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생존





하원은 정신을 잃은 지 하루가 지나서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병원 천장이었고, 무거운 몸을 끌어다 상체를 일으키니 팔에 더 무거운 깁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어제를 떠올렸다. 집으로 조심히 들어가자마자 술병이 날아들었고 잔뜩 초췌해진 ‘그’가 자신을 반겼다. 이 상훈, 자신이 같이 살고 있는 남자이다. 동거하며 몸을 섞는, 그리고 상사 그 두 가지를 빼면 둘 사이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는다. 아, 채무자 정도가 있겠다. 그는 하원에게 지난 일주일간 어디에 있었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두들겨 팼을 뿐이다. 그가 화난 이유는 아마 첫 째가 손님의 클레임일 것이고, 두 번째가 말도 없이 사라진 자신 때문일 것이다. 상훈은 자신이 일하는 바(BAR)의 점장이지만 종종 술을 마시면 하원을 때리곤 했다.
“전치 2주. 조금 금이 간 정도래.”
“…아예 죽이지 그랬어? 아, 그러면 돈을 못 받아내는구나.”
짝-.
술이 깬 상훈이 하원을 때리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 그럼에도 그는 손을 올려 하원의 뺨을 거칠게 내리쳤다. 하원은 아무런 말없이 몸을 돌려서 다시 누웠고 나가라고 손짓한다. 네가 때렸으니 병원비는 네가 내. 그렇게 말하는 게 다였다. 상훈에게 맞는 날이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머리가 아파온다. 바에 오는 몇 명의 손님과 약속을 잡고 돈을 받아, 하원에게 잠자리를 요구한다. 그는 하원이 자신의 말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고, 그걸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용해먹었다.
“망할 놈…. 얼굴은 때리지 말라니까.”
맞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 익숙함에 숨이 막혔다. 맞다보면 중간부터 아예 정신을 놓아버린다. 그 편이 더 편했다. 그래서인지 중간부터 기억이 날라 갔다. 다행히 이는 무사한 것 같고, 가드 했던 팔에 작은 금만 갔다고 한다. 휴대폰을 열어서 재민에게 문자를 보냈다.
[뭐해?]
[심심해]
[야 씹어?]
[하 재민.]
...
답이 없다. 성질을 내며 휴대폰을 머리맡에 놓자마자 강한 진동소리와 함께 그에게서 답이 왔다. [시끄러워] …귀엽지 않긴. 중얼거리는 하원의 입가로는 미소가 잔뜩 걸려있었다. 그와 잘되겠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떠돌이마냥 돌아다니면서도, 정신을 놓고 걷다보면 항상 그의 집 앞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면서 손을 뻗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었다. 나를 잊은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기에 그게 제 가슴을 후비고 파냈다. 아름답게 빛나는 당신의 옆자리는 원래 자신의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옆에 자신은 없었고, 저 밑으로 추락해있었다.
[나 입원했어.]
보내고 나서 스스로 후회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내고 메시지를 지우려 들어가 보니 이미 읽은 후였다. 세상에, 그가 그냥 넘기게 해주세요. 하필이면 자신이 입원해있는 병원은 그가 일하는 곳이었다. 물론 건물이 달라서 그것조차 모르겠지만. 정신을 놓고 맞다보면 자신은 집, 혹은 병원에서 눈을 뜬다. 언제는 응급실이었고, 언제는 병실이었다. 처음에는 재민에게 들킬까봐, 무서워서 다 낫지도 않은 몸을 끌고 퇴원을 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입원했을 때부터는 급하게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퇴원 날짜를 넘겨서까지 누워있었다. 마지막에는 상훈에게 멱살이 잡혀서 퇴원했지, 참. 그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었나보다. 자신이 누워있다는 것을 그가 알아주길, 그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몸을 일으키다 자신의 배를 부여잡았다. 옷을 들추어보니 배 한가운데로 커다란 멍이 들어있었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숨 쉬기가 어렵더라니, 낮게 중얼거리며 다시 옷을 내렸을 때 진동이 울렸다.
[근데?]

딱딱하긴.

[병문안 안 와?]
답이 없다.
바랄 것을 바래야지. 휴대폰을 내려놓는 손이 무수한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팠다. 심장을 타고 나와, 제 몸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닌 바늘인 것 마냥, 손끝부터 발끝까지 아파져 괜히 이불을 덮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피는 다시 심장으로 돌아간다. 아픔은 결국, 심장으로 돌아왔다. 호흡이 어려워졌고,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며 다시 정신을 놓았다.
헉.
숨을 삼키며 정신을 차려보니 밖은 벌써 어두컴컴해졌다. 해가 벌써 떨어진 걸까,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해보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읽고 씹다니, 못됐어. 짜증을 내며 시계를 확인해보니 벌써 9시였다. 상훈은 오늘부터 다시 일을 나간다고 했으니 밤늦게까지 혼자 있어야 했다. 식은땀을 닦아내며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자니 병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불 좀 켜.”
“어?”
형이 왜?
그리운 목소리에 상체를 빠르게 일으키다 고통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눈은 빠르게 그를 쫓고 있었다. 재민은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제 앞에 앉아서 봉투를 열어. 편의점에서 사온 것들을 잔뜩 꺼내놓았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재민을 보다가 봉투로 눈이 향했다. 다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 기억이 돌아왔을 리는 없고, 습관인 것 같아보여서 그저 웃으며 바나나 우유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오기 싫어하더니?”
“안 오면 올 때까지 심심하다고 연락할까봐.”
“그렇게 잔인하지 않아.”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재민은 하원의 표정을 보더니 손을 뻗어 턱을 잡고는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한다. 의사의 직업병이네, 하원의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고 그의 몸을 살피더니 다시 의자에 앉아서 무감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하원도 자신의 몰골을 보지는 않았다. 다만, 눈가가 욱신거리는 것이 맞아서 멍이 들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원은 그저 맛있겠다, 라고 말하며 재민이 사온 간식거리들을 먹기 시작했으나 제대로 먹지는 못했다. 입 안이 찢어져 나뒹구는 살점에 과자들은 빠르게 포기하고 음료만 마시기로 한 것 같다. 아무런 말없이 제 앞에 앉아있는 이 잘난 면상, 재민을 보더니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제 퇴근한 거야?”
“아니, 학회 갔다 왔어.”
아, 그래서 복장이. 그럼 병원이 아니었겠구나.
문득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병원이 아닌데도 그는 자신의 병문안을 와주었다는 것이 되니 말이다. 나 원래 이렇게 단순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빨대를 물었다. 항상 입원하는 것은 싫었다. 특히 병실에 혼자 있는 것은 더더욱 싫었지만 병원이 싫다고 도망이라도 치면 성훈이 무섭게 따라왔기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배가 어느 정도 불러오자 음료를 놓고는 몸을 뒤로 기대었다. 별다른 말이 없는데도 재민은 떠나지 않고 앉아있었다. 심심하지도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이런 플레이를 한 건가?”
“어?”
재민의 질문은 하원의 예상을 뛰어넘었기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길을 가다가 차에 치이기라도 했나?”
“왜, 그랬으면 좋겠어?”
습관처럼 날이 잔뜩 서있는 하원의 질문에 재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가 이내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아차, 싶어서 장난이라며 서글하게 웃었다. 퉁명스럽게 꼬투리를 잡는 것은 제 습관이었다. 물론 재민과 헤어지고 난 후에 생긴 것이었다. 자신의 비꼬는 말에 재민은 난 의사야. 하는 말을 하고는 울리는 제 휴대폰을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환자인가보다.
“아프면 무통 주사 놓아달라고 해. 그 정도는 내줄게.”
“그럼 달아줘. 나 지금 죽을 만큼 아프니까.”
당당하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한 마디를 안 지네. 그 말을 남기고 재민은 뒤 돌아 가버렸다. 그가 간 자리가 아쉬워, 한참을 병실 문만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간호사가 들어와 무통 주사를 놓아주고는 나갔고, 그 덕에 그날 밤은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그러나 하원은 또,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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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22 01:35 | 조회 : 985 목록
작가의 말
MIRIBY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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