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그의 중학교 앨범(1)

"으음..."

어젯밤 커튼을 안치고 바로 잠에 들었더니, 아침 햇살이 눈을 찔러 잠을 깨운다.

"아, 윽."

밝은 빛 때문에 잠에서 깬 도희가 상체를 일으키다 바로 앓는 소리를 내며 도로 누웠다. 허리, 골반, 그리고 뒤까지. 욱신거리고 몸살 난것 같이 아팠다. 아픔과 동시에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자, 도희의 얼굴이 바로 붉어졌다.

"더해달라고, 애원하다니."

그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더해달라고. 절로 마른 세수를 하며 시선을 돌리자, 그의 옆에는 곤히 자고 있는 율이 보였다.

"아주 그냥, 잠이 잘 오나 보지?"

어제 그렇게 힘을 써대셨으니. 내가 다신 대주나 봐라. 그렇게 생각해도, 어제의 그 쾌락이 떠오르자 다시한번 그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아 씨. 뭔가, 열면 안되는 문을 활짝 열어버린 느낌이야, 이거.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율에게 몸을 돌리곤 그를 지긋이 바라봤다. 아침 햇살이 율을 포근히 감싸는 것 처럼, 그는 왠지 밝게 빛나는 듯 했다. 살포시 감은 눈은, 여자라고 해도 될 정도로 속눈썹이 풍성하고 길었다. 눈썹을 살짝 가리는 듯한 머리칼은 햇빛 때문인지 은처럼 잘게 반짝거렸다. 가는 선의 콧날, 모양이 이쁘고 붉은 입술. 피부도 참 새하얗다.

"정말, 예쁘네."

아름다운 천사같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머리칼을 쓸어본다. 매끄러운 머리칼이 부드럽게 쓸렸다. 율을 찬찬히 살펴보다, 율의 목에 도희의 시선이 닿았다.

"..."

어젯밤 율이 옷을 벗을 때, 율의 목을 감싸고 있는 붕대가 들어났다. 지금까지 옷으로 붕대를 숨기고 있었던 건지, 처음 보는 것이였다. 그리고 몸을 섞는 도중, 율의 목에 감긴 붕대가 풀렸는데, 목에 흉측한 흉터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뭔가 날카로운 것에 여러번 베인 듯, 울퉁불퉁한 상처에 순간 당황했다.

아침 햇살도 목의 흉터를 예쁘게 보이게 만들 순 없었다. 꼭 뜯긴것 같은 상처를 손가락으로 훑어봤다. 어제 목에 입을 맞출 때 느꼈던 감촉처럼, 약간은 거칠었다.

어쩌다 다친건지. 도희는 마치 아끼는 물건이 망가진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나빴다.

"으음. 도희야...?"

목을 계속해서 만지작 거리자 율이 깼다. 아직 잠에 절은 듯한 눈을 힘겹게 뜨며 도희를 올려다봤다. 도희가 매끄럽게 미소를 짓자, 율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도희야, 안아파?"

자신의 목을 마지던 도희의 손을 잡고 자신의 볼로 끌어당겨 비적대는 율은 조금은 불안한 듯 도희에게 물어봤다. 어젯밤 자기 전, 도희가 분명 내일 밤 아플거라고, 그럼 다 율 너 탓이라고 한 것 때문일 것이다.

"어, 아파. 완전. 허리 끊어질 거같아."

싱긋 웃으며 짓궂게 말하는 도희에 율이 눈을 아래로 깔며 미안, 이라고 웅얼거렸다.

"너무 거칠게 해서 미안해."

축 쳐진 모습에 끙끙 거리는 강아지 같아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제는 그냥 한마리의 짐승 같더니. 이 적응 안되는 차이는 뭘까.

"뭐, 딱히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어."

도희는 끙,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화장실로 가며 말했다.

"너네 집 가서 짐 정리 하러 가야하니까, 어서 준비해."

"으, 응."

자신을 보며 매력적인 미소를 짓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가는 도희를 멍하니 지켜보았을까, 이어지는 도희의 말에 율은 당황한듯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도희는 매력적이였다. 그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볼 때, 꼭 검은 눈동자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아찔한 느낌이 든 적은 한두번이 아니였다. 잘생긴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웃어주자, 그의 미소를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뚜렸하게 보이는 도희를 볼 때면, 동시에 원래 잘 보였던 주변 배경이나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꼭 도희에게만 초점을 맞춘 랜즈처럼, 율의 눈엔 오로지 도희만 바르게 보였다.

"후우."

손으로 느릿하게 얼굴을 쓸어본다. 아까 전 도희가 쓰담던 목까지 이어 쓸어본다. 도희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느낌이였다. 간질거렸다.

두근,두근. 가슴 깊이서 심장이 뛴다. 조용히 그 소리에 집중한다. 도희만이 정확하게 보이는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이 심장이 멈출 때 까지, 오로지 뚜렸한 그만을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은 알았다.

*

"여기야? 너네 집."

도희가 가르킨 곳은 반쯤 탄 안 오피스텔이였다. 화재가 꽤 심했나 본지, 삐죽삐죽 튀어나온 철물이 흉측했다.

계단 쪽은 다행히 무너지지 않아 둘은 율의 집 입구까지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탄내가 진동했다. 율은 이리저리 살피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온전히 온전한 방이였다. 이게 불행 중 다행인 건가.

"다행히 옷은 전부 다 안탔어."

가져온 케리어의 지퍼를 열며 율이 말하자, 도희는 속으로 집이 탔는데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나, 싶었다. 현실 감각이 좀 떨어지는 친구네.

그 외의 현금, 통장 등등 -심지어 집문서까지- 중요한 것들은 타지 않았다. 율은 주섬주섬 그것들을 몾리 챙기더니 이젠 나가자며 도희를 돌아봤다.

도희는 쭈그려 앉아 책장에 맨 아래 구성에 꽂힌 두꺼운 앨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마 오랫동안 꺼내지 않은 듯 먼지가 두껍게 쌓였다.

"이건, 안챙겨?"

"아. 중학교 졸업앨범인데, 딱히."

"나 보고싶은데. 챙기면 안돼?"

졸업 앨범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도희의 말에 율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싫은듯한 표정. 그 표정에 도희는 꽤나 놀랐다. 곤란하거나, 부끄러워 도희에게 표정을 구긴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순정히 싫음 때문에 찌푸린 것이여서, 율의 새로운 표정을 발견한 느낌이였다.

"...도희가 원한다면."

쥐어 짜서 말하는 율에 잠시 앨범은 포기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율의 어릴 때를 보고 싶은 마음도 강했다. 어쩌지. 어쩌지. 가져가고 싶은데. 도희가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는데, 율이 도희 손에 있던 앨범을 집어 들며 현관쪽으로 나섰다.

"저기, 율아. 고등학교 앨범은?"

"...없어."

그건 보여주기 싫은가. 싶어 그만 몸을 일으키곤 율을 따라가는데, 조용히 이어지는 율의 말에 멈칫했다.

"도중에 자퇴했어. 힘들어서."

"아... 그렇구나."

정상이 아닌, 그와 동시에 도희와 같은 부류도 아닌 율의 입장에선 그런 공동체 생활이 버거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괜히 물어봤네. 어색하게.

"...점심 먹고 들어가자. 내가 살게."

도르륵, 케리어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케리어를 끌고 발걸음을 옮기는 율이 꼭 모델 같다 생각하다, 아무 말 없이 거리를 걷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도희는 먼저 말을 걸었다.

"응, 좋아."

율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도희의 눈과 마주한 율의 붉은색 눈은 안 좋은 기억이라도 상기 시키는 듯 불안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

율이 바(bar)에 사장을 만나야 될 일이 있어서 가야한다는 말에 도희는 케리어는 자신이 먼저 가지고 집에 가있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길에서 둘은 헤어졌다. 도희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아까전 중학교 앨범을 가져가자는 말에 눈에 띄게 싫어하는 듯한 태도. 그리고 어둡게 잠겨있던 침울한 눈동자. 그 눈동자는 단지 불쾌함만이 아닌 공포와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전에 무슨 일이었던 걸까."

어서 집으로 가서 앨범을 펼쳐보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율이 돌아오기 전에.

율의 앨범에 대한 태도를 봐선, 그 앞에선 앨범을 들추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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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24 18:15 | 조회 : 1,865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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