 무허권님도 완전한 혼자가 되어서 고독해지기 위해서는.

[당신의 속성 ‘고독’이 불안정합니다.]

시엘론도 앰버도 다 놓았지 않았나. 그 때처럼 놓고 도망치면 된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나에게 정 떨어지게 하는 건.

잘할 자신이 있는데,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데.

심장의 욱씩거림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고통이,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다.

사실…놓치고 싶지 않았다. 곂에 있어 주는 마음 한켠을 내어준 이들의 손을, 삶을 놓치는 것이 이렇게나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이럴때는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정답이지?

지금의 나는 ‘제3자의 눈’이 되고 싶은 기분이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보며 냉정하게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최후의 신의 가호가 불발합니다.]

계속해서 오는 혼탁한 감정이 내 사고를 방해하며 어지럽혔다.

“알려줘. ‘제3자의 눈’. 너의 눈에는 내가, 우리가 어떻게 보여?”

조용한 허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는 기댈 사람이 없어서 시스템에 말을 거는 자신의 처치가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대답해봐. 바보 같은 ‘제3자의 눈’아.”

내가 놀렸을 때에는 대답해주었던 ‘제3자의 눈’은 이번 만큼은 조용했다.

“야, 제3자의 눈 멍청한 놈아.”

아무말이나 좋으니까 대답해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유현이 허공을 끈질기게도 응시했다.

[멍청한 당신이 허공을 응시합니다.]

드디어 나타난 메세지 창에 유현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제3자의 눈.”

[바보 멍청이인 당신이 위대한 ‘제3자의 눈’님을 부릅니다.]

여전히 뒤끝이 아주 긴 녀석이었다.

제3자의 눈에게 할 말을 입속에 담으며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지만 결국은 뱉어낼 수가 없어서 다른 쪽으로 말을 뱉었다. 이 복잡한 생각을, 괴롭고 아픈 것을 잃을 수 있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너 혹시 스킬 설명 좀 만들어 줄 수 있냐?”

혹시나 하는 물음에 물었다. ‘제3자의 눈’이 이렇게 대답해주는 경우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간 용의 기억에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놀릴 때 제3자의 눈은 이렇게 답해주었다.

내가 차원이동자여서 일까. 그렇다면 섬멸자, 유성헌도 가능할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허공을 응시하며 답을 기다렸다.

[당신의 어시스트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생각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어시스트 시스템 구축까지 앞으로 21.09% 남았
습니다!]

…저게 뭐야.

눈앞에 펼쳐지는 수 많은 언어들이 뒤엉키고 썩이며 정렬되고 있었다. 마치 금서관에서 뵈았던 수백 수천만 권의 책들이 한 번에 움직이는 것처럼.

[어시스트 시스템 구축까지 67.3% 남았습니다.]

[어시스트 시스템 구축까지 75.2% 남았습니다.]

[어시스트 시스템 구축까지 84.8% 남았습니다.]

[어시스트 시스템 구축까지 98.7% 남았습시다.]

눈앞의 어지러운 문자들이 움직며 눈앞에 원의 궤적을 그렸다가 이윽고 문자들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한곳으로 모이며 뭉쳐졌다.

[어시스트 시스템이 생성되었습니다!]

[프로그램 명령 체계가 설정 됩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사불란 하게 시속히 눈깜빡할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시스트 시스템 적용 오류발생!]

“어?”

푸른 색의 창이 붉게 물들어갔다.

[최후의 신의 축복이 강제 활성화 됩니다.]

검은 흑요석의 귀걸이에서 검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치 밤의 일부인 것처럼 스산하고 공포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주는 이중성이 있는 힘이었다.

[어시스트 시스템이 최후의 신의 축복에 귀속됩니다!]

그것은 시스템 창으로 흘러들어가 창을 검게 물들렸다.

“…어?”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있던 유현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할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지만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모두 용의 지식에도 기억에도 없었던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혼란스럽던 유현의 머리속을 또다른 혼란이 가득 채워졌다.

[어시스트 시스템의 커맨드 마스터(command master)가 등록되었습니다.]

[당신은 커맨드 마스터의 권한을 획득하셨습니다!]

[시스템 적용 및 최적화가 진행됩니다!]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시스템의 모습에 유현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결국 3개의 알림이 울리고서야 유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스킬 설명창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게 만들어지다가 이 귀걸이에 귀속됬다는 거야?’

최후의 신의 축복. 그것은 이 귀걸이를 말하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귀걸이를 손을 잡아서 빼볼려고 해보았지만 귀걸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신 처음보는, 설명창이 나타났다.

[ [아이템] : 최후의 신의 축복(귀속)

이계의 신의 축복이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서 실체화한 귀걸이다. 본래의 기능을 되찾지 못하여 검게 물들어져있다.

[요구 등급] : 귀속자 한정 [분류] : 신물(神物) [아이템 등급] : ??? ]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죽이네.”

이렇게 편리할 수가 없었다.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편했겠어. 괜히 힘조절 못해서 나무 죽이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음은 스킬을 설명을 보기 위해서 프로필을 열어 스킬을 눌러보았다. 자동으로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감각이 알려 주었다.

[ [스킬] : 별의 사멸(死滅)

절대멸자가 가진 힘 중에서 가장 순수한 멸(滅)의 힘을 형태화한 스킬이다. 생명에 한해서 검은 멸살(滅殺)의 벼락을 내려 영혼까지 불태운다.

[스킬 분류] : 공격형 액티브(Active)
[요구 등급] : 절대멸자(사멸자 한정) [스킬 등급] : L (단 소유자의 성장과 함께 모습을 바꾸며 성장한
다.)]

스킬 설명을 읽으며 유현의 묘하게 이상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세계니 그렇겠지 하고 넘어갔지만 점점 의문은 올라오고 있었다.

‘이곳은, 이곳의 시스템은 꼭 게임 같았다.’

비극이 일어나고 그것을 양분삼아서 성장한다. 흔하디 흔한 클리셰였다. 소설이나 게임, 영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흔하디 흔한 소재.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제3자의 눈으로 본 정보값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수치와 정보값.

생명이나 복잡한 감정 같은 것을 그런 것으로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유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했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사람은 고뇌하고 마음 아파 하며 상처받을 일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스킬 설명을 원했지만 동시에 거부감도 들었다. 그럼에도 유현은 가장 궁금했던 스킬에 손을 뻗어 눌렀다.

[ [스킬] : 최후의 신의 가호 (상시 활성화 상태)

이계의 신의 가장 큰 의지이다. 당신의 정신을 보호하며 더강하게 활성화 할 경우 다른 이의 스킬을 방어할 수 있다.(단 공격형 액티브 스킬은 불가능하다.)

[스킬 분류] : 패시브(Passive)
[요구 등급] : ??? [스킬 등급] : ???]

최후의 신. 누군지는 어련 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의 톤, 성격. 그 모든 것들이 ‘그 남자’ 라는 것을 가르키고 있었으니까.

그 남자가 사랑했던 사람. 그건 누구였을까.

나와는 무슨 관계이길래 이렇게까지 나에게 주는 거고, 왜 내 과거의 기억을 막은 걸까.

그 남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했다. 나를 계속 지켜봐주고 지켜주고 위로해주는 정추권님 만큼 나는 그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다.

기억으로 인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그 남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남자가 나에게 도데체 무엇이길래 내가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님을 놓치기 싫은 것과 비슷할 정도로 붙잡고 싶은 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은 하나를 풀때마다 두 개씩 늘었다. 정확하지 않은 불확실한 것들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눈앞에 흐리고 뿌연 안개가 낀 느낌이었다.

‘뭐가 그렇게 감춰지고 숨겨진게 많은지.’

깊은 한숨이 폐의 깊숙한 곳에서 부터 새어 나왔다.

일단은 지금의 눈앞의 문제부터 대면해보기로 마음먹은 유현이 허공을 대고 말했다.

“내가 어시스트 시스템의 커맨드 마스터일려나?”

[당신을 위해서 친히 ‘제3자의 눈’님이 권한을 주었
다고 의기양양합니다.]

허, 저 녀석 생각보다 귀엽네.

“어시스트 시스템에 대한 설명.”

[당신에게 새로운 스킬이 추가됩니다!]

…직접 확인하라는 거네. 귀찮았던 거냐.

지금은 내가 을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불만을 삼
키면서 프로필에 추가된 새로운 스킬을 찾았다.

[ [스킬] : 어시스트 시스템 (전용)

당신은 어시스트 시스템의 최고 권위를 가진 커맨드 마스터. 어시스트 시스템은 존재하는 정보값의 수치를 마스터의 편의에 맞춰 글자로 설명과 용도를 상세하게 적어 넣는다.

*콜을 한 뒤 원하는 기능을 말 할 시에 사용자의 능력에 한해서 사용가능한 것을 서포트하는 서포터 모드로 전환한다.

*현재 최후의 신의 축복에 귀속중.

[스킬 분류] : 전용 패시브 스킬
[요구 등급] : 커맨드 마스터 [스킬 등급] : ???]

엄청나게 사용 용도가 다양했다. 혹시 이 어시스트 시스템을 사용하면 정추권님이나 무허권님이 해주시던 일을 내가 직접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제3자의 눈.”

[당신의 부름에 답하기에는 위대한 ‘제3자의 눈’님
은 너무 졸립니다.]

“뭐?”

[당신에게 나중에 다시 불러 달라고 ‘제3자의 눈’이 전합니다.]

“야, 물어 볼게 있어!”

서둘러 목소리를 높여 불러보았지만 더이상의 대답
은 없었다.

[……???%!%₩%? 시스템 오류 발생?]

“이건 또 뭐야.”

아무 없애도 없애도 계속해서 이상한 창이 나타났다. 무슨 바이러스라도 걸린 것처럼.

이상한 현상이었다.

[오,…류,..,? ㄴㅓ ㄴ-ㄴ ㄴㅜ구?]

…이정도면 슬슬 소름이 끼쳐오고 무서워졌다.

너는 누구? 분명 이렇게 묻고 있었다.

[ㅁㅗr 소, ㄹl가…선..?ㅁㅕ0해.]

목소리가 선명해.

이게 무슨 소리고 시스템은 또 왜 이러는거야. 설마
‘제3자의 눈’이 잠든 것과 상관이 있는 걸까.

[@₩÷…×#&…&""???---??..,?]

…너무 무서운데. 심령 현상도 아니고. 진짜 심령 현상은 아니겠지?

이제는 시스템 창에 손을 대기 조차 무서워졌다.

‘무허권님 부를까? 부르면… 와주실까?’

[ㅅr, ㄹ ㅕ줘,ㅈ, 아,.…ㅍㅏ.아바,아파아파아파아
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앙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앙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앙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앙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무허권님!”

시끄럽게 울리느 메서지 창이 공포스러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무허권님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답장도 반응도 없었다.

…이거 설마 안들리나?

유현의 눈에 눈물이 조금 달렸다. 유현은 무척이나 매우 귀신을 무서워했다.

“무,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님! 저좀 살려
주세요!”

살다 살다 살려 달라고 애원해 본건 처음이었다. 유현은 그정도로 귀신을 무서워하며 두려워했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깜짝 놀라 당신을 살핍니다!]

검은 메세지 창들 사이에서 푸른 빛을 띈 창을 보자마자 안심이 되어 유현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한방울 떨어졌다.

“…하아.”

무허권님의 등장과 동시에 시커먼 메세지 창이 사라졌다. 힘이 빠져서 저절로 몸이 축 늘어져버렸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게 말이죠-”

똑- !똑-!

설명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방문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검은 옷의 한 여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유현님.”

방문을 들어온 여자는 동대륙의 주술사로 내가 앰버와 시엘론에게 메세지를 남기기 위해서 주술을 사용해준 이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인자한 얼굴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네.”

그녀, 해이라는 주술사라 그런지 내 힘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과 존칭을 사용하며 정중하게 대하였다.

“무슨 일이야?”

다행이 아까 무서웠던 것은 무허권님이 나타남과 동시에 날라갔는지 목소리는 떨리지 않게 나왔다.

“이가 대공께서 부르십니다.”

“이가 대공이? 나 할 일 생겼어?”

“예, 아무래도 그런것 같아 보였습니다. 지금 출타간 노예를 가둬놓은 곳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더군요.”

“…노예?”

안 좋은 기억이 저절로 떠올라 유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걸로 아한님이 유현님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아한이 나한테?”

“예.”

아한이 나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고? 무슨 사람 죽일일이라도 생겼나?

“일단 이가 대공에게 가봐야 겠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따라 걸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넓은 테라스였다. 그곳에서는 차를 마시고 있는 이가 대공이 무엇을 그리 깊이 생각하는지 손에든 쿠키가 멈춰있었다.

멈춰있는 손에 쿠키를 뺏어 들며 입에 넣고 먹었다. 많이 달지 않고 고소한 땅콩의 맛이 일품인 쿠키였다.

“아한이 지원 요청을 나한테 했다고?”

“남의 것을 뺏으면 안되지 않나.”

“접시에 많이 있잖아. 난 뺏어 먹는게 좋아서. 그래서 나 어디로 가면 되는 걸까.”

“중앙 대륙. 서부에 위치한 노예를 모아놓은 지하가 있지. 그곳에 노예들을 탈출 시키는 것에 곤란을 격고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가서 노예 탈출을 도와라?”

“말처럼 쉬운 일이면 좋을련만. 일단 가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가 대공의 눈이 깊어져 있었다.

“가지 않아도 괜찮지만 가겠지?”

“당연하지.”

쉬는건 좋지만 너무 오래 누워만 있는 것은 싫어하는 유현이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텅비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텅비어 버리면 다른 의미로 죽게 되어 버린다. 그런 죽음은 유현이 바라는 죽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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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9-14 10:45 | 조회 : 764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전 하루 4시간 밖에 못자서 죽을 맛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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