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생존






재민의 집, 정확히는 같이 살았던 옛 집에 머물러 있기를 벌써 사흘이다. 하원은 아예 전원을 꺼버린 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문자는 [어디?]가 전부였다. 걸리면 호되게 혼나겠군, 그리 생각하며 다시 휴대폰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지난 사흘간 재민은 몹시 바빴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집에 들어와 밥을 먹고 갔다. 몸은 요리하던 제 버릇마저 지워버렸는지, 오래간만에 잡은 칼이 제 손에 상처를 냈다. 나름대로 의대를 3학년까지 다니었기에 스스로 치료하는 법쯤은 알고 있었지만 상처가 나면 그걸 치료하지 않았던 건 ‘그 때’부터의 버릇이었다.
“네가 아무리 아픈 걸 좋아한다지만, 피를 보는걸 좋아할 줄은 몰랐네.”
피를 대충 눌려서 멈추고 있던 자신을 보며 꺼낸 재민의 첫 마디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무엇이었더라, 자신이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게 되었던 이유가. 하원은 어깨만 으쓱거리고 이로 제 혀에 박힌 피어싱을 툭툭 건드렸다. 일종의 버릇이었기에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재민은 사흘간 하원에게 그만 나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쇼파에 누워서 과자를 까먹던, 집 안을 어질러놓던, 그리고 밤에 스스로 자위를 하던, 그는 눈길조차주지 않았다.
“불감증이야?”
결국 하원은 보다 못해 말했다. 그 말에 재민은 가만히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알던 하원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혹은 자신에게 한 저급한 말 때문에. 그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에서 또 만족감을 느낀 하원은 아니야, 하며 다시 입 꼬리를 올려 웃어보았다. 잘난 면상 위로 줄이 하나 둘 새겨지면 이상하게 묘한 쾌감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하원은 병원으로 달려간다. 설마하니, 격하게 싸우고 나간 재민이 사고를 당했다고. 그 전화를 받자마자 심장이 내려앉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아 간신히 병원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며 수술 또한 무사히 끝났다. 1인실로 들어가는 재민의 손을 꼭 잡아보았고, 그 순간 하늘에게 빌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괜찮으니, 그를 살려주세요. 그가 안전하기만을 바랄게요. 제발.
“누군데?”
신은 하원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 대가 또한 받아갔다. 하원의 전부였던, 재민을. 그의 재민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들고 갔다. 기억으로는 부족했는지, 그의 감정을 몽땅 가져갔다. 재민이 자신을 부정한 그 날, 하원은 혼자 집에 틀어박혀 모든 눈물을 다 쏟아내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그가 무사하다는 그것 하나였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다 토해내고, 그걸로 모자라 간절히 재민에게 부탁까지 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꿈에서 깼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눈물이 철연하게 제 눈꼬리에 달려있었기에 거칠게 닦아내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것 마냥 온 몸이 아파왔다. 쇼파에서 내려와, 베란다로 향했고, 담배에 불을 붙여 제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매운 연기가 폐 안을 가득 채우고 나니 온 몸이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고층 빌딩, 이 집을 장만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지. 처음에는 방 한칸의 원룸에서 시작했던 것이 어느 새인가 최고급 빌딩의 한 층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내려다 본 아래는 너무나도 아득해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미안.’
그의 대답이 느릿하게 귓가를 때리고 들어온다. 뭐가? 무엇이 미안한데? 지금도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하원의 입가로 미소가 걸렸다. 그 사과 한마디가 너무나도 아팠다. 자신의 입을 막고, 앞으로도 자신의 부탁을 단번에 거절하는 그 단어 하나가 하원의 가슴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기억과 감정이란 금방 돌아오겠지, 그렇게 다짐했었던 과거에 자신이 고층빌딩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헛웃음이 세어 나온다. 과거의 기억은, 그게 얼마나 달콤했더라도, 하원에게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돌아온다. 경련하듯이 일어나면 온 몸은 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소리쳤고, 심장은 다시 되돌려 달라 발길질을 하였다. 한 갑을 다 피워냈을 때, 문이 열리고 재민이 들어왔다. 밤늦게까지 수술이 있었던 것일까, 지친 몸을 끌고 들어오는 재민을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수술? 고생했네.”
“ …담배 작작펴.”
남이사. 가볍게 대답하고는 마지막 담뱃불을 껐다. 처음 담배를 피우는 하원을 본 재민은 나지막이 왜 피우냐고 물어봤었다. 그냥. 더도말고 덜도말고 하원의 대답은 그것이었다. 하원은 그 누구보다 담배연기를 싫어했다. 어머니가 폐암이라는 것을 들은 순간부터 그는 철저하게 재민에게 금연을 요구했다. 어릴 적, 어머니의 애인이 제 얼굴에 피우던 그 연기가 너무나도 싫어서 차라리 혼절해버리는 것이 나았을 정도라고 자주 말했다. 그랬던 하원은 어느 새인가 하루에 한 갑이 넘어가는 개수를 피운다.
“담배 대신 섹스면 되는데.”
“개수작부리지마.”
“흐응?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네.”
머무는 동안의 빚값을 낸다잖아?
하원의 마지막 말에 재민은 말없이 그를 내려보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재민이 사라지자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참았던 모든 숨을 몰아쉬었다. 가까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좋았지만 그만큼 아팠다. 제 가슴팍을 퍽 소리 나게 두어번 쳐본다. 그만둬, 네가 다시 뛰면 안 되는 거야. 너는 나와서는 안 돼. 죽어.
…차가운 바닷물은 자신이 정신을 놓을 때면 항상 느껴졌다. 떨쳐내고 싶어도 사라지지 않은 감각이었다. 마치 자신을 원망해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마냥.
“나 돌아갈 건데.”
“… 근데?”
“아쉽지 않아?”
노골적으로 물었다. 재민의 집에 일주일정도 머물렀을 때였다. 더 이상 연락을 피하면 위험하겠다 싶어져서, 이제 돌아가려했다. 재민은 흥미 없다는 듯이 신문을 보고 있었고, 하원은 챙길 것 없는 그 작은 가방조차 없어서 주머니로 집 안의 공기를 쓸어 담았다. 행복했다. 그가 아쉽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만족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김 하원.”
“응?”
느릿하게, 최대한 천천히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미 다 묶여있던 끈을 억지로 풀어서 다시 묶고 있었을 때, 재민이 다가와서는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자는 건가? 싶어 자신의 손으로 가볍게 잡아보니 그는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휴대폰, 내놔.”
“안 훔쳤어.”
“네 거. 바보야.”
하원은 잠시 멍했다가 얼른 주머니를 뒤져 제 휴대폰을 내어주었다. 그는 번호를 몇 번 울리더니 자신의 이름까지 고이 저장해놓았다. 오, 세상에. 하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 재민, 그 세 글자가 이렇게나 좋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힘차게 일어나서 활짝 웃으며 휴대폰을 흔들었다.
“차단하지 마~ 종종 연락할게.”
재민은 대꾸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지만 하원은 헤실 거리고 웃으며 밖으로 나섰다. 그의 번호가 담긴 휴대폰은 제 품 안으로 밀어 넣고.
돌아온, 집은 여전했다. 술병이 나뒹굴고 그 사이에 그가 있었다.

그 날, 팔이 부러질 정도로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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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21 02:59 | 조회 : 931 목록
작가의 말
MIRIBYEOL

천천히 진행할게요~ 과거가 중간중간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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