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새로운 알바(1)

그때 골목에서의 사건 이후로, 도희는 더이상 그 남자를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찾으러 오겠지, 싶었다. 그 남자에게 있어 도희는 죽여야 하는 목격자니까, 어떻게 해서든 찾아올거라 예상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도희는 남자가 자신을 찾지 않는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거의 확실히.

아, 혹시 시체를 치워줘서? 설마 고마워서? 아니, 시체를 치우면 경찰에 신고 또한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건가.

이제 그와 만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궁금한게 많았는데. 아쉽지만 별 수 없었다. 자신이 그 남자를 찾으러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이였다. 아무리 그래도 도희는 목격자였고, 도희가 그 남자를 찾다가 자칫하면 그 남자에게 살해 당할 수도 있으니까. 미쳤다고 목숨을 걸 행동은 하지 않는다.

"도희야!"

쯧, 혀를 차는데 뒤에서 누군가 도희를 불렀다. 아... 귀찮게. 뭐지. 안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도희는 미간을 좁히다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적어도 이미지 관리는 해야지. 고개를 돌리며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는 그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도희야. 여기있었네. 오늘 좀 있다 우리 과 동기랑 후배들이랑 술마실건데, 너도 올래?"

후배들이 너 엄청 보고싶어 하던데, 라며 도희에게 말을 건 사람은 도희의 동기였다. 딱히 친하지도 않은.

"...선배들은?"

"아, 선배들은 안와. 왜, 편하고 좋잖아. 어때?"

"...아, 좋긴 한데, 나 알바 뛰러 가야해서."

"응? 너 알바 그만 뒀다면서."

"새로운거 구했지."

친분 쌓으면 두고두고 적지 않게 도움 될 선배들이라면 모를까, 그냥 이런저런 동기랑 후배 사이에서 술마실 생각은 없었다. 그들 대부분에겐 자신 특별히 더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이미 대부분이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도희는 거절했다.

너희들하곤 친분 쌓아서 나한테 득 될게 별로 없어서, 너희랑은 술 안마셔, 라고 말할 순 없으니, 그저 미안, 하고 웃을 뿐이였다.

독한 녀석, 알겠어, 라며 도희의 어깨를 툭 치며 돌아가는 동기에, 도희는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 친한것도 아닌데, 멋대로 구는 건 딱 질색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차마 표정을 구기진 못하고, 손으로 어깨를 털면서 가던 길로 발길을 돌렸다.

알바가 있어서 못가겠다는 핑계는 거짓말이 아니였다. 저번 골목길에 있었던 사건 이후로, 도희는 바로 알바를 그만 뒀다.

대학 등록금은 알바나 장학금으로 해결하던 탓에, 새로운 알바를 구해야 하나,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나, 고민 하던 참, 우연히 길거리메 붙여져있던 알바모집 전단지를 보게 됐는데, 조건이 너무나도 이상적이였다.

모집하려는 직원 수는 한명. 돈도 꽤 되고 시간대나 부수 조건 또한 좋아서, 딱 이거다 싶었다. 단, 지원한 사람이 많아 면접이 있었지만,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상대방 마음에 들게 나불 거리는건 누구보다 자신있었으니까.

예상대로, 라던가 당연히, 라긴 뭐했지만, 면접에 합격했고, 오늘이 일하러 가는 첫 날이였다. 첫 날 부터 늦거나, 다른데로 세는 것은 절대 안되는 일이다.

"바(bar)라..."

도희의 새로운 직종은 바텐더였다.

*

딸랑, 가게 문을 열자 청아한 종소리가 울렸다. 가게 분위기는 면접 때와 같이 꽤나 고급스러운 느낌이였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였지만, 은은한 조명이 꽤나 예뻤다. 어둡다고 해서 바(bar)가 너무 밝은 것도 웃기고. 너무 갑갑하게 보이지 않는 테이블 배치와, 잔잔히 들리는 재즈는 가게를 휑해 보이지 않게끔 했다.

좋네, 여기. 아직 영업 준비중 인지 아무도 없는 가게를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안쪽 주방에서 허겁지겁, 사장이 나왔다.

"아, 도희씨! 벌써오셨네요."

사장은 인상은 좀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면접때 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도희는 첫 날이니까, 미리 와야죠, 라며 웃었고, 사장은 도희를 마치 아들이라도 보듯 흐믓하게 웃었다. 도희에겐 꽤나 익숙한 시선이였다.

"얘, 율아! 이번에 새로 뽑은 직원 왔다, 나와서 인사해!"

사장은 도희와 마주보다 말고 안 쪽 주방에 대고 외쳤다. 율? 아, 직원이 있었구나. ...귀찮게 됐네. 일할때는 혼자서 있고 싶었는데.

면접 때 사장이 앞으로 일하게 되면 함께하게 될 직원이 한명 있을건데, 어떻게 대할거냐는 질문을 했었다. 도희는 그저 인성 관련 질문이거니, 하며 정석으로, 그러나 뻔하게 들리지 않게 약간의 감미료를 첨가해 답했었다. 그에 사장은 흐믓하게 웃었었지. 그런데 직원이 한명 더 있었다는게 사실이였네.

면접 때의 생각을 하며 주방 입구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입구의 커튼이 걷히며 한 남자가 나왔다.

"...!"

도희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도희와 함께 일할 직원은, 그 남자였다. 그때 골목길에서 봤던, 그 남자.

뭐야. 이거. 진짜야? 허, 하고 헛웃음이 나오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그 남자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질겼다.

"...!"

"하하, 아가야, 왜 그렇게 굳어있어. 새로운 직원이 너무 잘생겨서 그러냐,"

놀란건 남자도 마찬가지 였나보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도희를 발견한 이후 갈 곳을 잃은 것 마냥 정신없이 흔들렸다. 다른 한쪽인 역안은 평소에는 가리고 다니는지 안대를 끼고 있었고. 남자가 눈에 띄게 굳어있자, 사장은 웃으며 남자를 툭, 쳤다.

"하하, 이놈이 좀 낯을 가려서..."

계속해서 굳어있는 남자에 사장은 좀 민망하지 호탕하게 웃었다. 이에 도희도 이런 어색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남자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윤도희에요."

"아, 어, 그, 가율 입니다."

남자는 멍하니 도희의 손을 쳐다보다 그제야 악수를 하자는 뜻이란걸 알았다는 듯 허겁지겁 손를 마주 잡으며 인사했다. 어딘가 어색해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도희는 그가 정말 저번의 그 남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사람을 죽인 사람 치고는 너무나 순해보였다. ...조금 모자란 것도 같기도.

"도희씨, 23살이죠? 이놈도 같아요, 동갑이니, 서로 편하게 말 놔요,"

"아, 그래요? 잘됐네요. 말 놓을게, 율아."

사장의 말에 도희는 싱긋 웃으며 율과 눈을 마췄다. 이어서 우리, 만난적 있지? 라고 입모양으로 말하자, 율은 마주보고 있던 눈을 황급히 피하며 도희의 손을 놨다. 그리고 들릿듯 말듯, 응, 이라 대답했고.

도희는 그의 대답이 말을 놓아도 된다는 의미인지, 만난적 있다는 의미인지 헷갈렸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율이 도희 앞에 있다는 것 이였다. 율은, 도희의 호기심과 심심했던 일상을 채워 줄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친해질 필요가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절대 놓칠 순 없지.'

그러기 위해선, 도희는 율에게 잘 보여야만 했고, 어떠한 관계로든 그와 가까워져야 했다.

*

새로운 가게에서 일한지 며칠이 지나, 도희는 그의 새로운 일에 완벽히 적응했다. 바텐더 일은 생각보다 도희와 잘 맞는 일이여서, 도희는 만족했다.

일에 관한 적성도 알맞았지만, 도희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가게였다. 가게의 분위기 자체가 가볍지만은 않다 보니,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최소한 이라도 갖춰 입있고, 진상 또한 예전 일을 할 때 보다 확연히 적었다. 소란스럽지도 않아 조용히 일을 하기 딱 좋았다.

손님들은 도희에게 꽤나 잘 해줬다. 이상한 고집도 부리지 않았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손님 중 대부분이 단골인지, 사장하고 친한 사이인건지 모르겠지만, 초반에 새로 온 도희를 두고 손님들은 사장에게 도희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직원 하나는 참 잘 뽑았다며 짖궂은 농담을 하고 돌아갔다.

물론, 흠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항상 웃으며 손님들을 대해서 그런지, 종종 어떤 손님들은 웃음이 호감을 가진 호의라 생각하고 도희에게 들이대거나, 번호를 물어보긴 했다. 그럴 때 마다 정중히 거절하면 바로 마음을 접긴 하지만.

아, 그리고. 이 일에 가장 큰 흠은 따로 있다. 바로 같이 일하는 가율이다.

율과의 대화는 첫 날 이후 전혀 할 수 없었다. 율은 그 이후로 필사적으로 도희를 피해다녔다. 얼마나 필사적인지, 도희는 율이 자신을 피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아니, 눈치 챘다고 하기도 민망 할 만큼 눈에 선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희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율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멍때리고 있던 율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있는 위스키 병을 들고 닦기 시작했다.

"...그거 새 거여서 닦을 필요 없는데."

도희의 말에 율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라더니 위스키 병을 내려 놓고 그 옆의 샴패인 병을 집어들었다.

"그건 빈 병이야."

이어진 도희의 말에 율은 병을 내려놓고 그대로 주저 앉아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온다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율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피해도, 도희는 그에 넘어가줄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도희는 자신의 발치에서 고개를 숙여 바닥을 닦고 있는 율이 옆에 같이 쭈그려 앉았다.

"야, 율아, 나좀 봐봐. 피하지 말고."

도희의 말에 율은 흠칫, 하고 몸을 움츠리곤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도희와 눈을 맞췄다. 율의 눈썹은 축 처져 있었다. 마치 내가 너 피하는거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였다. ...이러고 보고 있으니까 꼭 강아지 같네,

"경찰에 신고 안할거고, 사장한테도 그거 말 안할거니까, 그냥 피하지마. 불편하거든."

사장한테 말 안한다는 말에, 율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이어 불편하다는 말에 표정을 찌푸렸다.

"그리고, 나, 너한테 관심 있거든?"

...

응? 잠깐. 이거 어감이 좀 이상하잖아. 도희는 자신이 말하고서도 아차 싶었다. '너가 왜 살인을 한건지, 그 밖에도 살인을 한 적은 더 없는지 관심이 있다.' 라는 말을 길게 말하기 귀찮아 그냥 짧게 말을 한건데, 이건 마치 고백하는 것 같았다.

"...!!"

도희가 어떻게 말을 바꾸려고 하기도 전에, 율은 멍하니 도희를 바라보다 눈이 커지고 얼굴이 빨게졌다. 그것고 모자라서, 귀와 목까지. 율의 반응을 보자, 도희는 더 아차 싶었다. 순간 자신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싶었다. 여기서 말을 더 붙여봤자였다.

'...미치겠네.'

정말 미치겠다. 율의 반응은, 마치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을 받은 어린 소녀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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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9 15:32 | 조회 : 1,227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도희: 너 나 좋아하냐. 여담으로 이번 화를 어제 다 쓰고 등록하는데 오류가 나 다 날려먹었습니다..하하 앞으로는 네이버 소설에서 써서 일로 붙여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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