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자들(2)

처음부터 혁명단 그림자 부대에 넣을 생각이었다. 정체를 들킨 순간부터 넣지 않으면 소년도 혁명단도 모두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지자라.

대공은 자신의 아름답고 강했던 누이를 떠올렸다. 많은 이들을 누이를 노렸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을 밥먹듯이 했었던 과거의 힘들었지만 찬란했던 과거가 머리속에 펼쳐졌다.

아마 알려지는 그 순간 저 소년도 누이와 같아 지겠지. 거기다 멸의 선택을 받은 절대멸자다. 권력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원하는 것이 당연했다.

일단 받아 드리려면 저 소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했다. 그래야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가진 멸의 힘의 특성은 뭐지?”

이가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별의 사멸’을 뭐라고 표현할지.

그리고 대답했다.

“죽여 없애는 힘. 단 생명체에게 만 사용가능해.”

경악한 두사람의 감정이 보였다. 꺼림직하겠지.

조용히 다음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했던 끔직하다나 꺼림직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네 이름은?”

뜬금없이?

의야한 표정으로 중년을 바라봤지만 중년은 의미불명의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였다.

[스킬 ‘감정 파악’이 발동 중입니다.]

[현재 대상이 당신을 연민합니다.]

연민이구나. 저 남자는 나를 가엾게 여기고 있었다. 그 감정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는 불행했다. 하지만 불행하다고 해서 남에게 연민을 받을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았다.

“동정하지마.”

싸늘한 유현의 말에 이가 대공과 아한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나는 누군가에 동정받을 만큼 나약하지도 어리지도 않아.”

“그렇군.”

이가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소년의 성향에 대해 어련풋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네가 혁명단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에는 날 믿고 의지하는 것이 편할것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서.”

허공을 보자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와 당신의 관계를 부러워합니다.]

먼곳을 보는 유현의 눈빛은 이가 대공이나 아한을 보는 것 과는 다르게 어딘가 조금 풀어져있었다. 이내 허공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이가 대공을 보는 눈은 철저하게 계산적인 눈이었다.

“그러니 거래를 하자. 당신들의 목적은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인 황제의 제거, 혹은 황궁 전복이잖아? 그거 내가 도와줄게. 그대신 당신들은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비밀로 붙일 것과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사실 흑룡의 레어에는 엄청난 양의 지식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읽지 않았다. 머리속에서 앰버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 책들 다 읽어도 되는거야?’

‘상관없지만 이곳에 기록된 것들은 발설해서는 안돼.’

‘왜?’

‘이곳에 정보는 누군가의 삶을 망칠수 있는 정보들이거든. 그것이 악인이든 선인이든 말이야. 여기가 괜히 암록(暗錄)의 장원(墻垣)이겠어? 이곳의 모든 기록들은 몰래 기록되어서 이곳에 둘러쌓여 숨기고 있는 것들이야. 거대한 정보는 무구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니까 내가 이곳을 지키고 있는거지.’

‘그럼 안볼래.’

안본다는 말에 눈을 희둥글레 뜬 앰버는 이내 함박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났다.

그 모습에 유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조금 미소가 지어졌다.

이미 원하는 것을 챙취해서 기분이 좋아진 눈으로 미소를 짓는 다고 생각한 이가 대공은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애에게 패배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하군.

이가 대공은 진심으로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상대와 자신의 원하는 것을 알고 쥘 수 있는 상대의 약점과 줄수 있는 이득까지 철저하게 알고 자신이 유리하게 대화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내가 황제였다면 무역이나 재상으로 두었을 것이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인재였다.

“왠지 눈빛이 참 무섭다?”

소름돋는 다는 듣이 양팔을 손으로 문지르는 유현의 행동에도 이가 대공은 그저 유현이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계약서를 쓰도록 하지. 가져오거라.”

이가 대공의 가벼운 손짓에 뒤에 경호 하듯이 서있던 아한이 대공의 개인 책상에서 종이 한장을 가지고 왔다.

그걸 자연스럽게 받은 대공이 계약서를 테이블 앞에 두고서 입을 열었다.

“나의 조건은 네가 혁명단의 그림자단에 들어갈 정도로 훈련받는 것과 혁명단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가진다. 그리고 네가 가진 힘으로 최대한 혁명단에게 협력할 것. 혁명단에 대한 내용의 누설을 금지할 것.”

“좋아.”

어차피 그래야 할것을 알고 주워가달라고 한것이니 상관은 없었다.

“계약서의 증인은 아한으로 하지.”

“아니. 난 그쪽의 사람은 안 믿어. 당신의 조건은 협력할것이 조건이기는 하지만 믿고 신뢰하라는 말은 아니잖아?”

눈을 갸름하게 뜬 이가 대공이 흥미롭다는 입꼬리를 올려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증인이 되어줄 사람이 있나?”

우습다는 듯이 보는 나를 눈이 정말 마음에 안들었다.

“그럼 없을까봐?”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을 노려봅니다!]

시스템 창을 본 이가 대공의 손에 힘에 들어갔다. 격이 아닌 존재를 드러낸 것만으로 온몸이 털이 곤두서고 몸이 떨릴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한도 다를 바가 없는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오직 유현만이 압도적인 존재감에서 자유로울수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분이시지."

여유있는 강자의 미소로 웃고 있는 유현의 모습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나이만 어렸지 저건 섬멸자와 같은 부류였다.

“이름대로 정의를 관장하는 분이시니까 이 계약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있다면….”

뒷말을 생략했지만 이가 대공도 아한도 알 수 있었다.

“신도였나?”

신도는 권위자를 신으로 모시며 그 힘의 일부를 받은자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아니. 저분은 그냥 나 좋다고 쫒아다니면서 나 도와주는 분인데?”

“…하아.”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몇번이나 쓸었다. 대부분의 강력한 권위자들은 바벨론을 넘어 갔다. 지상에는 자신을 이토록 겁먹게 하는 권위자는 남아있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저 소년의 곁에서 날카로운 경고를 보내는 권위자는 확실하게 상위의 존재였다.

어쩌면 생각보다 거물을 키우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저런 강력한 권위자가 흥미를 가지며 지켜본다는 것은 섬멸자처럼 극도의 증오나 미움을 받거나 그들의 애정을 받거나 혹은 이용하기 위해서 인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소년은 유일하게 믿고 의지 한다고 했다.

저 경계심 많은 소년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애정을 받는 경우였다.

“계약을 진행하지.”

용이다. 이가 대공은 그냥 저 소년을 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기한은 황궁 전복이 끝나면 끝나는 걸로.”

“좋다.”

이가 대공은 계약서에 조건들을 쓰면서 나에게 보여줬다. 다행히 중앙 대륙 공용어였다.

“이제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나?”

“유현이야. 성은 없는 그냥 유현이야.”

“나는 이가 프로딕트 대공이네.”

[당신의 ‘계약서’가 작성됩니다!]

다쓴 계약서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어딘가로 날아가듯이 사라졌다. 신기했지만 태연하게 앉아있었다.

[당신의 계약서가 성립되었습니다!]

서로가 이름을 말하자 무언가 내 몸속에 새겨지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맞지 않는 흐름이 몸속에 붙어있는 느낌이라서 이물감이 신경에 거슬렸다.

이가 대공이라는 사람을 보니 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이런 불쾌함이 아무렇지 않을 걸까?

“이제부터 유현 네가 해야할 일을 알려 주도록 하지.”

살짝 긴장된 눈으로 이가 대공을 응시하는 유현의 눈에 이가 대공은 근엄하게 말했다.

“내 영지에 포티리스라는 혁명단을 가르키는 학교가 있다네. 그 학교에 입학해 줘야겠네.”

“…뭐?”

“계약 내용중 네가 혁명단중에 그림자단에 들어갈 훈련을 받는다. 라는 조항이 있었지? 그곳에가면 네가 원하는 최소한 이상의 기술과 지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내가 원하는 대로 계약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속은 느낌이들었다. 학교라니 지구에서도 가본적이 없었는데. …괜찮을까?

“출발은 내일로 하고 그전에 너에게 지급해야 될 것이 있다.”

지급해야 할 것?

의문스럽게 이가 대공을 바라보자 이가 대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편에 있는 책장에 책중 유독 낡을 책을 안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책장이 옆으로 밀리며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났다.

“들어가지.”

대공은 아무렇지 않게 그 안으로 들어갔고 아한 또한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뒤따르고 있는데 비밀에 문은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이나 계단을 따라서 내려갔다.

본래의 내 체력이라면 기어서 내려가야 할 정도의 긴 계단도 용의 비약 덕분에 별로 힘들지 않게 내려왔다.

-……답답해.

그러다 문뜩 바람과 함께 들려오는 들려오는 소리에 계단을 발걸음이 멈추었다.

뒤따르는 걸음소리가 들리지 않자 이가 대공도 아한도 의야하다는 표정으로 뒤돌아 보았고 유현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다만.”

이가 대공의 말에 아한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소리였나봐. 계속 가자.”

재촉하는 목소리에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서둘렀고 유현은 생각에 잠기면서도 두 사람을 따라 걸었다.

-……벗어나고 싶어.

순간 또 들려온 어딘가 애처롭고 가냘픈 목소리에 멈칫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지금 이 목소리가 저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늘…보고싶어.

기운없이 축쳐진 목소리가 듣는 이의 기분조차 저조하게 만드는게 기분이 영 좋지가 않았다. 말하는 내용이 마치 자신을 투영시키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언제쯤…나갈수있지….

“…….”

이런 감정을 공감하고 싶지 않았다. 약하고 무력한자의 목소리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똑같아 보였다.

어릴적의 자신과.

-왜 어째서 나만….

듣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목소리가, 이 발버둥이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괴로워하는 이 목소리가 언제가 기약없는 희망이 올때까지 계속 되기를, 한없이 이기적이고 자기멋대로의 정의에 저 여리고 지친 목소리가 괴로워하며 고통받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랬다.

이것은 추악하며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어느새 계단을 지나 긴 복도를 지나서 철문으로 보이는 큰 문이 보였다. 그것은 무척이나 크고 단단하고 무거워보였다.

“다 왔군.”

이가의 눈짓에 아한이 문을 밀어 열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태양의 빛이 눈에 들어와서 눈부셨다.

“들어오지.”

발을 내밀어 그곳에 들어오자 푸른 하늘과 눈부신 태양과 푸른초원의 가운데 있는 거대한 나무에 달린 수백개의 새장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아름다운 곳이고 청량한 바람의 향기도 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계속 이물감이 들었다. 미묘하게 표정을 구기고 있자 이가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상당히 마나의 감응력이 높은 모양이군. 이곳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채다니 말이야.”

“여기 뭐야?”

“이곳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가짜 공간이라네. 이 초원도 저 나무도 하늘도 전부 가짜지.”

어느새 가까이 까지 걸어와서 본 거대한 나무는 마치 열매라도 열린듯 수많은 새장속에는 검은 새가, 정확하게는 까마귀들이 있었다.

“이것들은 혁명단에서 연락용으로 사용하는 밤 까마귀들이라고 한-”

설명하고 있는 이가를 지나쳐 유현은 목소리에 집
중했다.

-……가짜 전부 가짜야….

그리고 그 작은 목소리에 대답했다.

“맞아. 이것들은 전부 만들어진 환상에 풀과해.”

목소리에 대답하듯 유현은 중얼거렸다. 매우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가와 아한의 귀에는 확실하게 들려
왔다.

-……내 목소리가 들려?

“어. 시끄러울 정도로 잘 들려.”

유현의 눈동자가 천천히 새장에 든 새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이내 검은 새들 사이에서도 유별나게 하얀 색을 가진 새 앞에서 멈추었다.

“거기 있었구나?”

-너는…누구야?

절망적이고 힘없던 목소리에 약간의 활기가 돌았다. 마치 어둠고 깊은 절망속에서 작은 빛을 발견한 것처럼.

거짓된 빛은 기꺼이 그 작은 빛이 되어주었다.

“너의 환상을 부수러온 악인.”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의 행동에 집중합니다.]

갑작스러은 유현의 행동에 아한이 유현을 막기 위해서 움직였지만 이가의 팔이 아한을 저지했다. 마치 지켜보라는 고개를 저으며 눈앞에 유현을 관찰하듯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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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03 08:38 | 조회 : 1,060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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