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그의 중학교 앨범(2)

도희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율의 졸업 앨범부터 펴보았다. 꽤나 오랫동안 펴보지 않아서인지, 한장 한장 비벼서 펴야만 넘겨졌다.

"아. 여기있다."

별 볼일 없는 사진들을 얼마나 넘겼을까, 도희는 드디어 율의 사진을 찾았다. 6반. 이라. 율은 6반의 1번이였다. 사진 속 율은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끌려온든, 억지로 사진을 찍은 느낌에 웃음이 나왔다.

"진짜 예쁘네."

무표정이여도 예뻤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직 소년티가 묻어있는 율은 정말이지 예쁘다, 라는 말 이외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다.

지금의 선이 그나마 굵어 남자티가 나는 율과는 달리, 어렸을 때의 율은 선까지 얇아 한없이 여려보였다.

"안대는 이때도 끼고 있었구나."

태어날 때부터 역안이였던걸까. 사진의 안대를 검지로 쓸어봤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다면 좋겠다. 후에 사고로 역안이 된거라면 아팠을테니.

율이 아팠을 거란 생각을 했을 때, 괜히 기분이 나빴다. 가슴이 시큰거리고. 왜지. 오늘 아침 율의 목을 보고도 이랬다. 이상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다쳤다고, 심지어 죽었다고 해서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무런 기분이 들지 않았었는데.

꾹, 미간을 좁혔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율이.

이렇게 생각을 한걸까.

"왜?"

율이 아프던, 건강하던 내겐 아무 이득이 없는데.

심지어 율이 과거에 아팠던 것은 더더욱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 율은 내 옆에 살아 숨쉬고 있으니.

근데 왜 과거의 일까지 신경이 쓰이는걸까.

모르겠다.

*

율의 증명사진을 보고 나서 반 그룹사진과 활동사진을 봤다. 사진으로 봐서 추측하건데, 아마 율은 따돌림을 당한 듯 했다. 단체 사진에서는 율만이 어색하고, 미묘하게 떨어져있었다. 활동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교우관계가 원활한게 이상한걸까."

확실히 정상인은 아니니까. 말 수도 적고, 율의 미모는 호기심을 가질만 하지만, 율은 항상 표정을 구기고 있어 다가가기 힘들어 보인다. 아님 너무 이국적인 외모여서 그런건가.

활동사진은, 율 혼자만 찍힌 사진이 하나 있었다. 체험학습을 갔는지 햇살 아래서 궁을 바라보는 사진이였다. 아마 율이 혼자서 동떨어져서 따로 찍힌듯 했다.

"모델해도 되겠네."

사진은 그냥 선생님이 찍은 듯 초점도 뚜렸하지 않고 각도나 앵글이 엉망이였지만, 사진 속 율은 단연 돋보였다. 활동사진에 율의 단독사진을 넣은 것은, 분명 율의 사진이 너무 잘 나와서 였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드러나는 셔츠를 입은 율의 목에 시선이 갔다. 사진 속 율은 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화질이 좋지 못해 잘 안보였지만, 왠지 붕대 부분 부분이 붉게 물든 느낌이였다.

"..."

또 가슴이 시큰, 한다.

도희는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한참이나 율의 사진을 바라봤다.

*

"도희야, 나 왔어."

도희가 앨범을 율이 보지 않을 법 한 곳에 꽂아두고 침대를 정리하고 있을때, 율이 집으로 왔다. 율은 큰 쇼핑백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건 뭐야?"

"아, 침낭. 아저씨가 너네집에 침대 하나냐고 물어보시길래, 하나라고 했더니 이거 주셨어."

"아."

사장님은 생각보다 생각이 깊으셨다.

"근데 율아, 사장님하곤 무슨사이야?"

"아. 나 2년 전까지 아저씨랑 같이 살았어. 어렸을때부터 아저씨가 키워주셨거든."

"아..."

그랬구나. 고아였구나.

너무나 덤덤하게 말하는 율에 오히려 도희가 당황스럽고 민망해졌다.

"괜히 물었네. 미안."

"아냐."

사과하는 도희에 율이 살짝 웃어보이며 정말 괜찮다는 듯 말했다.

도희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쇼핑백에서 침낭을 꺼내는 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율은 도희가 어느 표정을 짓고 있어도 상관하지 않는 듯 했다. 웃어보이지 않아도, 율은 도희에게 웃어보였다.

달랐다. 다른 사람들과.

투명하고 따뜻했다.

그런 율이, 더더욱 갖고 싶어졌다.

*

도희와 길에서 헤어져 가게로 향하던 중, 율은 힘들게 과거의 두려웠던 기억을 떨쳐냈다.

도희가 중학교 앨범을 보고싶다고 했을 때, 율은 싫었다. 행복은 눈곱만큼도 없는 그때의 생활이 머릿 속에서 되살아 나자 소름만 돋았다.

하지만 도희가 원하는 것을 안된다고 하기에는 싫었다. 싫음과 싫음이 서로 충돌한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을 것이지.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덜 싫을 선택을 했다.

도희가 더 소중하니까.

처음으로 자신의 흉악한 모습을 봐도 웃어준 사람이다.

온 세상에서 유일하게 뚜렸한 사람이다.

온통 검은색 뿐인 어두운 자신의 세상 속의 유일한 빛이다.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것 같은 사람.

언제부터인지, 도희의 손길을, 눈길을 항상 바라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희에 대한 감정은 눈덩이 불어나듯 커져버렸다.

더 이상 커지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어쩌지,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좋아해."

그때 도희에게 들려준 말을 곱씹어봤다. 다시 혀로 굴려봤다.

"아니."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엔, 좋아한다는 말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했다.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사실 좋아한다는 감정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지만. 그건 아니였다.

"...사랑."

자신에게 생소하고 어색한, 의미 모를 단어를 입 밖으로 어렵사리 뱉어본다.

"사랑한다."

도희를, 사랑한다.

자신의 감정이 이건걸까.

하지만, 사랑이 뭔지 모르는걸. 결국 잘 모르겠다. 감정은.

복잡해지는 머리속을 비우려 노력해도 힘들었다. 가게에 들려 아저씨를 보자, 아저씨는 율의 표정을 보곤 고민이 있냐 물었다.

결국 주저하며 -물론, 그 감정의 상대는 말하지 않은 채로-고민을 털어 놨다. 그러자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사랑이라고 말해주셨다.

"사랑이야, 인마."

다 컸구나, 아가야. 율은 웃으며 자신의 머리칼을 흐트려 놓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랑, 이라.

그렇구나. 사랑이구나.

도희를, 사랑하는 거구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답이 나오자, 율은 문득 궁금해졌다.

도희도 자신을 '사랑'할지.

"그랬음 좋겠다."

그러면 안되는 주제에, 왠지 부리면 안될 것 같은 욕심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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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25 21:39 | 조회 : 1,236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예전부터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제 글에 따뜻한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신 Lemonade님, shana님, 멍멍이기여어님, 망퉁이성게에님, 바아보오님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트도 감사해요. 항상 주시는 관심에 기운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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