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동거(1)

"큰 일, 이요?"

"율아, 네 집에 불이 났다고 전화가 왔어."

옆에 집에서 불이 났는데, 아무래도 휘말린 것 같다더라. 사장의 말에 율은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아마 그 사실이 와닿지 않아 이러는 것이라고, 도희는 생각했다.

"...집이, 타요...?"

율이는 마치 외계어를 들어 말을 이해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다 타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건물은 더이상 쓸 수 없을 것 같다네,"

어쩌니, 아가야. 나도 지금 집안 사정이 있어서 널 맡아 주지 못하는거, 너도 잘 알잖니. 사장은 율이 꼭 자신의 아들이라도 되는듯 이 상황에 발을 동동 구렀다.

사실 발을 동동 구른다는 표현은 사장에게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표현이였지만, 이 표현 말고는 딱히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둘의 상황을 지켜보던 도희는, 문득 자신이 율을 데려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율의 많은 것들이 궁금했기 떄문에 그러기도 했고, 그냥, 뭐라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그저 율과 계속 함께 있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없었지만, 아마 소유욕 이리라.

"저, 사장님, 그럼 제가 잠시 율이랑 지낼 수 있는데. 저 가까운 데서 자취하거든요."

물론, 율이만 괜찮다면요, 도희는 싱긋, 웃으며 율을 바라봤다. 도희의 눈빛에는 무언의 압박이 실려있었다. 마치 괜찮다고 말하라는 듯이.

"뭐...? 그럼 나야 정말 좋지. 도희씨는 믿을 수도 있고. 율아, 넌 어떠니?"

사장의 기쁨이 실린 말투에 율은 그저 고개를 주억였다. 율의 눈은 계속해서 도희와 마주봤다. 아까 전의 키스 때문인지, 두 눈빛은 허공에서 복잡하고도 뜨겁게 얽혔다.

율이 동의하자, 사장은 이제 어서 퇴근 하라며 도희에겐 고맙다며 꽤나 많은 현금을 쥐어줬다. 도희는 사양했지만, 내가 너무 고마워서 그래, 율인 내 아들같은 놈이라서, 라며 끝까지 도희의 손에 돈을 쥐어 줬다.

"음. 우선, 마트로 가자. 적어도 니 칫솔을 사야할거 아니야."

도희와 율은 나란히 가게를 나섰다. 도희는 자연스럽게 율을 이끌었다. 밖에서 같이 돌아다녀 본적은 처음인지라, 율도, 도희도 괜히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

마트에 도착하자, 도희는 이왕 온거 장도 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어, 율은 세안 도구를 고르라 하고, 도희는 장을 보러 갔다. 이것저것 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생활용품 코너 중에서도 약품들이 있는 코너에 도달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진열대를 훑어보다, 바쁘게 굴러가던 도희의 눈이 한 상품에서 멈췄다. 아. 러브젤.

도희는 무심코 러브젤을 꺼내 들었다. 러브젤을 보고 있자니 아까 율과의 키스가 생각났다.

가율, 걘 아마 섹스도 안해봤겠지. 키스도 처음이였으니까.

도흰 그 쾌락을 살면서 한번씩은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친 꽤나 사겨본, 경험도 충분히 한 남자로서 말이다. 지금까지 하는 행동을 봐서는, 율은 그 흔한 자위도 안해봤을 것 같았다.

"...갑자기 불쌍해지네."

혈기왕성한 23살이 되서도 단 한번도 쾌락을 경험을 못했다, 라니. 그거 꽤나 동정 살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섹스, 라.

남자끼리도 할 수 있다 들었다. 뭐, 당연히 할 수야 있겠지만. 그리고, 어디선가 들은적 있다. 안쪽에서 전립선을 자극해 주면 기분이 좋다고. 어떤 이들은 중심부로 느끼는 쾌락보다 더한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랑 나랑 관련이 있을까. 율이와의 관계는 키스를 한 이상 평범한 관계로 돌리긴 거의 불가능이다. 혹시라도, 그와 연인사이가 된다면,

'혹시라도, 그러면. 필요할지 모르지.'

오늘 키스한거 보면, 아무래도 이것보다 더한것도 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관계에서도 더 발전할 가능성도 있고.

연인사이라면, 그를 소유하기에 더 쉬울 것이다.

아무튼 필요한 사람이 누가 됐든지 간에. 사두는게 좋겠지.

도희는 잠시 고민하다, 러브젤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도희는 몰랐다. 그 '누구'가 자신이 될 줄은.

*

집에 돌아가 식탁에 장본 것들을 올려놨다. 장 본건 자신이 알아서 정리하겠다는 율의 말에 도희는 그럼 부탁한다고, 먼저 좀 씻는다고 말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자 따끈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하아..."

따뜻한 물이 몸을 노곤하게 풀어주는 느낌에, 도희는 기분이 좋아졌다.

아. 그러고 보니 잠 자는건 어떡하지. 침대는 하나밖에 없는데. 따로 가지고 있는 이불도 없고. 지금 쓰고 있는 침대가 크긴 하지만 남자하고 같이 쓰기엔 뭐했다.

흠. 어쩌지. 둘 중 하나는 소파에서 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 하곤, 다 씻은 후 율에게 물어봐야겠다 생각했다.

*

도희는 머리를 다 안말린 채로 부엌으로 걸어갔다.

도희의 머리카락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의 턱을 타고 흘렀다. 그 모습에 율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평소의 도희도 그렇지만,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도희는 매력적이였다.

촉촉한 눈과 피부를 보고 있자니 그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에, 율은 자기가 생각해 놓고도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평소 도희가 뿌리는 향수 향이 아닌 비누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또한 좋았다. 그의 목에 얼굴을 묻고 깊히 그의 체취를 맡고 싶었다.

"율아,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자신을 웃으며 바라보는 도희에, 율의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다.

"그, 어..."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율은 자신이 도희의 샤워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기다린 이유는 질문이 있어서라는 걸 상기했다.

"아, 도희야. 뭐 하나 물어보려고, 장 본거 정리 하는데, 하나가 어디다 둬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이거, 뭐야?

율이 들고 있는건 러브젤이였다.

"...아."

율의 손에 들려있는 러브젤을 보곤, 도희는 멈칫했다. 아, 모르는구나. 하긴. 모를수도 있겠구나.

"음,"

이걸 어떻게 서명해야 할까. 자신의 흑심을 나무라야 할지, 율의 순진함, 어쩌면 무지함을 나무라야 하는 건지.

도희의 눈에 띄는 당황하는 모습에 덩달아 율이도 당황했다. 혹여나 질문을 잘못했나, 아닌데. 이상한거 없는데.

도희는 결국 사실대로 말하기로 결심 했다. 그전에, 율이의 무지함이 어디까지 인지도 알아야 했다.

"...율아, 너 섹스가 뭔진 알지?"

"으응?"

"섹스."

"그...성...관계?"

좋아. 다행히 유치원 다니는 어린이 보다는 알고 있네.

"섹스 어떻게 하는진 알고?"

"..."

도희의 물음에 율의 얼굴이 시뻘게 진다. 부끄러워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율이 귀여웠다.

"니가 들고 있는건, 윤활제인데. 섹스 할때 삽입하잖아? 그때 잘 들어가라고 하는거야."

알겠어? 도희의 핵심만 집은, 다르게 말하자면 필터링 전혀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단어 선택에 율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너 섹스 해본적 없지?"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지만, 묻는게 바보였다.

"이왕 섹스 얘기 나온거, 내가 알려줄게. 오늘 밤에."

그리고 마침, 지금이 오늘 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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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21 19:10 | 조회 : 1,758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도희가 너무 변태가 된 느낌입니다. 도희는 그런 친구 아니에요..ㅋㅋㅋㅋ 도희는 결국 누가 소파에서 잘건지 물어보지 못하고... 다음편은 수위 입니다. 아마 된다면 좀 이따 올릴 수도 있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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