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빙의자였다. 그의 말로, 나는 그가 보던 소설의 주인공이었으며, 자신은 그런 나에게 죽임당하는 엑스트라 악역이라 하였다.

물론 지금은,

"무슨 생각해요?"

나의 사랑스런 연인이지만.

"아무것도 아닙니다."

쪽, 간지러운 소리에 그가 해맑게 웃어보였다. 그와 나누는 사랑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여, 나는 그의 허리를 꼭 팔로 감싸 안았다.

"갑자기 또 왜이런데. 흐, 간지러워요."

"푸흐..."

그의 새하얀 목에 얼굴을 파묻고 입술을 부볐다.

"앗, 따가. 잠깐 나쫌 봐봐요."

그가 내 턱을 붙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하였다. 다람쥐 같은 동그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입술이 다 텄잖아요. 하여간."

자연스레 주머니에서 딸기 향 립밤을 꺼낸 그는 나에게 그걸 발라주었다.

"굳이 발라야겠습니까?"

사실 립밤 특유의 끈적거림과 인위적인 향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그랬듯 투덜거렸다.

"이제쯤 익숙해지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까무룩 눈을 감았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파고드는 안좋은 생각.

그의 이름을 부르며 슬쩍 코 밑에 손가락을 데었다. 다행히, 숨은 내쉬고 있었다. 그때, 다시 그의 눈동자가 번쩍 떠졌다.

"뭐야...? 너, 너 누구야?"

당황한듯 한껏 찡그려지는 인상.

"...그게 무슨..."

그는 내 손을 내치며 내게서 떨어졌다. 그러곤 더럽다는 듯, 옷을 털어내었다.

"그런 장난은 그만 쳐도..."

당황한 내 모습에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뭐야, 오랜만에 본다?"

무언가 이상함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연기를 못하는 그가 저런 짓을 할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

얼른 그를 내쫓고 비틀거리며 쇼파에 앉았다.

그는 빙의자, 그런 그의 몸 주인인 저녀석이 돌아왔다는 건 그의 영혼은 그가 원래 살던 곳으로 갔다는 소리였다.

"...그럴, 그럴리가..."

숨이 점점 거칠어지는듯 하다. 그런 나를 달래주는 다정한 손길도, 부드러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하루면 충분했다. 그걸 인정한 뒤로, 나는 그의 흔적이라도 잡고자 그와 나눴던 추억들을 하나 둘 되새겼다.

그와 함께했던 식사를, 그와 함께했던 여행을, 그와 함께했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음 어딘가 뚫린것 처럼 줄줄 새어나왔다.

....그의 겉모습이라도 봐야 할까. 그러면, 조금은 참을수 있을까?

***

새 종이에 차분한 필체로 무언가 새겨져 있다.

- 그를 만나러 가기 시작했다. 만나주지 않아도 그의 집 앞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다리가 아팠지만, 정말 더 이상은 참지 못할것 같기에.

- 그와 만났다. 그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지만, 난 기뻣다. 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마음이라도...갖고 싶어 졌다.

- 그래, 그와 그는 같지 않다.

-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그는...그는 그가 좋아했던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놓을수 없어.

- 같은 점을 발견했다. 그는 단 것을 싫어해.

- 그가 나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와 비슷한 느낌에 어쩐지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나의 연인과는 다르다.

- ...짜증난다.

- 조금 미안해졌다. 이미 사귄지 100일이 넘어가지만, 나는 그를 대체품으로 밖에 여기지 않아.

***

"...사랑해."

거짓으로 속삭였다.

"나도."

빙긋 웃으며 그도 속삭였다. 어느샌가 그 관계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역시...

"....정말, 정말 사랑해..."

나는 이 말을 그에게만 들려주고 싶었다. 미안합니다, 이런 이기적인 인간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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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07 00:07 | 조회 : 4,159 목록
작가의 말
11月

음...어...리퀘는 쓰고 있는데 현제 씬만 쓰면 끝이거든요...문제는....수련회에 가족모임에 제사에 시험 끝나고 너무 바빠서;; 금방 써서 올리도록 노력하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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