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상은 봄과 함께(1)

"하아아암.."


료하는 턱을 괴고서 무료하다는듯이 하품을 길게 내뱉었다.
눈에는 자연스레 눈물이 고여있게 되었고, 료하는 손가락으로 그 눈물을 닦아내었다.


"자, 이 방정식에 경우에는..x에 2승을 대입해서.."


전교학생들이 제일 지루하게 느낀다는 수학시간이였다.
'전교'까진 아닐테지만, 분명 지루하게 생각하는 학생의 수가 수학을 재밌게 생각하는 별종 학생보다 더 많다는건 사실이니 그렇다 치기로 하고...


'내가 이렇게 학교에 나와있어도 되나...'


료하는 내내 이 생각에 사로잡혀 턱을 괸채 창문가로 시선을 던졌다.
분명 사건이 크게 벌어져야 정상이였을 벚꽃나무언덕은 너무나 평화롭게... 마치 그 일이 정말로 있었냐고 료하에게 속삭이는 것 처럼 말끔해져 있는 상태였다.
처음엔 료하도 놀라고 뭐가 뭔지 몰랐지만 그녀석, 제오는 저게 하루 이틀일도 아니라고 했다.
언제나 자신을 습격한 뒤에는 그 현장에 시체건 흔적이건 다음날 와보면 멀끔해져 있었고, 제오는 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했다.


"...그렇게 해서, 21번 문제를 보면..."


지루한 수학시간은 계속 되고 있었다.
교사의 말이 자장가로 들릴때 쯔음... 료하가 고개를 꾸벅 떨어뜨렸다.
''헉!''하고 겨우 손으로 머리를 받쳐서 책상에 머리를 들이받지는 않았다.
덕분에 잠이 확 깬듯 눈이 말똥해졌다.
'그나저나... 제오는 잘 있을려나..'
사실 또하나의 논제가 료하의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며칠전부터, 료하는 학교에 갈때마다 제오에게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단단히 못을 박아두었지만 제오는 혈기왕성한 18세의 그릇에 맞게 잠시도 집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니, 집안꼴이 이게 뭐야!"
"오, 료하 왔어? 어서와~"
"어그래.. 다녀왔.. 아니! 그러니까 집안이 왜 이렇냐고!!"


료하는 시어머니마냥 호통을 치고 , 집안에서는 유일하게 제오만이 미소를 잃지않았다.
집안은... '난장판'이였다고 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건지, 집안에 모든 식기나
옷이나, 아무튼 제오 눈에 신기해보이는건 닥치는대로 꺼내든것 같았다.


"그게... 이것저것 재밌어보여서...."


제오가 뺨을 긁적이며 비죽하고 오리입 처럼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정리정돈은 하라고..."


료하는 끄응 하고 신음하며 집안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숟가락, 젓가락, 냉장고에서 꺼낸건지 고기도 흩뿌려져있었다. 료하는 그것을 유심히 보더니
차게 식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이거 먹었지."
"뜨끔."


아닌척 잡아때려고 제오는 딴청을 피우고 있었지만 이미 "뜨끔."이라고 말한 순간부터 아웃이라고 이놈아...


"됐고, 정리하는거나 도와줘."
"응~"


제오는 료하를 따라하듯 바닥에 놓인 물건을 하나하나 집었다.
집어서 한곳에 모아두니 얘가 얼마나 꺼내든건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하는짓이 무슨... 개 같다'
욕이 아니고 그 말대로 개처럼 느껴졌다.
뭐.. 어쩔수 없나.
료하는 앞머리를 털고는 역시 제오에게 상식이라는걸 가르켜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고서 정리를 계속했다.










"자, 이건 '숟가락'"
"응! 그건 숟가락."
"그럼 이건?"
"음... 나뭇가지?"
"아니야!! 나무 '젓가락'이라고"
"오호.. 나무젓가락!"
"나무가 아닌건 그냥 젓가락이라고 말해야해."
"나무가 아닌건 그냥젓가락!"
"아니! 그냥 젓가락이라고 말하라고"
"응. 그냥젓가락"


''후우'' 이정도 일줄은 몰랐는데...
료하는 진땀을 뺐다. 18세에 맞게 반항기라도 온것인지 영 엉뚱하게 말을 알아들으니... 이 녀석이 이렇게 말을 잘하는것도 참 신기하다 생각했다.
료하는 그러고보니.. 하고 생각하며 물었다.


"됐다. 어차피 젓가락이야 말할일이 적기도 하고...
그나저나, 말을 꽤 유창하게 잘하는 것 같은데?"
"응? 그런가?"
"원래 그정도로 상식이 없으면 말도 어물거릴거라 생각했는데.."
"으음~ 모르겠다!"
"..너가 뭐 그렇지.."


료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해도 약간 의구심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그건 그냥 넘기고, 배고프지않아? 밥은 잘 챙겨먹었냐"
"료하집엔 먹을게 많더라!"
"너..설마.."


료하는 설마..하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활짝 여니,
냉장고에는 덩그러니 무 몇개와 두부, 시금치통만 있을뿐이였다.
그외에는...


"다 털렸어!!"
"뭐가 털려?"
"냉장고가 털렸다고!! 너한테!"


료하는 경악에 찬 목소리로 머리가 지끈거리는걸 엄지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집에 먹을게 거덜났다.
사실 이런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제오와 같이 산지도 이제 2~3일정도 흘렀지만
이정도로 식량이 거덜나긴 오늘이 처음이였다.


"너..앞으로 냉장고 주위엔 얼씬도 하지마라"
"알았어~!"


제오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한채 기지개를 쭉 폈다.


"근데~ 여기에만 있으니까 심심하다."
"심심하면 티비보면 되잖아."
"티비? 티비라면 이 네모난 통을 말하는거야?"
"..그래도 티비는 아네."
"돌아다닐때 많이 보였으니까!"
"응? 그럼, 넌 숲에만 다닌게 아니고 길거리에도 다녔었어?"
"가아끔"


이건 꽤 의외인데... 하고 료하는 짤막하게 생각을 마치고는 제오에게 티비를 켜는 방법과 채널을 돌리는 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단어를 가르쳐주는것 보단 눈으로 직접 보는게 더 이해하기 쉬웠는지, 티비 키는 방법은 순식간에 터득하고는 다음날에 집에 와보니 티비에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티비에는 예능프로그램을 방영하는 중이였고, 제오는 간간히 웃음 터트리며 티비에 열중해 하고 있었다.
'으에.. 저거 딱히 재미없는 개그만 한다는 예능 프로잖아... 저런걸보고 잘도 웃을수 있네..
난 처음화만 보고는 그다음부터 다시는 보지 않았는데... '
료하는 장바구니를 든채 그런 제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난 장보고 올테니까 얌전히 있어라, 절대! 절대 사고치지 말고!"
"..."


제오는 티비를 보며 웃다말고 고개를 뒤로 돌려 집밖을 나서려는 료하를 바라보았다.
료하는 이미 집밖에 한쪽발을 걸친 상태이지만 아직 완전히 밖에 나가진 않았다.
제오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료하가 들고있는 장바구니를 살포시 붙잡았다.
료하는 그런 제오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끼며 제오를 돌아보았다.


"그...나도 같이 가면 안될까.."


제오는 약간 쑥스러운듯이 뒷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료하는 그런 제오를 보고 티비로는 무료함을 달랠수 없었나보네..하면서 크게 마음에 두진 않았다.
료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대신 아무짓도 하지 말고 정말 나만 따라오겠다고 약속해."
"응!"


제오는 활짝 웃으며 료하의 장보는 길에 따라 나섰다.




















"오호..."


제오는 료하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현재 둘이 있는 곳은 마을에 있는 시장거리.
규모가 시골마을치곤 좀 컸지만 그래서인지 활기도 차고 좋은 품질의 음식들도 많아서 장보러 나오는 길에는 꼭 이 시장길을 들렀었다.


료하는 허리를 굽혀서 고구마를 팔고 있던 할머니에게 뭐라고 말을 걸더니, 할머니가 복스럽게 웃으면서 검은 봉투에 고구마 몇개를 넣어주고 그걸 료하에게 건냈다.
료하는 아뇨아뇨 하면서 손사래를 치면서도 활짝 웃으며 그 봉투를 건네받았다.
제오는 그런 료하의 모습을 물그러미 바라볼 뿐이였다.
장보는것도 거의 막바지에 달했고, 장바구니에도 채소와 과일들이 가득 들어있어서 료하는 그만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그러다 시선을 앞으로 향하니, 무거운 박스를 높게 쌓고 그것을 끙끙하며 들고가던 한 아저씨가 눈에 보였다.
료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장바구니를 제오에게 맡긴채 그 아저씨를 향해 달려갔다.


"무겁지 않으세요? 조금 들어드릴게요."
"아, 고맙구나"


료하가 박스 한 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저씨는 박스 두개를 들고 있었다.
박스는 아직 한 개가 남아있었다.


"저..박스는 어쩌죠?"
"내가 들게 학생."
"그래도 무거우실텐데..."


료하는 그 박스도 자신이 들까 생각했지만 이미 료하가 들고 있던 박스만 해도 엄청 무거웠다.
시큼한 냄새가 박스에서 풍겨오니 박스안에는 아마 양파가 들어있는 듯 했다.


료하가 발을 동동 굴리고 있을때, 제오가 성큼 다가왔다.
머리위에 장바구니를 지고, 그 박스를 번쩍 들어올렸다.
마치 가벼운 물건을 드는것 처럼 전혀 무거워하는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오, 학생도 도와주게?"
"야..제오.."
"이정도는 괜찮지? 차라리 내가 다 들수도 있는데.."
"아니,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


제오가 다 들어버리면 분명 아저씨도 이상하게 생각할게 틀림없었다.
이럴땐 조금 자제시키는게 좋겠지...
아저씨가 제오를 향해 처음본것 같은데..하고 말하자, 료하는 아저씨에게 대충 이 마을에 이사온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서 조금 오래 있었다는 것 같지만..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잖아?'


그렇게 료하와 제오는 아저씨를 도와 박스를 옮겨다 주었고, 아저씨는 고마워하면서 과자가 가득 든 박스를 건네주었다.
료하는 이번에도 아뇨아뇨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아저씨는 호쾌하게 웃으며 받으라고 말하니, 그제야 료하도 활짝 웃으며 그 박스를 받아들었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료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감사하다는 일종의 인사였다.
그리고 아저씨는 그 옆에 있던 제오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제오는 몸이 굳었다.
쓰다듬을 받은 제오는 토끼처럼 두눈을 꿈뻑꿈뻑 했다.
이 기분은 뭐지... ?
생소한 기분과 마주보게된 제오는 약간 속이 근질거리는걸 느끼며 둘은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료하는 우선, 장봐온 것들을 차곡차곡 냉장고안에 넣었다.
제오는 티비를 보고 있다.
하지만 티비속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칭찬'이라는걸 받아본적은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시장에서의 일로 머리가 가득이였다.
료하는 저녁밥을 차리려고 앞치마를 둘렀다.
그런 료하의 뒤에 선 제오는 료하에게 자신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료하는 '쟤가 무슨 바람이 불었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르쳐주면 나중에 도움이 될까 싶어 제오에게 밥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태울 수 있냐?!"


기적의 요리법을 행사하며 제오가 손을 대는 족족 태워먹기 일쑤였다. 나중에 도움이 되긴 개뿔... 언젠가 잘못 건드려서 집만 안태우면 다행일 것이다.
제오는 추욱 쳐져있었다.
료하는 조금 자신이 심했나.. 생각하며 더 꼼꼼히 가르쳐주었다.


...그나마 제오가 안태워먹고 일단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음식은 계란 후라이였다.
계란 후라이라 해봐야 계란을 깨고 굽는게 다인 간단한 음식이라서 초등학생에게 가르쳐도 금새 배울 음식이니 그렇게 야단법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했다.


"료하! 해냈어!!"


하지만 유독 기뻐하며 만든 계란 후라이를 건네며 활짝 웃는 그 모습에 그 말은 입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뭐, 나쁘진 않네''


료하는 그런 제오를 보고 피식 웃었고, 그날은 제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느라 저녁도 평소보다 늦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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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09 21:10 | 조회 : 829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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