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사랑이라는 감정

"재미없어."

TV화면에는 율이 DVD방에서 빌려온 한 영화가 틀어지고 있었다. 평범한 영화가 아닌 야한 멜로영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뜨겁게 몸을 섞고 있을때, 도희 입에서 나온 감상 평은 재미 없다, 였다.

평범한 야동 이라기엔 연출도 좋고, 남녀가 사랑하기 전의 서로에 대한 감정이 묘사가 잘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였다. 영화는 도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도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스스로 단정짓고 있었으니.

"그거 인터넷에서 좋다고 해서 빌려온건데,"

"그 평들 다 믿으면 안돼. 그거 다 알바 써서 만든 평가니까."

도희의 재미없다는 말에 율이 읽던 책을 덮고 도희를 바라봤다. 도희는 TV를 끄곤 침대 위로 드러누웠다. 도희의 시선은 영화가 아닌 침대 옆에 앉아있는 율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차다리 널 보고 있는게 더 재밌을거야."

도희의 말에 율은 얼굴을 붉혔다. 며칠 전 율은 자신이 아마 도희를 사랑한다고 결론지었고, 이후에 도희와 율의 관계는 사귀는 사이도, 그렇다고 그저 친구인 사이도 아닌 어정쩡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사귀는 것은 분명 아니였다. 고백한 것은 율 하나였고, 도희는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은 상태였다. 친구 사이인 것도 애매모호했다. 이미 서로 볼건 다 본 사이였고, 몸까지 섞었으니까.

율은 도희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자신이 들고있는 책으로 옮겼다. 로맨스 소설이였다. 혹여나 읽으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들어서 책방의 로맨스 류의 책이란 책을 모조리 빌려 읽어보고 있었다.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어느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사랑에 대해 아, 이거구나 하고 명백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남녀가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져 행복한 삶을 산다. 책을 쓴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한줄로 요약하면 무슨 책이던 대부분이 다 똑같은 줄거리였다.

사랑이라는건, 이상했다. 잡힐듯 하나 잡히지 않는 것 처럼. 책의 묘사를 빌리자면, 사랑이라는 건 간질거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떤 때는 가슴이 저리듯 아파온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질투심이나 소유욕을 느낄 때도 있고, 상대방이 너무나 소중해 배려하고 또 배려한다고 한다.

심지어, 사랑도 종류가 있다고 한다. 가족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인간관계에서도 모자라 모든 형체가 있는 것에 대해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사랑이란 한 감정에 너무나 많은 감정이 들어있었고, 광범위 했다. 어떤 책에선 사랑이란, 우주다. 라는 추상적인 표현이 써져있어 한동안 어벙벙했던 적도 있었다.

정확하게 딱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은, 많은 감정을 섞은 걸까. 참 복잡한 개념이다.

율은 자신이 도희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 자신은 도희를 사랑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도희야."

율은 사랑의 속삭임 이라고 인쇄되어 있는 책의 표지를 쓸어보며 도희를 불렀다. 궁금했다. 혹시라도, 도희는 사랑이란게 뭔지 알고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그 감정을 나에게 품고있진 않을까.

율이 도희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니 도희가 감고있던 눈을 게슴츠레 뜨며 율을 바라본다. 율은 자신에게 반응하는 도희가 좋았다. 그저 옆에 있는것 만으로도, 도희가 옆에서 저를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어쩌면, 이걸로 만족해야 하고, 더는 욕심 부리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이 뭐야?"

하지만 욕심을 내고 싶었다. 율은 도희에게 더 큰 존재가 되고싶었다. 도희가 자신을 아껴주고, 소중히 생각하고 배려해줬으면 했다. 자신을 보면 심장이 떨리고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으면. 질투심을 느끼고, 소유욕을 느끼면 좋겠다.

율은, 도희가 자신을 사랑하길 원했다.

"응? 뭐?"

사랑?
도희가 느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사랑이라고? 사랑이라.

"그게 왜 궁금한건데?"

"...그냥."

"흐응. 사랑이라. 글쎄.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적은 많지만, 그냥 예쁘고 귀여웠지. 사랑은 느껴본적 없어서."

모르겠는데.
율은 그저 싱긋 웃는 도희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아. 혹시 또 하고싶어서 그래?"

"...오늘은 별로."

몸을 섞고 싶어서 이러냐며 귀찮은 듯 친대 위로 올라오라고 손을 까딱이는 도희에 율은 고개를 저었다. 도희의 말에 기운이 쑥 빠지는 느낌이였다. 도희의 질문은 꼭 우리사이는 몸 섞는 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못 박는 듯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율은 가슴이 아려왔다. 꼭 가시가 가슴을 찌르고 후벼파는 느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도희는 오늘은 싫다는 투의 율의 말에 피식 웃으며 침대 위로 율을 끌어 당겼다. 그리곤 율 위로 올라타 입을 맞췄다. 율은 굳게 입을 다물다, 자신의 입술을 살살 핥아내리는 도희의 혀에 결국 입술을 벌렸다. 축축한 도희의 혀가 들어온다. 부드럽게 서로의 혀가 얽힌다. 율은 터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방울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침대 시트를 적신다.

율은 자신이 울고 있는 모습을 도희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마치 지키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 같았다. 역시, 욕심은 부리는게 아니다.

혹여나 밝게 켜져있는 천장에 전등이 눈물을 비출까, 도희가 반짝이는 눈물방울을 보게될까. 율은 양손으로 도희의 뺨을 잡고 도희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더 깊고 질척이게 혀를 섞었다.

"후아... 으음-"

그런 율과 키스를 하는 도희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율은 울었다. 조용히, 마치 도희가 눈치 채지 못했으면 하듯이 마음 숙 깊이서 흐느꼈다. 그런 율에, 도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도희는 짐작했다. 아마 율은, 자신에게 사랑하냐고 물었을때 기대하고 있었을 거라고. 도희의 입에서 율을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길 내심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모르는 부류야, 율아.''

율이 생각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거라, 도희는 확신했다.

도희와 율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도희는 어느 느구보다 자신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사랑은 자신에게 있어 그저 감정 낭비일 뿐이니까.

''우리한테는 사랑은 필요 없어.''

율아. 넌 그냥 내 소유가 되면 되는거야. 영원히. 그거면 되는거야.

흐느끼는 율과의 키스도,

이 상황도.

숨이 막혔다.

7
이번 화 신고 2019-02-26 22:00 | 조회 : 1,352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도희는 정말 율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저번화에 댓글 달아주신 SUNO님, 멍멍이기여어님 감사합니다! 하트 눌러주신 독자님들도요! 요즘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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