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새로운 알바(2)

"율아."

"으응,"

"나, 저기 선반 위에 있는 와인잔 좀 꺼내줘. 좀 아슬아슬해서."

"응,"

도희는 자신의 부탁에 얼굴을 붉히며 선반 위의 와인잔을 하나 둘 꺼내 내려 놓는 율을 지긋이 바라봤다. 도희가 관심이 있다고 율에게 말한 이후, 며칠이 지난 지금, 율은 더이상 도희를 피하지 않았다. 시도때도 없이 도희만 보면 맨날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어떤 관계로든 율과 친분을 쌓겠다는 도희로써는 오히려 잘된 것이다. 조금씩 이나마 친분을 쌓아가고 있고, 어쩌면 율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쥐락펴락 할 수도 있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럼 꽤나 재밌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도희는 율의 감정을 정확히 확인하고 싶었다. 거의 십중팔구는 율이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을거란 확신이 들지만, 오차없는 계산을 위해. 완벽한 계획을 위해선 항상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거면 된거야, 도희야?"

율은 와인잔을 모두 꺼내놓곤 도희를 바라봤지만 도희가 아무말이 없자, 우물쭈물 눈치를 보다 생각에 잠겨있는 도희에게 물어봤다.

"응? 아, 응, 고마워."

도희의 감사하단 말에 율은 얼굴을 붉히며 그 흔한 '별거 아니야,' 라는 말도 없이 고개를 주억이곤 뒤로 돌아섰다. 역시 숫기가 없다기 보단 소통이 서툰 것 같았다. ...아님 말고.

"율아, 잠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던 율을 도희가 붙잡았다. 그저 무의식 적으로 한 행동이였다. 순간 깜짝 놀라며 도희를 돌아보는 율의 얼굴을 보고 괜히 붙잡았나, 싶었지만, 우물쭈물 거리는건 딱 질색이기에, 도희는 이왕 붙잡은거 물어보기로 했다. 너 나 좋아하냐고.

"율아. 물어볼게 있어. 너, 그,"

"그?"

"그때, 내가 물어본거. 대답해줘. 그사람 왜 죽였는지."

아 젠장. 이게 아닌데. 싫다, 진짜.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분명 쉬울거라 생각했는데.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입에서 나온 엉뚱한 질문에 도희는 자신의 머리를 벽에 박고 싶었다.

"음, 그냥... 짜증나서."

당황하면서도 율은 웅얼거리며 대답했지만, 도희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그에겐 원래 질문하려던 것을 질문해야 한다는 생각 뿐 이였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그, 그래."

"율아, 너, 나 좋아해?"

율은 대답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도희가 놔주지 않는 팔목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다, 이어지는 도희의 질문에 몸을 움찔, 하며 도희와 눈을 맞췄다. 순간 도희는 귀까지 붉어진 얼굴을 한채, 예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율의 모습이, 조금은 귀엽다고 ,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율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요즘따라 그의 모든것이 예뻐 보인다는걸 도희는 인지했다.

"...좋아해."

좋아하냐고 물어본건 너무 갔었나. 좀 더 지켜보고 충분히 친해졌을 때 물어봤어야 했나. 전 질문하곤 너무 상관 없는 질문이긴 했어. 몰려오는 후회에 도희가 고개를 저으며 율에게 시선을 거두려는 직전, 도희는 그러지 못하고 계속해서 눈을 마주쳤다. 율의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 때문이였다.

"도희를 좋아하는거 같아."

"..."

"사실, 잘 모르겠어. 그냥, 도희만 보면 가슴이 더 빠르게 뛰어. 얼굴도 자꾸만 붉어져. 배가 울렁거릴 정도로 간지러운 느낌이야. 널 보고 있으면."

율이 도희를 좋아한다는 대답을 하는데도 돌아오는 대답니 없자, 율은 어떠한 용기를 얻었는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왠지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는 듯, 새로운 감정을 '좋아함'이라 추측하면서 웅얼댄다.

"간지럽고 울렁거리지만,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아져서, 그래서 좋아한다고 생각해. 율은 도희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둬 도희가 붙잡고 있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봤다. 도희의 손은 따뜻했다.

"...그래?"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는데도, 에상한 거부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왜일까, 모르겠다.
그저 율이 자신과 같은 정상적인 부류가 아니여서 그런걸까. 아님 그와 있는 모든 시간에 그의 진심이 느껴져서 인걸까.

조곤조곤 자신의 감정을 서슴없이 말하는 그 입술이 참 신기했다.

...호기심 때문이건가.

재미있었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전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순수하게 속 안을 훤히 보여주는 깨끗한 물 같았다. 그런건 처음이여서, 흥미로웠다.

가지고 싶었다.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이 감정은, 아마도 소유욕.

"좋아한다, 라고,"

그렇단 말이지. 도희는 율을 붙잡던 손을 떼 천천히 율의 볼을 쓸어보았다. 이 사람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머리가 맑아졌다. 단 하나의 목표만이 도희의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도희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곧 울것만 같은 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매력적인 미소였다. 그 아찔한 도희의 모습에 저절로 숨 막히는 순간,

도희는 부드럽게 율에게 입을 맞췄다.

"...!"

율은 당황했다. 입은 왜 맞춘걸까. 도희고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인건가, 하고 온갓 생각이 교차했다. 도희의 입술은 부드러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율이 그 부드러운 감촉에 슬며시 눈을 감으려 하다, 다시 화들짝 놀랐다. 도희의 혀가 율의 굳게 닫혀있는 입술을 끈적하게 핥았기 때문이였다.

'...?'

도희는 자신이 입을 맞췄으니 자연스럽게 율은 입술을 열고 자신에게 키스를 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율은 그저 도희와 입술을 맞대고만 있었다. 뭐지 싶은 마음에 도희가 율의 입술을 핥자, 율이 온 몸으로 당황하는게 느껴졌다.

'설마...'

애 키스하는거 처음인가.

설마가 맞나보다. 이리 당황하는걸 보면.

"입 벌려."

율과 입술을 맞댄 채로 말하니, 율의 입술이 슬며시 벌려졌다. 동시에 뜨거운 숨결이 도희에게 와 닿았다. 도희의 혀는 부드럽게 율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 율의 뜨겁고 말캉한 혀를 쓸었다. 이어 그의 혀를 감고 도희는 자신과 그의 입술사이에 조금의 틈도 없게 빨아들였다. 쪼옥, 하는 민망한 소리와 함께, 도희는 율의 입천장을 한번 훑고 입을 떼어냈다.

"...후아..."

키스하는 내내 숨을 참고있었나 본지, 율은 벌건 얼굴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흐릿하게 풀어진 눈과 둘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율의 붉은 입술이 참 예뻤다.

"키스, 첫키스야?"

도희는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훔치며 끈적한 눈으로 율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희의 눈빛은 마치 눈빛만으로도 모두를 홀릴것만 같은 그런 눈빛이였다. 율은 도희의 야릇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은걸, 네 첫 상대가 나라니."

도희의 싱긋 웃은 그 모습에, 율은 얼굴은 붉혔다. 아까 전 생생한 도희의 감촉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조심스럽게 도희의 입술이 닿았던 자신의 입술을 만져봤다.

"이제 정리하고 퇴근할 시간이네, 율아."

도희는 흘긋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도희는 율이 꺼내 논 와인잔을 하나하나 와인랙에 거꾸로 뒤집어 걸었다.

율이 앞에서 태연한 척 행동하는 도희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쿵쿵 가슴이 떨려왔다. 율의 부드럽고 뜨거운 감촉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없이 해왔던 키스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어쩌면 기분 탓일 수 있지만,

분위기는 어색했다. 어색한것 뿐만 아니라, 끈적이고, 뜨겁고, 야릇했다. 손님없는 가게는 조용했다. 틀어놨던 재즈 음악도 손님이 없고 가게를 정리할 시간이 되자 끈지 오래였다. 가게에는 그저 두 사람의 심장소리와 정리하는 와인잔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율아! 율아!"

키스 직후의 어색고 끈적이는 기류를 끊어버린 것은, 사장의 다급한 외침이였다. 갑작스런 사장의 등장에 율은 황급히 소매로 자신의 버들거리는 입을 닦고 고개를 숙였다.

"율아, 큰 일 났다!"

그런 율의 행동을 보지 못한 듯한 사장의 심각한 어투의 말에, 율과 도희는 의아해 해며 사장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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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20 21:50 | 조회 : 1,323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도희가 아주그냥 상남자네요..^^ 수위가 점점 올라갑니다..아마 다다음화가 수위겠네요..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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