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온통 검은

태형아.
그 날은 정말 미안했어.
너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는데.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림을 그리는 네가 너무 미웠어.
나는 네가 잠깐이라도 눈길을 주길 바랐는데 너는 연필을 손에서 놓지를 않더라.

그래서 내가 결심했지.
네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계속 바라보겠노라고.

너를 감상하다가 나는 문득 바이올린 선율이 생각났어.
너를 닮은 아름다운 선율 말이야.

그래서 나는 너에게 말을 걸었지.
‘바빠?’라고.

너는 나에게 1초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이 빠르게
‘보다시피 아주, 매우, 엄청.’이라며 내 말을 잘랐어.

난 너의 말에 오기가 생겼어.
정말 쓸데없는 오기였지.

바쁘다는 너의 말에 난 입을 비죽 내밀며
‘나도 바빠.’라고 받아쳤어.

그제서야 나를 바라본 네가 말했지.
화실을 어슬렁 대면서 무슨 소리를 하냐며 말이야.

나는 떳떳했어.
나는 정말 바빴어.
너를 바라보는 그 순간순간마다 영감을 얻고 있었거든.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바이올린 곡이 완성되고 있었어.

너는 계속 화실에서 발을 분주히 움직이는 나를 째려봤어.
그리고 그 예쁜 입술을 깨물며 말했지.
‘제발 껄쩍대지 말고 네 방으로 가 줄래?’라고.

나는 싫었어.
나는 정말 네가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단 말이야.
그래서 싫다고 말했지.

너는 그런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어.
당장 널 방해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다시 안 만날 것이라고.

나는 네가 날 안 만나겠다는 소리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어.
세상에 그렇게 해맑게 이별을 고하는 천사를 본 적 있어? 없잖아.


그래서 나는 너에게 농담조로 너를 떠나면 난 레퀴엠을 써주겠다고 했지.


그 말이 화근이지.
죽음에 대해서 논하는 걸 죽어도 싫어하는 너에게 장례를 치를 때 연주하는 ‘레퀴엠’을 내뱉다니.
나는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레퀴엠’을 도로 담을 수 없었고, 너는 연필을 내려놓고 흑연이 묻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어.
그리고는 너의 눈을 두 손으로 덮었지.

사랑스런 나의 태형아.
네가 왜 그렇게 죽음에 관련하여 민감한지는 알지 못했어.
그저 그땐 내가 너에게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야.

너는 어깨를 움츠리고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어.

김태형.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너도 잘 알잖아.

다시 이때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그런 말 내뱉지 않을 거야.




태형아,
하지만 이미 늦은 걸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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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30 10:31 | 조회 : 1,065 목록
작가의 말
솔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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