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온통 파란

우리가 함께 살게 된 지 1년이 지났을 땐가, 우리는 그동란 너무 바빴잖아.
너는 미술 과제에 전념했고 나는 바이올린 과제에 목을 매느라 정신이 없었어.
그래서 난 겨울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렸지.

너와의 여행을 준비했어.
너에게 비밀로 하고 말이야.

처음에는 어디로 놀러갈 지 한참을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너랑 바다를 가 본 적이 없더라고.
너와 닮은 반짝이는 밤 바다를 말이야.

처음에는 저 멀리 아시아로 떠나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너와 프랑스를 가 본 적이 없었어.
물론 나는 여러 콩쿠르와 연주회 덕분에 프랑스를 자주 들렀고, 너도 나와는 아니지만 예술을 위해서 프랑스로 향한 적이 있지.

그때마다 우리는 각자 전화기를 붙들고 서로를 그리워했어.


이번에는 우리가 서로를 갈망한 그곳에서 서로를 마주보기를 바랐지.

난 프랑스 바다에 꼭 가 보고 싶었어.
아름다운 바다와 그보다 더 아름다운 네가 함께하는 그 장면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거든.

그 모습은 네가 상상해도 빛나지 않니?

맞아.
바다와 달빛이 함께하는 프랑스 에트르타는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장관이었어.
너는 바다를 배경으로 나를 향해 밝게 미소지었지.

나는 너에게 두 팔을 내 벌리며 다가와 안기라고 했어.


달빛을 품에 안으려고 했던 것이 나의 욕심이었을까.
너는 나에게 다가오려고 했던 그 순간에 발걸음을 멈추었어.
그리고 네가 나에게 말했지.

'정국아, 춥다.'

너의 말에 나는
'바닷바람이 시리잖아, 태형아. 이리와, 안아줄게.'
라고 말했어.

나는 네가 춥다는 그 소리에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어.
그저 바닷바람에 추운 것 뿐이라고만 생각했지.

추위에 떨던 너에게 나는 다가가서 몸을 녹이려 들었어.
나는 그때 너를 품에 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너의 몸은 얼음덩이 같았고, 너는 마치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몸을 쉴 새 없이 떨고 있었거든.

이때 나는 너무 무서웠어.
우리는 젊었고, 아니 우리는 너무 어렸고, 마음이 편한 우리의 집이 있는, 영국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내 눈앞에 있는 하얗게 질린 작은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지.

다행히도 멀리서 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라.
그 남자가 아니었으면 난 너를 따스한 침실에 눕히지 못했을 거고, 지금 이 글을 마음 편히 쓰지도 못했을 거야.

남자는 이미 반쯤 기절해 있는 너에게 자신의 침실을 내어주고 그런 너를 보며 마음을 졸인 나에게 따뜻한 우유를 내주었어.

남자에게 고마웠지.
지금도 참 고마운 사람이야.


그렇게 나는 우유를 받아들고 네가 누운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 앉았어.
아침에 일어나 너와 눈을 마주하니, 너는 나를 향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어.
나는 너에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너에게 돌아오는 답은 '미안해'였지.

나는 너에게 미안할 것이 없다고 다독였어.
너는 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어.

너는 네가 추위에 떨던 그 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어.
나는 그런 너이게 아무런 설명 없이 반지가 반짝이는 너의 손을 꼭 잡고 너의 이마에 입술을 부볐지.


사랑하는 태형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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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30 09:38 | 조회 : 1,03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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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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