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해와 달, 군신의 관계 (하)

숨어서 은밀하게 회의를 지켜보던 운은 이 회의에 참석한 누구보다 놀랬다.
원이 계속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해지기 때문이었다.


‘운아, 보고 있는냐. 나는 너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다. 내가 황제가 되어야하는 이유는 너의 직책이 호위무사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호위무사직을 사퇴한 네가 없는 왕좌는 나에게 사치에 불과하구나...‘

’내가 너를 지키겠다 맹세하였다. 이 맹세 앞에 왕좌는 너무 걸리적거리는구나.‘

’나와 함께 황궁을 벗어나자꾸나.‘


자신을 향해서 끊임없는 구애를 던지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원.
자신을 지켜주겠다. 그리 올곧은 눈이 자신을 향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원은 자신이 운에게 지켜지기만 한다고 자책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반대임을 자각하지 못하십니다, 폐하..“


사실 지켜지고 있는 것은 운인 것을.
자신에게 빛을 비추어 준 것도 운이며, 자신에게 해가 되어준 것도 원이었다.
달이 되지 못하면 별이 되어 그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키겠다 다짐을 한 것도 원이 해이기 때문이었다.

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달이 그를 지키더라도. 별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의 빛 속에서라면 보이지 않은 채 살아가도 된다고 그리 수십 번을 다짐한 운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가 해를 지키겠다 다짐했다.
원에게 없는 말을 해가며, 자신에게 은애한다 하지 못하는 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음에도, 그의 마음에 못을 박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지키자, 그것이 별임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해는 자신에게 달이 되기를 바랬다. 같은 하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자고.
올라오기가 무섭다면 자신이 내려가겠다고. 별인지 달인지 모를 그에게 모든 것을 걸겠다고.

원은, 해는, 그를 향해서 너무 밝게 빛나고 있었다.

*

*

*

역사에 길이 남을 회의가 끝나고, 원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눕자 금색으로 장식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가 된 기간과 함께한 자신의 방이었다. 하지만, 이 방의 천장을 섬세히 살펴 볼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가지지 못했던 원이었다.

그런 천장을 살펴보면서 원은 지금도 자신의 곁에 있을 것이 분명한 자신의 것을 불렀다.
대답하지 않을 것이 뻔했지만, 이 날밤을 모두 샌다고 하더라도 원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운.“

”.....“

”이제 모습을 드러내도 좋지 않겠느냐... 내 그리 전했거늘 부족한 것이냐...“

”.....“

”....후, 내가 얼마나 더, 노력하면 되겠느냐, 내가 얼마나 더...“


스윽.

바람이 부는 듯한 착각이 일면서 원의 앞에 검은색 인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용히 드러내는 모습에 놀랄 만도 했지만, 원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그 인영이 완벽히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내, 인영이 모두 드러나자 침대에 누워있던 원이 몸을 반쯤 일으켜 그 인영에게 손을 뻗었다.

인영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복면을 제거하자 운이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운의 얼굴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가자 움찔하면서도 피하지 않는 것에 원은 안도감을 느꼈다.


”운아, 은애한다. 내 너를 많이 은애한다. 황제가 된 것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도 내 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내 너를 내 것으로 하기 위함이었어. 이 자리가 너를 지키지 못할 자리가 된다면, 나는.“

”.....“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운에게 원은 자신의 마음을 읊조리듯 조용히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이렇게 마음을 고백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상상해서도 아니 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황제가 되었던 운에게 지금 상황에서 예도 불충도 귀찮은 것에 불과했다.


”나는, 너를 위해 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 내게 너의 존재란 그런 것이다. .....너에게 나의 존재는 어떠하느냐?“


잠시 말을 멈추었던 원이 말을 이었다. 진심이 묻어나오는 말에 운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운의 손이 부드럽게 원의 손을 감쌌다. 차가운 손이었지만, 원은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해와 함께 뜰 수 있는 것은 달이라, 달이 되지 못하는 저는 별이 되리라, 폐하께서 손을 뻗어주신 그 날부터 저는 그리 살아왔습니다. 폐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 지키겠노라, 달이 해를 원하면 흔적없이 사라지리라. 그것이 저의 결심이었습니다.“

”...해는 달과 한순간을 같이할 뿐이다. 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보다 더 빛나기도, 더 멀리 가 있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나는 너에게 별이 되라 명한 적이 없다. 너는 나와 함께 걸어가는 유일한이 되어, 나와 함께 걸어가야 할 것이다.“

”명..입니까?“

”명이다. 운의 이름으로 원에게 명하는 진명이다.“

”...존명“


명을 받아드는 운의 얼굴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확실한 미래는 아무것도 없이 어두웠지만, 그 길조차도 운과 원 함께 걸어간다면 행복해 질수 있을 것 같았다.

별은 해를 지키며, 해는 별을 지키며 존재할 듯 공존하지 않는 둘이 함께 합쳐졌다.
해와 달보다 더욱 깊으며 담백한 관계였다. 평화가 그들과 함께 하기를 바랬다.







’제국력 235년, 새 황제가 즉위했다.
제 2황자가 귀족의 신분이 된 이후의 즉위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혼인도 함께 진행되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제 1황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그의 출생과 존재,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그것 뿐이다. 그가 언제 죽었으며, 왜 죽었는지 또한 불분명해 출생 이후, 그의 흔적을 역사서에서 찾을 수 없다.

전 황제의 즉위 이후, 제 2황자의 즉위 시간까지의 공백이 존재하는 점 또한 수상하다.

‘장자가 가장 먼저 혼인한다’ 는 혼인법에도 불구하고 그의 혼인 기록은 남겨져 있지 않다.
그가 어릴 때 병으로 사망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나, 시기상 역사서에 사건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불로불사였다는 점도 가장 유력한 설로 손꼽힌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었다거나...
이 사실을 파헤쳐 나가는 것이 역사계의 중요한 사실로 남게 될 것이다. ‘

- 제국의 역사서 ‘제국의 비밀을 파헤친다.’ 中


- 02. 해와 달, 군신의 관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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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05 01:58 | 조회 : 2,380 목록
작가의 말
아스므랑

내일은 해와 달, 군신의 관계 외전편으로 찾아 오겠습니다! (아마도 1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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