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말 잘 듣는 개

[사랑이 뭐야?]

순진한건지. 다 알고 물어본건지. 율의 그 한마디 이후, 도희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복잡해져 버렸다.

복잡해진 머릿속 때문에 아무리 앞에 전공 강의 교수에 시선을 돌려도, 강의 내용은 전혀 들어오지 못했다. 필기를 하던 손은 이미 멈춘지 오래다.

사랑이라, 쓸모없는 감정이였다. 자신과는 평생 접점이 없을 감정이였다.

하지만 저를 사랑하냐는 율의 말에 가슴 깊이서 무언가가 요동쳤다. 율에 대한 마음이 그저 소유욕 뿐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만은 아니라는걸 도희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저 눈 가리고 부정했을 뿐.

"..."

자신의 인생에서 갑작스럽게 훅 튀어나온 율은 참 재밌는 인간이였다. 같은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부터, 그의 사고방식과 생각치도 못한 내면, 그리고 도희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것 까지. 율의 하나 하나를 알아갈 때마다 그에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율은 어쩌면 도희의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됐었을 지도 모른다. 율에 대해 느껴지는 감정은 항상 새로웠으니.

"하..."

도희의 머리는, 율에 대한 감정의 정의를 내리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도희는 생각을 하느라 책상을 툭툭 두들기던 손가락을 들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사랑은 아니야."

사랑이라 해도, 자신은 부정할 것이다. 율이 남자라서, 라는 이유가 아니다. 그저 쓸모없는 감정이니까. 심지어 쓸모없는 것을 넘어 비이성적인 장애물이니까. 이 감정의 실체가 사랑이라 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끝내 그 감정을 지울 것이다.

저에게 사랑을 바라는 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온 몸으로 사랑해달라 울부짖는 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희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원하고, 복종하고, 순종하는 율을 원했다.

''그게 편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정말 그런 율을 바라는지, 그럼 지금의 율은 싫은지 생각했다.

''...''

그건 아니였다. 싫었으면 이미 관계를 끊었다.

그럼 어째서?

''...''

글쎄.

''어쨌든, 필요한건 순종하는 율이니까.''

*

결국 강의는 전혀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친한 동기게게 필기한 것을 부탁해 복사해 오는 길이였다.

평소 같았으면 예정되지 않은 상황에, 계획하고 계산한 것과는 다른 상황에 짜증났을 것이다. 하지만 도희는 율에 대한 감정에 정의를 내리는 일 때문에 그런 짜증을 낼 여유조차 없었다.

"도희 선배!"

그저 율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불편한 감정은 그 원인 제공자인 율 앞에선 그나마 누그러지고, 그나마 편안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런데 갑작스럽게 어떤 여자 목소리가 도희를 불렀다.

"응? 아. 안녕."

얘 이름이 뭐였더라, 아는 후배였는데. 아, 후배나. 배나였지. 아마. 꽤나 청순해서 취향에 맞았는데, 최근 뭔가 심하게 관심을 표하는 것 같아 멀리했던 애였다.

"저, 도희선배, 저, 할말이 있는데요,"

"아, 그래?"

이거 뭔가 불안한데. 그 분위기다. 고백할 분위기.

"저, 그게, 도희선배를, 좋아하고 있어요."

역시나. 예상했지만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어줬다.

"아니, 좋아하는 것 보단, 사랑해요. 도희선배."

그냥 거절 하려던 찰나, 그 여자애의 ''사랑한다''라는 말에 멈칫했다.

"사랑...?"

"...네, 하루하루 선배만을 생각해요. 정말, ''사랑''해요."

"사랑. 사랑이라. 그 감정이 정확히 뭐라고 생각하길래?"

얼굴을 붉히는 그녀에게, 도희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정말 궁금했다. 도대체 그 사랑이 뭔데.

"네...?"

"대답해줘."

"그, 사랑은,"

그 여자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한듯 했다.

"다시 바꿔 물어볼게. 나한테 느끼는 감정이 왜 사랑이야?"

넌 나에대해서 다 알지도 못하잖아. 뒷말은 삼켰다.

"서, 선배만 보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요. 잘보이고 싶은 마음에 살짝 떨리기도 해요. 계속... 보고싶고, 도희 선배가 특별해지고... 도희 선배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싶어요... 그래서...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꽤나 당돌했다. 고백한다는 여자애가 부끄럼도 없이. 보기 드문 유형이였다. 귀엽네.

"그렇구나..."

날 그렇게 ''사랑'' 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미안해. 고백은 못받아주겠네. 도희는 여후배를 보며 말했다. 미안한듯 눈썹을 아래로 내리고 조금 은은한 미소를 짓는 걸 잊지 않았다.

"아... 아녜요, 선배님..."

후배는 쭈뼛 거리며 말하곤 다른 곳으로 뛰어가버렸다. 도희는 곧 시선을 멀어져가는 후배에게서 거뒀다. 후배의 말을 곱씹으면서.

"특별한 존재라."

율은 자신에게 특별한가. 답은 ''특별하다.'' 이다.

"지켜보는게 재밌으니까."

아무리 꾸물거리고 주위에서 얼쩡거려도 짜증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것 뿐인데.

그것도 사랑인건가.

도희는 몰랐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진정한 사랑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느껴봐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지금 이순간 그가 율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

"아. 도희야. 왔어?"

도희가 집에 도착하니 율이 그를 반겼다. 동시에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 무슨 냄새냐는 도희의 물음에 율이 저녁을 준비 중이라며 밝게 웃는다.

"...율아."

"응?"

"너, 내가 좋아? 그럼 넌 내가 널 사랑해줬음 좋겠어?"

"어... 어?"

끈금없는 질문이니, 뭐니, 상황을 고려할 여유따위 없었다. 율은 도희의 갑작스런 말에 당황했고, 도희는 그저 대답을 기다리며 율의 떨리는 눈동자를 바라봤다.

"나는... 난..."

그런 욕심, 과분하다고 생각해, 나 주제에.

"...그래?"

율이 웅얼거린 ''나 주제에'' 라는 말에 가슴이 쓰렸다. 떨리는 그의 손을 살포시 잡고 위로를 퍼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안됐다. 그러면 안됐다. 처음 마주하는 이 감정이 두려웠다. 감정의 제공자인 율이 본능적으로 두려웠다.

항상 ''사랑한다'' 라는 거짓말을 해오다,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 의미도 모른 채 그 감정을 운운하던 자신이였기에, 왠지 그 진실된 감정도 거짓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율아. 나에게 그런걸 바라지 마."

"..."

"그냥, 내 옆에서 있으면 돼. 그냥, 내 것이 되면 돼."

떨리는 빨간색 눈동자가 불안해보였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그냥, 말 잘 듣는 개가 되라는 거야? 그 말은?"

"...글쎄. 아마도."

"..."

말 잘 듣는 개. 원하는게 그걸지도 모르지.

"난,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싫어하니까."

"...!"

율의 눈이 크게 떨린다. 놀란듯, 아니, 아마 충격 받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도희를 바라본다. 그 예쁜 입술이 경련이 오듯 떨렸다. 꼭 울음을 참으려는 듯.

"...알았어. 도희야. 말 잘 들을게. 도희만을 바라보고. 그럴 자신 있으니까."

그냥, 도희 곁에만 있게 해줘.

율의 눈동자는 어둡게 내려앉아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눈물이 율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럼에도, 율은 억지로 웃어보였다. 짜내어 지어보인 미소는 그저 일그러진 표정이 될 뿐이였다.

그 모습에, 분명 도희는 원하는 바를 이뤘음에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에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가슴을 짓눌렀다.

항상 그래왔듯 이성을 따라 행동했는데, 왜 이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결과가 왜 이런 고통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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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27 20:54 | 조회 : 1,401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도희야..그거 그냥 사랑 아닐까.. 실수로 엔터키 누르는 바람에 올려져 버려 잠시 비공개 했네요ㅠ저번화에 댓글 달아주신 멍멍이기여어님 감사해요. 자주 보이는 독자님들에 말로 표현 못할 기쁨과 뿌듯함이 듭니다. 좀있으면 매력 터지는 도희를 볼 수 있습니다 껄껄(변태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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