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괴물의 이름

시야가 흔들린다.
거친숨소리가 난다.


지금 나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조차 분명하지 않고, 이대로 사라져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놔두면 금새 흩어질 안개를 겨우 형체로써 잡아두고 있다는 이질감은 덤이고
등에 무겁게 지고있는 감촉이 점점 식어가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이경우엔 착각이 아니라...


다시 시야가 흔들린다.
잠시 몸을 주춤했더니 등 위가 허전해졌다.
털썩 소리를 내며 무언가 떨어졌다.
아직 시야가 다 되돌아오지 않는 상태에서 그것을 내려다본다.
ㅡ총에 맞은 료하가 쓰러져있었다.
'그래... 난 방금까지,
료하를 짊어지고 가고 있었어..'
이제야 기억이 점차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방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료하를 등에 짊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머릿속에서 커다란 스푼으로 한껏 뜬것 마냥
기억속에 구멍이 생겨져있었다.
'짊어지고 가고있었어... 그런데, 어디로?'
어디였더라... 그는 흔들리고 흐릿해지는 시야를 간신히 붙잡고 생각했다.
료하를... 어디로?
답이야, 하나뿐이지 않는가.


















기억이 이끄는대로, 또는 봄의 자취를 따라 밟아가고 있는것 처럼, 그는 료하의 집앞에 당도하여, 문을 부서질만큼 열어젖혔다. 이 경우엔 두손이 남아나지 않으므로 발밖에 수단이 없었으니, 료하도 이해해주리라.
그것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그의 등위에서 옅은 숨소리를 겨우 내쉬고 있었다.
료하를 조심스레 바닥에 눕혀본다.
금새 집안의 바닥은 피로 흥건해졌다.
활짝열려져 있는 창문에서 밤바람이 불어온다.
바깥에 풍경은 이제 겨우 해가 산뒤로 넘어가기 시작한, 땅거미가 질 시간이였다.
그는 료하의 숨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걸 알아차렸다.
이대로라면 금새 료하는 목숨을 잃는다.
그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살릴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보았다.
되도 않는 심폐소생술을 해보고, 집안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던 구급상자를 꺼내들어 닥치는대로 상처약을 쥐어짜내 바르고, 붕대를 꺼내서 둘둘 감고, 도저히 제대로 된 응급처지라고 부를 수도 없는 광경이였다.
그럼에도..
그의 노력에도
ㅡ료하의 숨소리는 점점 이승에서 작별을 고하듯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핑 돌고 잠깐의 현기증을 느꼈다.
이대로 또 누군가를 떠나보내기에는 그는 지금까지 너무나 상처입었고, 또 외톨이였다.
료하를 잃는다는건, 그에게 봄을 잃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이성이 그에게 어렴풋이 속삭였다.
그는 당장에라도 다른 인간의 도움을 받으러 밖을 나갈 생각이였지만, 이대로 료하를 두고 나간다면 돌아왔을때가 두렵다. 그렇다고 료하를 등에 짊어지고 나가자니, 료하의 상태가 심각해질게 뻔했다.
자신이 이리도 생명하나를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했던적 이 있었던가... 이런상황이건만 정신이 미쳐버린건지, 괜히 헛웃음을 흘렸다.


료하는 핑핑감겨져 있는 붕대들로 인해 거의 미이라처럼 보였고, 치료를 하겠다고 상처약을 쥐어짜내던 그의 손가락은 약들로 범벅이였다.
그런 손을 내려다보며 그는 크나큰 무력감과 자책감에 빠져들어가고, 그럴수록 료하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는걸 아는 그는 최후의 발버둥으로 다시한번 심폐소생술을 시도해본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지...'' 인간 사회와 거의 담을 쌓고 살아왔던 그였다.
병원이라는 곳이 인간을 치료하기위한 장소임을 알리가 없었고, 경찰도 거의 생리적혐오감이 들어서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점점 숨소리는 옅어져간다.
료하를 내려다보는 그의 등이 멈췄다.
천천히, 그 손을 붕대틈 사이 료하의 입에다가 대었다.
그대로 기다렸다.
5분이건 10분이건,
그럼에도.. 손가락에선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계속 내려다보고 있다.
더는 오르락 내리락하지 않는 가슴을 보았다.
더는 움찔 떨지도 않는 손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료하의 얼굴을 보았다.
료하는 ...


"아..."


그의 등이 힘없이 무너져내린다.
지키지못했다. 료하를,
결국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지금까지 느껴본적 없는 슬픔이 그의 감정선을 자극했다.
눈물이 나올리가 없을테지만, 대신 거의 발작과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나오지 않는 눈물의 양만큼 소리로 환산하겠다는 의지였다.
겨우 인간의 눈으로 돌아왔었던 그였지만, 또다시 괴물의 눈으로 바뀌어간다.
그의 머릿칼이 흔들린다.
그의 몸에선 발광랜턴처럼 푸른 빛이 발산되었다.
그것은 어두워져가는 집안을 구석구석히 밝힐 정도로 밝았으며,
ㅡ동시에 그'돌'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고이 서랍위에 올려져있던 돌이 그와 공명하듯 흔들린다.
원래는 미세하게 푸른끼만 돌던 돌이였지만, 지금은 어째선지 아예 돌에서 푸른빛이 뿜어져나온다.
돌의 상태따윈,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무력감과 좌절감을 소리를 외침으로써 풀고 있었다.
돌이 점점 흔들리고, 서랍의 끝쪽으로 조금씩 밀려가더니...


''툭''


정신을 반쯤 광기로 물들은 그의 귀에도 분명하게 들릴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돌이 서랍위에서 떨어졌다.
마치 자신을 봐달라는듯이,
그는 들리지 않을 돌의 바램대로 돌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게.. 뭐였더라'
일시적인 기억퇴화증상일까?
그는 그 돌에 대해서 기억해내려해도 바람앞에 등불마냥 불안한 기억만이 맴돌뿐이였다.
눈살을 찌푸려 돌을 바라본다.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돌이란 원래 저렇게 빛을 내던거였나...?
그는 료하를 잃었다는 충격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료하를 두고 돌을 향해 기어간다.
하도 소리를 지른건지, 목이 칼칼했다.
침을 목구멍으로 넘길때마다 쓰라려진다.
숨을 불규칙적이게 크게 내쉬면서, 잠시라도 입을 닫으면 숨이 턱 막힐듯한 기분에 입을 열었더니 그 안에서 하얀선이 나와, 주욱 바닥과 이어졌다.
그는 바로 눈앞에 돌이 있었지만 멀게 느껴질 뿐이였다.
손을 뻗어도 닿을거란 확신도 들지않고, 저 돌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하는 원초적인 생각이 들었다.


''뭐가 들려..''


차가운 기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돌에 맞닿은 손은 놀라우리만치 서늘했고, 그의 생각은 거기서 뚝 그쳤다.
이 돌을 잡은 순간, 그는 거의 확실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돌이라면 살릴수 있어..! 료하를..!'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 돌에게 자신을 뛰어넘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고, 그 힘으로 료하를 살릴수 있을것이라는 확신뿐이였다.


그는 원래는 오르락 내리락했어야 할 가슴팍에다 돌을 올려두었다.
마치, 료하가 돌을 받고, 조심스레 서랍위로 올려두던 기억처럼.
돌은 처음 올려진 그 위치, 평행선을 그대로 유지한채 료하의 심장이 역시 멈춰있음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신비한 힘이 깃들어있다면 뭐라든 해.
나에게 말을 걸었다면, 할수있다고 속삭여주었다면..!


''제발 료하를 살려주라고!''


그가 외치자. 돌은 폭발적으로 푸른빛을 내뿜더니
시야가 일순, 푸르게 물들어갔다.
그는 그 눈부심에 두눈을 감았다.






























'뭐야..'


어느정도 지나자, 빛은 사그라들더니 그가 눈을 겨우 뜰수 있을정도까지 되었다.
그는 아직 빛의 강렬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시야는 어느정도 확보한 듯 했다.
점점 눈꺼풀을 올리고, 눈앞을 보았다.


"어...?"


지근거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강렬했던 빛의 영향으로 두눈이 아직 제기능을 되돌리지 못한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두눈을 팍 떴다.
눈앞에서는...


"어..어... 난.."


붕대에 칭칭감겨져,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료하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


살아났어. 정말로


"어..어.. 난 죽은거, 아니였나..?"


움직여. 심장이 뛰어. 말을해. 두눈을 깜빡이고 있어.


"어어...저기..? 뭐라고 말좀 해봐"


정말로? 살아난거야?정말로..정말로?
정말...


"야! 사람이 말하는데 듣는척이라도.."
"료하!"


그는 료하를 향해 와락 안았다.
붕대투성이의 료하는 그런 그를 어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뭐 잘못먹었나? 하고 첫째로 생각하다가, 쓰러지기 전의 일을 기억해내고는 쑥쓰러운 감정이 두번째로 들더니, 마지막으로 분노의 감정이 들었다.


"무슨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좀 떨어져!"


묘하게 치근덕대고 불살을 부비는 그의 태도에 닭살이 돋은 료하는 있는힘껏 처음만났던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엎어치기로 응수했고 보기좋게 바닥에 엎어쳐진 그는 놀라워하는것도 없이 눈웃음을 지으며 료하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화려하게도 감아줬네."


온몸에 감겨진 붕대를 열심히 풀고있던 료하가 말했다.


"내몸에 해줬던대로 똑같이 했는데... 뭐가 달라?"


그옆에서 잘 모르겠다는 듯이 료하를 바라보고있던 그가 고개를 갸웃 하며말했다.


"이래가지곤 완전히 미이라잖아. 너, 내가 죽었다고 확신했으면 관짝에 넣을려고 미리 붕대를 이렇게 감아놓은건 아니겠지"


료하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웃으면 되겠지! 하고 밝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하지만, 분명. 료하는ㅡ죽었었는데?
료하는 기억하지 못하는걸까? 자신의 심장이 멈췄었던것과, 한번 생을 마감했다는걸...


"하지만은 뭔 하지만?"


그의 거의 중얼거리는 속삭임을 들은 료하는 고개를 들어 물어보았다.


"료하는... 저 돌 덕분에 살아난거야."


이 말 역시 거의 중얼거린 식이였지만, 알아들은 료하는 표정을 크게 일그려뜨렸다.


"뭐 잘못먹었어? 돌 때문에 살아나긴. 그때 내가 총에 맞은것도,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비껴가서 그런거고..."


료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더니


"그런데 그 돌은 뭐냐?"


진심으로 궁금해죽겠다는 표정을 한채 생소한 물건을 보는 얼굴로 물었다.


''?''


"뭐냐니... 내가 줬던거잖아. 료하가 엄청 아껴줬던..."
"역시 너 뭔가 잘못먹은거 아니냐? 내가 이런 돌을 아껴해서 뭐해. 보석이라면 모를까"


그렇게 말하더니 퍼뜩 뭔가 생각난 것 마냥 료하가 고개를 들어 눈을 빛내며 "아, 혹시 저거 보석은 아니겠지?"하고 물었지만, 그의 귀에는 그 말이 멀게만 들렸다.
'료하가.. 돌에 대해 기억을 못해?'
이게 뭘 의미 하는걸까?
그는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머리 쓰는건 그에게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일단은 료하가 살아돌아온것이 제일 중요하기도 했으니, 지금으로선 돌에 대한 생각은 잠시 끊어놓기로 했다.


"아, 그래... 내가 쓰러지기 전에 말이야ㅡ"


말하고 싶었던게 있었는데.. 하고 운을 뗀 료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름정도는 알려주면 안되냐 하는..."


자신이 말해도 영 뭐한지 볼을 긁적이곤 붕대를 툴툴 감으며 애먼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름이라면..."


지금까지 나에게 이름이 필요한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 어차피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앞으로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확실히 료하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름이 없어도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전에 없다고 했었지..? 그러니까, 이름을 만들면 어떠냐는거야"
"이름을.. 만들어?"
"괜찮잖아? 아니면, 영 그런가?"


이름..이름이라..


"아니, 괜찮아! 대신...
대신, 내 이름은 료하가 지어줘."


자신이 생각해봐야 이름같은걸 지을 센스도 없을게 분명하고, 어차피 불러줄 사람이 료하밖에 없을거라 생각해 그는 그렇게 말했다.


"..진짜로?"
"응"
"그래, 사실 내가 생각한게 있었는데.."


료하는 그의 그 말을 미리 예상했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네 이름은.. 그... '제오' 라는건 어떨까..?"
"제오..?"
"아니, 왠지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고 해야하나..
너가 듣기에도 좀 뭐할순 있는데... 왠지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야하나.."


그건, 내가 들었던 목소리와도 연관이 있는걸까..?


"그..어떠냐..? 점 별로라면 다른걸로 하고"
"제오...제오..."


나는 되새기는 듯이 어려번 반복해서 말했다.
'제오'라는 이름이 입에 착 감긴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니, 좋아. 제오라는 이름"


더는 숨기지 않고 미소를 여실히 들어냈다.
이름같은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료하가 붙여준 이름의 의미는 그의 가슴속에 큰 감정을 몰고왔다.


"그래? 잘됐네... 그럼, 앞으로 제오라고 부를게"
"응..!"




"그렇게 해줘"
















어느 한 이름없는 괴물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피와 함께한 인생을 지내왔고, 앞으로 그럴꺼라 생각했다.
그 괴물의 인생은 외로움을 동반했고, 친구라 할만한 존재는 자연이나 동물들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괴물은 말했다.
'혼자인 편이 낫다고'
하지만 아니였나보다.
괴물은 어느날 봄을 만났다.
봄을 만나, 은혜를 갚는 까치가 되어보기도 하고, 마을에 항간에 떠돌던 헛소문의 주인공인 식인 맷돼지가 되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쁜 무리들과 겨뤄보기도 하고, 상처를 입어보기도 했다.
생사를 넘나들고, 정말로 죽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봄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오지랖이 넓다고 자조하던 봄은 괴물을 마주보았다.
괴물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봐주었다.
괴물또한 봄을 바라보았다.
봄이 너무나 눈부셨다.
봄은 괴물을 인간으로 돌아오게 해주었다.
괴물은 이제 괴물이 아니다.
괴물은 지금, '제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 되었다.






"그래 제오, 배고픈데 국밥먹을래?"
"응! 한 10그릇 정도로"
"식귀녀석"






제오는 료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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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07 01:53 | 조회 : 85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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