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어둠속에 거짓된 빛으로(4)

짐(?)이 하나더 생겼다고 해서 지상에서 가장 큰 황궁도서실에 안가는 것은 손해일 뿐이어서 도서실은 그대로 가야겠다.

“야, 너 우리랑 좀 같이 가야겠다.”

아직도 쭈구려서 벽에 붙어 있는 성녀에게 가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하지만 성녀는 뭐가 그리 불안한지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 떨고만 있었다.

“아,안가요. 저는 이곳에 있어야해요. 신도님이 그랬어요. 그게 대의를 위한 일이라고.”

성녀의 말에 소년의 후드 속 미간이 단번에 좁혀졌다.

나는 저런 족속들이 가장 싫어했다. 자신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대의라는 말로 포장해서는 스스로 사고하고 것조차 안하는 족속들.

자신의 정의보다 타인의 대의를, 시선을 신경쓰며 깨끗한척 하는 얼간이를 왜 내가 데리고 가야하는 건지.

“야, 너 바보야?”

“네?”

바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성녀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고 흑룡은 이게 무슨 재밌는 일이냐는 듯이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둘의 대화를 듣다 바보라는 소년에 말에 손으로 입을 막고 웃었다.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당신의 웃음을 싫어합니다.]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눈치를 주었지만 흑룡은 무시한채로 계속 두사람의 대화를 듣는데 집중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대의가 정의고 선이라고 생각해? 정말?”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의 말을 듣습니다.]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당신의 말을 듣습니다.]

“하, 하지만 신도님이 그랬는 걸요!”

“야, 그건 대의명분에 지나지 않아. 모두를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겠어! 그래 보고 듣기에는 참 허울좋은 말이지. 그런데 희생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누가 구하지? 대의가 구해줄까?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넘겨버리는 겁쟁이들이 그럴수 있을까?”

“그, 그건!”

“명예로운 희생? 같잖지도 않은 헛소리지. 너는 그저 남들을 위해서 라는 희생에 너 혼자 취해서 아무것도 보고있지도 않잖아. 많은 이들의 대의에 저항하는 것이 무서워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정의를 말하는것이 두려워서 그것을 대의명분으로 삼은 겁쟁이야. 성녀도 뭣도 아니라고.”

내 말에 울컥한 성녀가 언성을 높히며 반박했다.

“나는 스스를 위하면 안돼요. 나는 희생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 항상 그렇게 들어왔고 그렇게 살아야만 해요. 다른 방법은 모른다고요!”

자신의 양손을 꼭 붙잡은 성녀는 마치 자신을 괴로움을 숨기기 위해 그 작고 하얀 양손을 붙잡는듯 했다.

성녀는 혼자서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아무도 알려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비겁하게도 성녀는 그것을 방패로 명분삼았다.

알려고도 하지 않은채, 귀를 막았다.

“몰라도 괜찮아.”

다정한 목소리에 성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성녀의, 아직은 어린 15살의 소녀의 머리카락을 쓰담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너의 세상이 너에게 희생만을 가르쳤다면 이번에는 그 세계가 너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지 않겠어?”

없애고 싶다. 다수의 거대한 의지로 인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을. 나는 더이상의 희생 따위는 보고싶지는 않았다.

[당신의 강한 소망에 ‘멸’이 반응합니다!]

[‘멸’에게 나온 힘의 일부가 당신에게 일시적으로 깃듭니다.]

무언가가 나에게 힘을 주고 있는것이 느껴졌다. 반투명한 검은 스파크가 내 몸을 감싸는 듯이 올라왔다가 이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너, 너 멸자였어?”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당황해합니다!]

놀라서 입조차 다물지 못하고 있는 흑룡의 목소리와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보였다. 절대멸자인거 까지 알면 기절하겠네.

[일부의 ‘권위자’가 멸의 힘을 가진 당신에게 집중합니다!]

[일부의 ‘멸신’들이 당신의 말과 행동에 집중합니다!]

[당신의 의지에 심연의 가장 깊은 곳의 힘이 조금 움직입니다!]

[당신의 영혼속의 깊은 곳에 무언가가 태동합니다!]

계속해서 울리는 시스템 창을 무시하며 나는 눈물이 잔뜩 고인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성녀에게, 아니 어린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 소녀에 구원도 빛도 되어줄수없다. 누군가를 구할 힘도 능력도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거짓된 빛일뿐이었다.

그럼에도 거짓된 빛이라고 해도 누군가를 잡아 이끄는 정도는 할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보고 네가 직접 정의(正義)를 만들어. 타인에 정의에 휩쓸리지 말고 네가 직접보고 무엇이 올바르고 잘못되었는지 네 스스로 판단해.”

내밀어진 같은 작고 하얀손과 작은 체구를 가진 후드로 가려 얼굴조차 안보이는 소년을 소녀의 갈색 눈동자가 비췄다.

분명 온통 까만색 옷을 입고 있었고 옷도 다 낡은 옷이었지만 저 소년에게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희망을 주는 아주 따스한 빛이.

후드 밑으로 보이는 창백한 입술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내가 그럴자격이 있을까요?”

소년은 소녀의 물음에 웃기다는 듯이 조금 어깨를 떨며 웃었다.

“정의를 추구하는 것에 자격은 없어. 누군가의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기도 약이되고 하니까. 결국은 정의(正義)란 절대 다수가 규정한 정의(定義)에 불과해.”

나는 절대 다수의 정의에, 대의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이것 만큼은 스스로 결정해서 살아가고 싶었다. 어차피 살거라면 나는 당당히 살고싶었다.

“…제가 할수있을까요?”

내 손을 보던 소녀가 고개를 들어 나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없던 내가 할수있었어. 하지만 너는 너의 든든한 권위자도 있잖아?”

소년의 말에 소녀는 여태껏 무서워서 보려고 하지 않았던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자신의 신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지켜봐 주던 따뜻하고 걱정어린 시선이 격려해주는것 같았다.

소녀는 무서웠다. 혹시 자신의 신이 이런 자신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결국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을 5년이나 했다.

권위자에게는 짧은 시간인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에게는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오랜 시간을 망설이는 사이에도 소녀의 신은 항상 소녀를 지켜봤다.

“고마워요. 이런 부족한 나를 계속 지켜봐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눈을 크게 뜹니다.]

소녀는 눈시울을 붉힌채로 소년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지금 소년의 귀에는 메세지 폭탄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당신의 퀘스트의 진행도가 49%로 올라갑니다!]

[당신의 퀘스트의 진행도가 55%로 올라갑니다!]

[선계통의 권위자들이 일부 당신에게 흥미를 보입니다!]

[악계통의 권위자들이 일부 당신에게 눈똑들입니다!]

어떻게 날 보는 시선이 더 늘었다. 난 ‘정의를 추구
하는 권위자’ 한명이면 충분한데.

일어선 성녀의 키는 거이 나와 비슷했다. 조금 더 큰거 갔기도 하고. 이거 참 남자의 자존심은 어디로 간건지.

“흑룡아, 도서실까지 한번에 슉가자.”

성녀의 손을 잡은 채로 흑룡에게 다가갔다. 흑룡은 뭐가 그리 놀라운지 나에게 연신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너, 너 멸자…아니, 아니 그것보다 갑자기 왜 지켜보는 권위자들이 바글바글 늘었냐? 징그럽게!”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권위자들이 흑룡을 싫어합니다.]

“쟤들도 너 싫다는데?”

“뭐?!”

실실 웃으면서 약을 올리자 발끈한 흑룡이 허공을 노렸봤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권위자들이 침묵했다. 아,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를 제외하고.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빨리 여기서 벗어나자고 재촉합니다!]

“황궁 도시실부터 들리고. 거기 책좀 털고 가야지.”

[당신의 행동을 선계통의 권위자들이 싫어합니다.]

[당신의 행동을 악계통의 권위들이 좋아합니다.]

계통에 따라서 내 행동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구나. 보통은 선계통을 따르겠지만 난 내 마음대로 한다.

“칫. 왠지 인간의 부하가 된 기분이야. 난 위대한 드래곤인데.”

흑룡은 말로는 툴툴거리면서 손가락을 튕기었다. 그러자 공간이 비틀리면 중력이 사라지는 감각이 나를 덥쳤다.

“으아악!”

처음 겪어 보는지 성녀는 잡은 내 손에 힘을 주었다. 괜찮다는 의미로 나는 성녀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아주었다.

왠지 여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것 같다.

풍경이 바뀌며 나타난 곳은 엄청난 양의 책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도서실이었다.생각한거 보다 책의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크고 고급진 샹들리에가 천장에 반짝거리 며 붙어있었고 보는 곳마다 금장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은 없을거야.”

“돈지랄? 그게 뭐에요?”

성녀가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호기심을 빚내며 물었다. 흑룡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눈에 불을 내며 나를, 정확하게는 내 입을 보고있었다.

[당신을 지켜보는 다수의 권위자들이 단어의 뜻을 궁금해 합니다.]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미성연자가 있으 나중에 말해야겠다.

손을 놓은 다음 성녀의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린 아이는 몰라도 되는 말이야.”

내 말에 성녀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는데 귀여운 얼굴이라 더 귀엽게 밖에 안보였다.

“저랑 비슷한 나이잖아요.”

“아닌데? 나 26살이야.”

내 말에 성녀는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위 아래로 나를 살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진실이란다. 시간 축에서 벗어난 시간 선을 가지고 있는 나의 육체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대신 정신적 나이는 먹으니 나는 26살이 맞다.

[당신을 지켜보는 일부 권위자들 깜짝 놀랍니다!]

[당신을 지켜보는 선계통의 권위자가 당신의 발언이 진실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당신을 지켜보는 다수의 권위자들이 흥미롭게 당
신을 살펴봅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모든 정보를 보호합니다!]

[당신을 지켜보는 권위자들이 경악합니다!]

뭘 이정도로 놀래. 저 권위자들도 참 간이 작다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가장 가까운 책에 손을 뻗으며 책을 들었다.

그리고.

“…….”

전혀 읽을수 없는 지렁이 같은 글자가 책에 휘갈리듯이 써져있었다.

아, 맞다. 여기 이세계지.

…대화가 통하길래 잊고 있었다.

“흑룡아.”

“왜?”

내 옆에 서있는 흑룡을 보며 나는 씩 웃으며 말했
다.

“나 좀 망한듯.”

그냥 망한게 아니라 폭망했지. 용의 지식만 있으면 언어 따위는 껌일 텐데. 하필이면 금제 때문에 사용불가하다.

흑룡은 내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나를 보
고 있었고 그건 성녀도 마찬가지 였다.

“성녀야.”

“아, 네, 네!”

“혹시 어디 가보고 싶은 곳 없니?”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성녀는 당황했는지 연신 눈을 굴리고 있었다.

하긴 뭘 본적도 없으니 가보고 싶은 곳도 딱히 생각 안날것 같다.

“흑룡아, 너희집 가자.”

글자를 모르면 배울수밖에. 지력 높으니까 금방 배우겠지.

“드디어 나랑 살 맘이 든거야?”

[남색을 좋아하는 한 권위자가 당신의 발언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남색이라니 그런 취미 없습니다. 난 남자도 여자도 공평하게 다 싫다.

“그런 취미 없어.”

[선계통의 다수 권위자들이 당신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뭘 안도까지 하냐.

“너랑 살지는 않을 거야. 그냥 용 집에 놀러갈려고.”

“오면 생각이 달라질걸. 내 레어는 엄청 멋지다고. 다른 드래곤과 비교할 바가 못될정도지.”

콧대를 세우며 잘난채 하는 녀석을 보니 왠지 기분이 나빠진다. 저 자식을 놀리고 싶어지는게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러고보니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는 계속 어디로 사라지는 건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럼 어서가자. 성녀야 이리와.”

성녀에게 손을 내밀자 성녀는 망설임없이 내 손을 잡았다. 강아지 같기도 하고 참 귀엽네.

[선계통의 일부 권위자들이 당신들의 풋풋한 모습을 좋아합니다.]

물론 여동생적 의미로 귀엽다는 거다. 난 남자든 여
자든 일단 연애할 맘 없다.

“그럼 빠르게 가지고. 우리 집에 오면 저 놈들의 눈에도 닿지 않을 테니까.”

공중을 흘깃보며 미소짓는 흑룡은 참으로 사악해보였다. 마치 동화책에 나올 법한 사악한 용의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권위자들이 흑룡을 싫어합니다.]

이해된다. 저 오만하고 사악한 표정 싫어할만하다. 공감의 뜻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당신을 지켜보는 권위자들 다수가 당신의 행동을 좋아합니다.]

“그럼 가자고.”

행동력 빠른 흑룡이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이 일그러지고 중력이 사라지는 감각이 또 다시 나를 덥쳐왔다.

“그럼 나중에 봐.”

나는 권위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었다.

[당신을 지켜보는 권위자들이…….]

간접 메세지를 읽을 세도 없이 순간 이동되어서 보인 경치에 나는 말을 잃었다.

“으아아악! 내 암록의 정원이 왜 이래!”

흑룡이 발광을 하며 날뛰고 있었고 성녀는 내 뒤에 숨어서 두려운 눈으로 이곳 저곳을 살폈다.

어쩌면 아는 것인 지도 모른다. 암록의 장원을 이렇
게 만든것이 섬멸자 그 미친놈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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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20 17:49 | 조회 : 1,026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ㄷ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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