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흔하지 않은 첫 만남(2)

짜증나고, 귀찮았다. 심히 거슬렸다.

그래서 율은 죽였다. 그 남자를.

그는 가게에서 손님으로 왔던 남자였다. 처음에는 율에게 그저 몇번 인사를 하는게 다였는데, 점점 정도가 심해졌다.

남자는 매일같이 가게를 들러 계속 율이 앞에서 말을 걸었고, 심지어 살고 있는 집은 어떻게 알았는지, 집 앞에서 죽치고 앉아있었다. 길거리에서 무작정 따라오질 않나, 율에게 계속 커피를 마시자며 들러붙질 않나. 골목길로 뜰어들여 죽이기 전까지도 커피 한잔 마시자며 주절거렸다.

뭔 한밤중에 커피야, 커피는.

남자는 멍청했다. 어두운 골목으로 가는데도 아무 의심없이 따라오는거면 말 다했지. 죽이기도 쉬웠다. 남자를 발로 걷어 차 넘어뜨리고 올라 타 목을 졸랐다. 그리고 바로 숨통을 끊었다.

남자가 반항 중 율의 얼굴을 손으로 치며 율의 안대의 끈이 끊기고 안대를 버려야 했지만, 율은 별 상관하지 않았다.

그 남자를 죽이는데는 얼마나 쉽던지, 숨하나 벅차지 않았다.

살려달라는 말에 율은 한마디 했다. 그러게 적당히 좀 하지 그랬냐고.

짜증나는 거머리 같은 남자를 떼어냈는데, 기분이 더러웠다. 빨리 정리하고 집으로 가서 쉬고 싶었다.

싸늘한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남자를 일어나 바라봤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제 이걸 옆에 쓰레기 소각기에 넣으면 될까,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두운 곳이라 그냥 지나치겠지, 싶어서 그냥 등을 돌리지 않고 서있었는데, 이어서 폰을 켜는 듯 등 뒤가 밝아졌다.

"...!"

고개를 돌리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율을 빤히 바라보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설마.

빛을 밝히려는 건가. 목격자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더 일이 커지니까. 그럼 너무 귀찮아지니까. 그래서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 그를 부르며 다가가 벽으로 밀어 붙였다. 그 목격자는 벽에 부딪히며 충격이 컸는지 마른 기침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후레쉬가 켜졌다. 아, 늦었네, 하는 생각과 동시에 터지는 강렬한 빛. 순간 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목격자가 도망가면 그대로 끝이다. 강렬한 빛에 적응이 안되는 눈을 찌푸리며 목격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목격자와 율의 사이가 좁혀지자, 율은 더 미간을 좁혔다.

온 세상 사람들의 얼굴, 심지어 아저씨의 얼굴 조차 뿌옇게 보이는 안면인식 장애 때문에, 안개 마냥 흐릿하게 보이는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매우 거북했다. 가까이 있는 얼굴 하나 뚜렸히 볼 수 없는게 새삼 답답하고 절망스러웠다.

목격자는 자신의 목이 졸리는 상태에서 그저 주변을 살피는 듯 했다. 왜 두려워하지 않는지는 의문이였지만, 위협하려 목을 조른건 아니니 별 상관은 없었다.

"...저게 뭐지?"

목격자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마 시체를 봤겠지.

...사실상 예비 목격자는 진짜 목격자가 되어 버렸다.

이제 주저할 새도 없이 죽여야 했다. 쓰레기 소각기에 과연 시체가 둘씩이나 들어갈지 의문이였다.

"그러니까 그냥 지나치지 왜 또 이걸 봐서 일을 크게 만들어. 아저씨가 목격자는 모두 죽이라 했단 말이야."

그런데,

목을 그러 쥔 손에 힘을 주기 직전, 목격자가 픽, 하고 웃었다.

뭐야. 이 반응은.

혹시 시체를 보고 너무 정신이 나갔나. 종종 패닉에 빠지는 경우는 본 적 있어도, 이렇게 웃으며 흥미로워 하는 듯한 태도는 처음이였다. 조금은 당황했을까, 바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질문.

왜 죽였나는 그 질문에, 그 목격자의 태도에,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사람, 나와 같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그것을 인지하자 마자, 마치 안개가 사라지듯, 목격자의 얼굴이 뚜렸히 보였다.

"...!"

율은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아주 많이. 뭐지, 무슨일이지. 이게, 이게 뭐야. 갑자기 보이는 사람의 얼굴에 심히 혼란스러웠다. 꿈인가, 헛것을 본건가 눈을 깜박여도 봤다. 이렇게 쉽게 보이는 거였나, 순간이였지만 조금은 화도 났고.

목격자의 눈을 바라봤다. 그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 사람이 자신을 바라봐 준다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서로의 눈빛이 허공에서. 둘 사이에서 얽히는 기분이 마음에 들었다. 두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는게 신기했다.

강렬한 불빛 속에서 보이는 검은 곱슬 머리에 진한 눈썹, 날카로운 눈매와 깊이를 알 수 없을 것만 같이 검은 눈동자. 잘 뻗은 콧대와 도톰한 입술. 사람의 얼굴을 처음 보면서도, 이런 사람이 미남이라고 불려지는 사람인가, 생각하다 분명 그럴 거라 확신이 들 정도로 잘생겼었다.

간질 거리면서도 울렁한 느낌이 배에서 부터 몰려왔다. 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은, 율에겐 모르는 감정이였다. 아니, 율은 이 느낌이 '감정' 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였다. 이질적이고 어색했다. 이에 당혹스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진다.

꼭 눈물샘이 고장난는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터지는 눈물에 더욱 혼란스러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처음 느끼는 감정에, 갑작스레 밀려오는 감정에 율이는 자신도 모르게 한발, 한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달아났다.

그저 이 처음 느끼는 감정은, 율이에겐 두려움이였고, 율은 그 두려움에 벗어나고 싶었다.

이성을 되찾았을 땐, 이미 골목에서 벗어난 뒤였다.

"..."

하늘을 올려다 보자, 뚜렸한 보름달과 그 주위의 별이 반짝였다.

뚜렸히 보이는 모든것에, 그가 떠올랐다.

"...아. 맞다. 시체."

율은 시체를 아직 치우지 않았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며 발길을 돌렸다.

거기다 목격자도 있는데. 못죽였는데. 어떡하지.

아니, 못죽였는지, 안죽였는지, 잘 모르겠다.

초초한 마음에 골목으로 다시 들어 가 시체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장소에 도착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시체가 없었다. 옆 쓰레기 소각기에는 '소각 중' 표시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뭐지, 치워준건가.

율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그가 치워줬는지도 의심스러웠다.

"..."

그 목격자에게 물어봐야할것이 많았다. 또 다시 확인해 봐야할 것도 많았다.

그를, 다시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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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7 18:53 | 조회 : 1,785 목록
작가의 말
연어구이

실수로 f5키를 눌러버려 깔끔히 지워졌었어요.. 심히 죽고싶었..여기 ctrl z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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