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어둠 속에 숨어 사는 빛(1)

검게 뒤틀린 나무가 깔끔하게 잘려나가 있었고 땅은 거대한 검에 베인것 마냥 곳곳에 긴 상흔이 남겨져 있었다. 그밖에도 여러곳이 부서지고 파괴되어 있는 모습이 참…할 말이 이것 밖에 없다.

…섬멸자 이 미친놈.

몇 안되는 용의 지식에 의하면 섬멸자도 나와 같은 절대멸자인데 이 자식은 정말 절대멸자 다운 놈이다.

“이거 복구하려면…최소 5년의 노동….”

발광을 하며 날뛰던 흑룡이 엄지 손톱을 깨물며 절망스러운 눈으로 숲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더욱 더 절망스럽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 이거 혹시 제가 섬멸자에게 위치를 알려줘서 이렇게 된걸까요?”

성녀가 죄책감이 어린 눈으로 망가진 암록의 장원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아마도? 그렇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원인을 따지면 그건 나때문일걸? 더 정확히는 그 섬멸자 미친놈이 가장 문제지만.”

나 하나 찾는다고 이렇게 숲을 다 엎어버릴 줄이야.

“그 섬멸자는 어째서 당신을 찾는 거에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나도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보니 그 미친놈이 왜 나에게 그러는지 모르겠다.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강하기도 강하고 뭐, 성격이조금 많이 파탄나기는 했지만.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일단 내 레어는 멀쩡한거 같아. 내 레어로 가자.”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흑룡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서는 손을 놓고서 자신을 손을 잠시보다가 내 손목을 노려보았다.

왜 저래?

“왜?”

“안았을 때도 느낀건데 너 왜 이렇게 말랐냐?”

“자세한건 들어가서 얘기하지? 나 배고프거든.”

어느샌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배도 고파오기 시작했다. 설마 장원이 망가져서 레어에 못들가나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장원만 부저졌지 레어에는 별 문제가 없는지 흑룡은 불만없이 손가락을 튕기며 공간이동을 하였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시야가 바뀌면서 나타난 곳은 돈지랄을 아주 제대로 해놓은 듯한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하고 넓은 방이었다.

“…이게 다 뭐냐.”

황궁 도서실 저리가라 할 정도록 번쩍이는게 눈이 아플지경이었다. 진정한 돈지랄은 바로 이런건가 싶었다.

“뭐긴 우리가 같이 살 집이지?”

“넌 개도 아니면서 왜 계속 개소리를 하냐.”

“뭐? 난 개처럼 짖은 적 없는데?”

말을 말자. 이세계에 와서 이런 욕이 통할거라 생각
한 내가 등신이지.

“쓸데 없는 헛소리라는 뜻이란다. 잘 기억해두렴.”

“처음들어보는 단어인데 아주 흥미롭네.”

지 욕하는건줄도 모르고 흥미롭단다. 이 놈도 상당히 미친놈이다.

“일단 옷좀 준비해줘.”

성녀도 나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더러운 상태였다. 나는 익숙해서 괜찮을지 몰라도 곱게 자란 성녀는 불편할 것이다. 흰색옷이 회색으로 보일 정도니 말다했다.

“옷은 왜?”

“씻게.”

순간 내 뒤에 내 옷을 꼭 잡고 있던 성녀의 손이 짝 움찔거린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큰 갈색눈을 반짝이며 마치 어떻게 알았냐고 뭍는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긴.

[스킬 ‘감정 파악’이 발동 중입니다.]

[현재 대상이 씻고 싶어 합니다.]

스킬로 알았지. 찝찝해 하는게 손을 타고 아주 잘 느껴져서 내가 다 찝찝해질 지경이었다.

“욕실 두개야?”

내 말에 흑룡을 피식 웃었다. 마치 우습다는 듯이.

“용의 레어에 겨우 욕실이 두개 뿐일것 같아? 종류별로 다있고 수는 열개가 넘는데?”

흑룡에 말에 뒤에 성녀가 기대감에 차오르는게 느껴졌다. 하긴 마음대로 뭘 해본적도 없을 애가 기대감을 갖는게 당연했다.

“그럼 애랑 내 옷 좀 줄수있어? 난 소매가 전부 긴걸로 그리고 꼭 모자달린 옷으로 해줘. 성녀야 너는 뭐 입고 싶은 옷 없어?”

15살이면 한참 꾸미고 싶을 나이지.

“저,저는 원, 원피스가 입어보고 싶어요.”

쑥스러운 뜻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숙인 성녀가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괜찮아. 저기 위대한 용이 다 구해줄거야. 그렇지?”

처음봤을때만 해도 경직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요구까지 하고 있는 모습에 흑룡은 절로 한탄이 나왔다. 더욱 어이가 없는건 그런 모습이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어디까지 만만하게 굴까 기대까지 될 정도로.

“준비해둘게. 따라와 욕실로 안내해 줄테니까.”

“성녀야 가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성녀의 손을 잡고서 흑룡을 따라 걸었다. 이러니까 딸내미가 한명 생긴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상상해 피식 웃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15살의 외모인 내가 15살 정도로 보
이는 성녀를 딸처럼 생각한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웃긴 장면이었다.

“다왔어. 여기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으로 아무데나 들어가면 돼. 공간 마법 걸어놔서 여러 곳으로 연결되어있거든.”

넓고 긴 복도에 가지각색의 문들이 보였다. 문옆에 뭐라고 쓰여있었지만 글자를 못 읽는 나는 그냥 마음에 드는 문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럼 성녀야 이따보자.”

“네!”

문고리를 잡고 다른 문앞에 있는 성녀에게 손을 흔들어주자 성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들어가지 전에 내 옆에 서있는 흑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리고 훔쳐보지 마라.”

“하아? 내가 누구를 훔쳐봐?”

어이없다는 듯이 흑룡이 팔짱끼었다.

“성녀랑 나 둘다.”

“미안한데 그런 취미는 없다. 난 인간에게 손댄적도 없다고.”

“그럼 다행이고.”

녹색의 잎의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있는 나무문을 열었다.

“옷은 마법으로 보낼게.”

“그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히고 흑룡은 묘한 눈으로 소년이 사라진 문을 응시하다 이내 등을 돌렸다.

“와, 진짜 드래곤 레어는 다있구나.”

연두빛을 내는 온탕. 그것은 신문으로 밖에 본적이 없었던 온천이었다. 형형색색의 색의 돌들로 된 바닥은 고급져보였고 돌기둥에는 좋은 향이 나는 향초들이 있었다. 습한 지역에나 있을 법한 식물들도 보였다. 그 한가운데 온천은 정말 운치가 좋았다.

이러면 정말 레어에서 그 흑룡이랑 동거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아직은 나에게는 어색하고 또 과거의 기억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기에 고개를 저었다.

툭.

검은 후드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나 울렸다.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소리가 잘 울리는 것 같았다.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은 다음 조심스럽게 온천에 들어갔다. 뜨끈뜨끈한게 절로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부자가 온천이나 스파를 즐기나구나 싶었다.

뻗어있던 다리를 모아 감싸았고 무릎에 이마를 기대었다. 해야하는 일을 정리해야 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그래, 먼저 기억의 금제를 풀고 용의 지식과 기억을 얻기 위해서는 격이라는 것을 얻어야 했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용의 지식 중에는 아직 격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격이 무엇인지 조사해야 된다.

하지만 나는 글을 모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화는 가능한데 글을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건 흑룡의 도움을 받으면 어찌저찌 될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언제까지 흑룡이 내 제멋대로를 봐줄 것인가였다.

현재 내가 가장 신뢰하고 있는 사람은, 사람은 아니지만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였다. 하지만 권위자인 그는 성역에는 접근 할수없다.

그 이유는….

[당신의 사고에 제동력이 걸립니다!]

망할 금제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겠다.

푸른 눈동자의 남자.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굴까? 정말 그 남자가 나에게 금제를 건 걸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는 없다. 그런데도 그 남자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호감이 샘솟는다.

그러고보니 여기 도착하자마자 퀘스트가 완료 되었다는 간접 메세지를 받았는데 확인하기 정신이 없어서 못했다.

[당신의 《퀘스트 : 성녀의 구출》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의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이걸로 시련이 하나 끝났다.

다리를 풀며 온천의 딱딱한 돌에 머리을 기댄채로 몸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조금이지만 피로가 회복되는 것 같았다.

[당신의 육체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저 ‘제3자의 눈’은 도대체 뭘까? 저걸 일일이 하고 있는 존재는 누굴까?

“야.”

아무도 없는 온천에 조용히 내 작은 목소리만 울렸다.

역시 ‘제3자의 눈’으로 부터 대답은 없었다.

“제3자의 눈은 멍청이다, 바보다, 멍청이, 바보바보
다, 바보멍청이다.”

본격적으로 놀려보기 시작했다. 과연 제 3의 눈의 반응은….

놀랄정도로 없다. 대단한 녀석. 나 라면 문자 폭탄이라도 날려 빅엿을 먹여줬을 텐데. 인내심이 대단해.

…이게 무슨 짓인지. 혼자가 되니 별 바보같은 짓도 한다면서 자조했다.

이제 슬슬 온천밖으로 나가 볼까.

[당신이 멍청하게 온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

…오잉?

[당신이 바보처럼 온천 밖으로 나갔습니다.]

…너 이 자식 빡쳤구나?

[당신이 허공을 보고 멍.청.하.게 서있습니다.]

어쭈? 점까지 찍어서 강조하네?

[당신이 바.보같이 위대한 ‘제3자의 눈’님을 바라봅니다.]

좋아, 철회한다. 이 새끼는 인내심이 없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놈이다.

[당신이 옷이 거울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어디 놓여있는지 멍청하게 찾고 있습니다.]

뒤끝 드럽게 긴놈. 시스템 창이 많아도 너무 많이 뜬다. 저 새끼 분명 즐기고 있는 거다.

이런걸 뭐라하더라 그 인싸들의 메세지 지옥이던가? 난 느낄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저 자식 참 고마운 놈일세.

[당신이 바보같이 주섬주섬 옷을 줍습니다.]

물론 저 놈은 내 안티인것 같지만.

옷을 줍다가 문뜩 눈앞에 거울이 보였다. 공기가 습한데도 김이 하나서 서려있지 않아서 내 몸을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불에 지져진 화상 흉터, 칼로 날카롭고 깊게 베인 흉터, 채찍에 맞아 생긴 긴 흉터까지 내몸에 흉터가 없는 곳은 거이 없었다.

얼굴을 반쯤 덥고 있는 앞머리가 얼굴에 붙어서 짜증이 났지만 앞머리를 치우지는 않았다. 흉측한 내 얼굴을 가려야했기 때문이다.

“조용해 졌네.”

‘제3자의 눈’이 갑자기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저 자식도 바쁜가?

대충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온통 검은 옷을 입었다. 정말 판타지 세계구나 싶을 정도로 옷이 특이했다. 게임 캐릭터가 입을 법한 옷이었다.

요구대로 맨살이 하나도 안보일 정도로 소매가 길었다. 몸을 옷으로 덥었다고 표현해야 할정도 검은 옷이 내 몸과 얼굴을 가려져있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문을 열었다.




※※※




북대륙의 한 한적한 마을은 현재 한 남자로 인해서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다. 멀쩡한 집은 단 한채도 없으면 모든 주민도 상인들도 몸을 떨면서 한 남자를 올려다보다 이내 눈이 마주칠까 서둘러 눈을 피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남자는 현재 한 여관의 주인장인 남자의 멱살을 한 손으로 붙잡고 한 손으로 검을 들며 위협하며 물었다.

“히이익! 다 낡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거지를 쫓았
습니다!”

“키와 덩치가 작은?”

“그렀습니다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남자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서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멱살을 잡은 여관의 주인장을 아주 살짝 힘을 주어 땅바닥에 던졌다. 그 모습에 아낙네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아직 10살밖에 안된 어린 아들을 꼭 껴안았다.

그런 어머니에 모습에 어린 아들은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땅에 떨어져 있던 나무 막대기를 든채로 고고하게 서있는 남자에게 달려갔다.

“아, 안돼! 토니오!”

어머니의 비명 소리에도 소년은 남자에게 망설임 없이 손에 나뭇가지를 꼭 줜채 달려갔다.

“이, 이 악당!”

금갈색의 눈동자가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달려
오는 어린 아이에게는 눈낄조차 주지 않았다.

[당신이 당신의 격을 아주 조금 개방 합니다!]

대신 격을 조금 개방하자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고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떨며 두려에 질린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건 어린 아이도 마찬가지 였다. 어린 아이는 주저 앉은채로 몸을 벌벌 떨며 손에든 나뭇가지를 떨어뜨린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당신의 악행에 다수의 권위자들이 당신을 질책합니다.]

그러든가 말던가 남자는, 섬멸자는 흑발의 소년의 흔적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흔적이 너무 깨끗하게 사라져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깨끗하게 정리한것처럼.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인가?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는 상당히 수상한 권위자였다. 그는 상당히 최상위에 속하는 권위자 같은데 몇백년 동안 살아온 유성헌이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기록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라는 칭호를 가진 자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스킬 ‘예상예지’(豫測豫知)가 발동 합니
다.]

[스킬의 효과로 당신의 사고가 예지에 가까운 사고
력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숨은 강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존재가 왜 그 절대멸자인 꼬마의 곁을 맵돌며 돕는지 의문들었지만 그것까지는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곧 바벨론(Babylon)이 다시 열린다.

그전에 어떻게든 그 꼬마를 찾아야했다.

유성헌은 마차 날아오르는 땅을 박차고 달렸다. 다
시 성녀에게 가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성녀가 더 이상 중앙 대륙에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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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21 16:07 | 조회 : 1,164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근면하게..((메세지 지옥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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