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어둠 속에 숨어 사는 빛(2)

목욕하고 문열고 나오자마자 갑자기 순식간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중력이 사라지는 느낌을 체험했다.

범인은 역시 흑룡이었다.

“늦었어, 밥먹자.”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수가 인상적인 식타보가 깔려있는 둥그란 식탁에 성녀와 흑룡이 앉아 있었다.

식탁에 있는 음식들은 전부 하나 같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마치 방금한 음식처럼 하얀 김이 올라오는게 빨리 먹어달라고 조르는 것 같았다.

“오! 맛있겠다.”

얼른 의자에 앉아서 포크로 고기를 찍어 입에 넣었다. 담백한 고기의 향연이 입안 거득 퍼지는게 그야 말로 환상의 맛이었다.

“음? 왜 안먹고들 있어?”

행복하게 먹고 있던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손짓을 하며 얼른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자 성녀는 조심스럽게 스테이크를 썰며 입안에 넣고서는 크게 감명 받은 표정을 지었다.

“마, 맛있어요!”

항상 딱딱한 빵과 밍밍한 스프만 먹어본 성녀는 고기를 처음 먹어보았다. 그녀는 열심히 고기를 썰어 입에 넣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내가 만든거니까, 맛없는게 이상하지.”

흑룡의 저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음식은 확실히 맛있지만.

평화로운 식사의 시간이 끝이나자 흑룡은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간단이 식탁위에 음식들과 식기를 치웠다.

“이제 말해보실까.”

샛노란 눈동자가 마치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을 냈다.

[스킬 ‘감정 파악’이 발동 중입니다.]

[현재 대상이 당신에게 학구열을 품습니다.]

호기심과 학구열, 새로운 것에 대한 깊은 갈망. 그 감정들이 흑룡에게서 느껴졌다. 저 자식은 날 생명체로 보는 건지 의문이다.

“일단 다들 자기소개부터 해볼까? 난 맨 마지막에 할게. 메인 디쉬니까.”

성녀는 살짝 흠칫했고 흑룡은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먼저 하지. 난 흑룡이고 올해로 위대한 용생 20년이 되었다. 그리고 북대륙의 암록의 장원의 주인이지.”

매우 짧은 자기소개 였지만 충분했다. 최후의 신의 축복으로 알아서 보면 되니까.

[최후의 신의 축복이 불발합니다!]

헉, 용이라서 그런가? 그 괴물같은 섬멸자 미친놈의 방벽도 뚫은 최후의 신의 축복이 용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잠시 당황하는 사이 성녀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중앙 대륙의 출신이고 어릴적부터 신전에서 살아왔어요. 나이는 15살이고 이름은 시엘론이에요. 성은 없어요.”

[최후의 신의 축복이 상대방을 꿰뚫어 봅니다!]

[이름:시엘론 나이:15살

직업:신도(희귀),성녀(전설)

능력치:체력[5],근력[2],민첩[10],지력[90],정신력[30],신성력[180].

속성:희생(犧牲)

칭호:권위자의 사랑을 받는 자(전설),성스러운 빛의 인도자(전설)

스킬:재생하는 빛(S),재생(S)

패시브 스킬: 빛의 신의 가호(L).]

음…이거 참.

성녀다운 프로필이다.

공격 스킬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전부 빛이나 치료나 재생뿐. 거기다 신성력이란 것이 가장 높았고 나머지 스텟은 지력을 빼면 땅을 기었다.

자기소개를 마친 두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 입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듯 했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 주기로 했다.

“일단 미리 말해 둘게 나는 인간이야. 질문은 내 소개가 끝난 뒤에 받도록할게.”

긴장때문에 땀이 찬 손을 들어 내 모자를 잡고 벗겨 냈다.

“…….”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머리카락이 조금 흔들렸다. 마치 심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 혹은 칠흑에 물이든것 처럼 까만 머리카락은 공간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검었다.

흑룡의 흑발이 짙은 회색으로 보일 지경이니 소년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검은 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나는 며칠전에 차원이동을 한 차원이동자야. 그리고 근원의 적인 멸로부터 선택을 받은 절대멸자야.”

절대멸자라는 말에 경악한 두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차원아동자라는 것만으로 충격적인데 거기다 절대멸자라니. 두 사람은 경악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섬멸자가 나를 쫒는 이유는 아마 내가 섬멸자와 같은 곳에서 차원이동을 한 인간이라 그런거 같은데 자세한 이유는 잘모르겠어.”

잠시 깊은 한숨을 쉬며 숨을 고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은 섬멸자 미친놈이고 현재 가장 믿고 신뢰하는 자는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야. 나는 그분 이외는 안믿어. 내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이제 질문해.”

성녀는, 아니 시엘론은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모양인지 연신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적이 길어지고 먼저 입을 연것은 흑룡이었다.

“너 그럼 눈색은 무슨 색이야?”

덥수룩한 앞머리카락이 얼굴의 절반 이상을 덥고 있어서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지만 검은 색일걸?”

“모르겠다니? 거울도 안보냐?”

“어. 흉측하게 생겼거든.”

들어나 있는 턱선은 조금 말랐지만 갸름했고 피부또한 창백했지만 하얗고 잡티도 없이 깨끗했다.

어떻게 봐도 못생기거나 흉측할 외형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끼익.

의자에서 일어난 흑룡이 성큼성큼 걸어서 소년에게 다가 갔고 그 모습을 시엘론은 불안하게 바라봤다.

내 바로 옆까지 다가온 흑룡이 내 턱을 붙잡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는 내 앞머리를 들어 올렸다.

“…….”

“…….”

소년의 얼굴을 본 두 사람의 눈이 커지다가 이내 지진이라도 온것 마냥 동공이 흔들렸다.

“흉측하게 생겼다고 했잖아. 끔찍하지?”

축 늘어진 속눈썹이 가련하게 떨리며 아련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속의 검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갔다. 어딘고 허무해 보이는 미소가 눈낄을 끌었다.

절대로 흉측하거나 징그러운 외모는 아니었다.

“너 왜 자신이 흉측하다고 하는 거지?”

“전에 살던 세계에서 살았을때 누나가 나보고 흉측하고 징그럽다고 했거든.”

…허업.

숨을 들이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녀 시엘론,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가리는게 좋은 얼굴이긴 한데.”

여러모로 해로운 얼굴이었다. 이 세계에는 흔치 않은 미인상 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묘한 퇴폐적이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더 미모를 빛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역시 그렇지?”

어딘가 씁쓸한 미소가 보는 사람을 아련하게 만든다고 해야하나 흑룡은 저런 엄청난 외모를 가지고서는 자신감이 없는 소년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흑룡이 허공의 아공간 손을 넣고 가위를 꺼내들더니 망설임 없이 소년은 앞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어, 야 뭐하는!”

그리고는 말릴새도 없이 앞머리를 가위로 잘라버렸다.

사각.

“역시 그냥 드러내는 게 더 좋은 것 같네.”

흑룡은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을 향해서 씩 웃어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너 안 흉측하고 안 징그러워. 내가 살아왔던 용생 20년 동안 본 인간들 중에서 가장 미인이야.”

“미, 미 뭐?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누나는 나에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름이랑 나이를 안 말해 줬잖아.”

이름이라. 나에게 없는데. 대충 지을 만한건 없을까.

”고아라서 이름은 없어. 나이는 그렇게 안보이겠지만 26살.”

“그거 진짜 나이였어?”

흑룡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이리 저리 살폈다.

“녹룡이 차원이동자는 시간이 멈춘다고 했어.”

“너 만난 용이 녹룡이었어?”

흑룡은 놀랍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는 가장 오래된 용이자 세계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식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용인데.”

그건 몰랐는데. 흑룡은 뭘 혼자 골똘이 생각하다 이
내 눈이 커지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너, 너 혹시 그 방대한 기억을 녹룡이 준거냐?”

“어.”

바라지도 않았지만.

무려 위대한 용의 기억을 받았건만 저 인간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러고보니 너 이름 없다며, 그럼 네 누나는 너를 뭐라고 불렀는데?”

흑룡의 물음에 소년의 표정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그 이름의 주인은 이미 죽었어.”

죽었다니 소년은 우리의 앞에 살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말할수가 없었다. 소년의 말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지어 드릴게요!”

그때 성녀 시엘론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면서 눈을 빛냈다.

“아니, 내가 지어줄게.”

흑룡은 시엘론을 노려봤고 시엘론은 흑룡을 노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치면서 스파크가 튀는것 같았다.

“그럼 둘이 이름을 말해봐. 원하는 걸로 하지 뭐.”

내 말에 그 둘은 심각한 문제라도 되는 듯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셀이 어때요?”

“발루가 어때?”

동시에 다른 말을 한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발루라니요? 태양 처럼 빛나는 분에게 어둠이라는 말이 어울릴것 같나요?”

시엘론에 말에 기가 찬 흑룡이 시엘론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야 말로 눈은 어디 달려 있는 거지? 저 칠흑 같이 검은 머리카락과 눈을 보라고 누가 봐도 발루가 어울려.”

“하! 보이는 것 만으로 이름을 짓다니. 저분은 태양처럼 빛나는 분. 아셀이란 이름이 더 어울려요!”

시엘론은 언제 흑룡을 좋아했냐는 듯이 날칼롭게 흑룡을 노려보고 있었고 흑룡은 이를 갈며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나는 그런 둘의 싸움을 진정시킬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둘다 싫은데. 역시 내 이름은 내가 지어야지.”

아주 간단하게 내가 지으면 된다.

나는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내가 아는 이름이라고는 설이 누나와 현이 형의 이름 밖에 몰랐다. 그러니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의 누나와 형의 이름을 한 글자씩 가져오기로 했다.

“…유현. 성은 없고 그냥 유현이야.”

유설아, 최현 나의 가장 소중했고 소중한 사람들.

[당신의 바보 같은 프로필에 임시 이름이 추가됩니다.]

저 ‘제3자의 눈’자식 아직도 화나 있는 거야? 뒷끝이 엄청난 자식일세.

“유현? 음 나쁘진 않네.”

흑룡은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며 납득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고 중얼 거리고 있었고.

“그럼 유현님이라고 부르는게 좋을까요?”

이미 납득한 시엘론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님은 무슨. 그냥 유현이라고 불러.”

“네? 하지만 저 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을…”

“그럼 오빠라고 부르던가.”

“…에, 네?”

어차피 나도 시엘론을 조금 맹한 여동생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고.

시엘론은 고개를 숙이며 뭐라고 중얼거리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왜 저러는거야? 감정 파악 스킬을 쓸가 고민했지만 왠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름 없는건 흑룡 너도 만찬가지 잖아.”

내 말에 흑룡이 발끈했다.

“아니거든 난 위대한 흑룡이다!”

“그럼 네 전대의 이름은 뭐였는데?”

“흑룡이다.”

“그럼 그 전전대는? 그 전전전대는?”

“…….”

흑룡는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더 타당한 표현이었다.

“거봐. 네 이름은 없잖아.”

그는 중대한 사항을 깨닭은 것처럼 눈동자가 흔들렸다. 20년을 산 이 어린 용은 어떻게 보면 참 순진했다.

저 호박같은 샛노란 눈에는 호기심과 지식욕은 있어도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찌 보면 순진하다는 표현이 옳은 지도 모르겠다.

…잠깐 호박이라.

“앰버.”

“뭐?”

“네 이름은 앰버 라고 하자.”

“그게 무슨 뜻 인데?”

“네 눈동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흑룡이 갸름하게 눈을 뜨고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앰버라.”

처음 생긴 이름의 뜻이 내 눈동자라니 상당히 재미있었다.

“좋아, 나는 앰버야.”

즐겁게 웃는 앰버의 미소에 나는 성녀 시엘론을 바라봤다.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뾰루퉁한 얼굴로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개명할까요.”

멀쩡한 이름을 두고 왠 개명? 시엘론은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식탁에 손가락을 툭툭 불만스럽게 부딪쳤다.

“자, 그럼 자기소개도 끝났으니까 본론을 말할게. 앰버야, 나 글 좀 알려줘.”

“그게 무슨 소리야?”

“말했잖아. 난 차원이동자라고 지금 대화는 통하고 있지만 글은 못읽어.”

“그래서 도서실에서 망했다고 한거야?”

“어.”

당당하게 글을 못 읽는 다고 말하며 알려달라는 태도에 앰버는 웃움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인간에게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은 꽤나,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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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22 14:07 | 조회 : 1,164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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