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군가에겐 생명이 축복이라 하지만, 아픈 사람에겐 과연 그게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아파보지 않으면 절대로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단순히 몸이 약해서 병치레가 잦은 수준이면 좋았을텐데...그냥 날 때부터 아픈건, 약을 먹든 치료를 받든 꾸준히 아픈 상태가 유지되는거니까...소용없는걸 알면서도 더 아프고 싶지 않으니까, 치료를 받는다.

몸이 아프다보니,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는건 어찌보면 당연했고...친구도...당연히 사귈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학교에 나오질 못하니까, 친구 자체를 접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게 맞을 것 같다.

그냥 하루 하루 마지못해 사는 느낌...이라 솔직히 내가 왜 이렇게 아픈건지, 아픈건 언제쯤 끝나는건지...이젠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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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고 있나요?"
"아 네, 죄송하지만 환자분이 면회를 거절하셔서..."

매일 같이 찾아와서 나랑 그렇게 친했던 것도 아닌데, 매일 저렇게 꽃을 들고와서 문 앞에 두고 가는 남자가 있다. 누구지 정말, 학교에 간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내 이름 자체를 모를텐데...누군진 모르겠지만...

"찾아와 주는건 고맙네. 부모님도 안오는 여길 굳이 시간 내서까지"

씁쓸한 표정이 살짝 떠올랐지만, 이내 갈무리한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이 안오는게 아니라 내가 오지말라 한거지만. 항상 아픈 사람 봐봤자, 나도 우울하고...부모님도 우울할테니까. 그냥 서로 안보는게 편하다.

"밖으로 나갈 수가 있어야, 매일 찾아오는 사람이 누군지라도 알 수 있을텐데"
설마 날 여자로 착각하는거면 많이 곤란한데...외동이라 부모님 아니면 더더욱 친구가 없는 나로선...그 누군가의 방문이 솔직히 궁금하면서도...매일 이렇게 와주는 것 자체에 고마움을 느꼈다.

"꽃은...좋아하진 않지만, 덕분에 매일 기분 전환은 되니까"
잠깐의 바람만 쐬도 목이 아파서 창문을 닫아 놓고 바깥 풍경을 감상 하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매일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선물 받는 기분은...나쁘지 않다.

"콜록 콜록...약 먹을 시간이지...오늘은 뭘해야 좋을까"
특별한 취미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나로선, 매일 하루 하루가 굉장히 길고...거의 혼자 떠들다보니 혼잣말 하는건 누가 보면 미쳤나보다 할 수도 있지만, 난 정상이다.

"꽃...이라도 그려볼까, 아니면 매일 갖다 주는것에 대한 보답이라도..."
상대방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매일 시간내서 와주는 것에 대한 보답은 해야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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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용기를 내서 안에 들어가볼까..."
꽃다발을 매일 같이 들고 와서, 병실 앞에 놓기를 무려 2년 동안 반복하는 동안, 남자는 직접 얼굴을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왜냐면...우리 둘 사이는...

"나만 기억하고 있는 일방적인 관계니까, 분명 당황하겠지"
학교에 정말 아주 가끔 나오던 창백한 얼굴의 아파보이는 얼굴일 뿐인데, 뭐 때문에 자신이 굳이 매일 같이 굳이 병원을 알아내서 찾아오는건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웃으면 분명 예쁠것 같은데..."
아무런 접점이 없지만, 자신이 보내는 꽃을 보고 힘을 내서, 나았으면 좋겠다. 많이 아프다고 하지만...병은 마음의 힘이 중요하단 말도 있으니까.

"...2년정도면 이제 용기 내서 한번 말해봐도 괜찮을려나..."
매일 같이 들리는 꽃집 직원이"여자친구분이 매일 같이 꽃을 받아서 정말 좋으시겠어요"란 말을 떠올리자,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내가 준 꽃...잘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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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누구신진 모르겠...지만 매일 꽃 선물 감사합니다..."
남는게 시간인 나니까, 아프지 않다면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진 않다. 약 기운이 받는 동안은...괜찮을꺼다.

"거의 2년 정도 받은것 같은데...이젠 누구신지 궁금해서...들어오셔도 상관 없으니까, 한번 들어와 주실 수 있나요...?"

대화는 길게 못하니까, 글로 하고 싶은 말을 확실하게 적는게 좋을 것 같다. 사실...직접 얼굴 보고 대화하고 싶지만, 혹여라도 내 아픔이 그 사람에게 전달되면 곤란하니까...피해는 주고 싶지 않다.

"제 이름은 정이현이예요. 저는 몸이 많이 아파서, 학교를 거의 못갔지만...괜찮다면 그 쪽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초면에 이런 말씀 드려서 곤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남들이 누리는 평범함은 나에겐 사치였던게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솔직히 거절 당하는 두려움은 있지만...친구라는것 나도 한번은 갖고 싶다.

"편지는...간호사 누나한테 그 분오면 전해달라고 말해야겠네. 직접 주기엔 서로 초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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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어머 오늘도 참 예쁜 꽃이네요. 환자분께 전해드리면 될까요?"
"아 아뇨, 오늘은 직접 보고 전해줄려구요"

"와~드디어 용기를 내신건가요? 잘되실꺼예요"
"하하 잘됬으면 좋겠네요...지금 들어가도 될까요?"

"아 잠시만요, 환자분께 괜찮은지 한번 여쭤보고 올께요. 아! 저기 이건 환자분이 대신 전해달라 부탁하신건데, 나중에 집에가서 읽어보세요"

"...?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면 될까요?"
"네~잠시만 기달려 주세요"

자신의 손에 들린 편지 봉투를 힐끗 쳐다보다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가서 보라고 했으니까, 지금 굳이 볼 필요는 없겠지.

"지금 들어오셔도 괜찮아요.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와 드디어 들어가는건가...? 왠지 긴장된다...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많이 건강해졌을까...?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베개를 등에 받치고 앉은 인영이 보인다. 앉아도 괜찮은거구나...다행이네.

"음...안녕...하세요? 매번 꽃선물 해주셔서 감사해요"
"! 아 안녕하세요. 아니...제가 멋대로 한거니까...감사할 것까진..."

어떡하지...눈을 못쳐다 보겠다! 볼려고 들어온건데 지금 안보면 어쩔거야. 진짜 한심하다. 지금 부끄러워 할때냐고...

"인사가 많이 늦었지만...거의 2년이죠? 처음에는 장난인가 생각했는데, 2년 동안 매일 같이 꽃선물을 해주신건...장난이라 볼 수 없어서..."
"어...그...렇죠...? 저도 참 그 부분은 대단하다 생각..."

...그냥 입을 다물어라. 지금 뭔 소리를 하는거냐...흐 그냥 입을 다물껄. 이미 수습 불가다.

"하하하 재밌는 분이네요. 진작에...이렇게 보자 말씀 드릴걸 그랬네요"
"...제가 보기 보다 많이 소심해서...용기 내는데 2년이 걸렸네요"

자신의 눈을 환하게 웃으면서 쳐다본다. 내가 보고 싶었던 환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봐준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사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전 그 쪽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꽃선물 시작한거예요. 제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아 그래서였군요. 제가 웃는 모습...음? 혹시 저 아세요?"

"...스토커는 아니구요. 학교 다닐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서"
"아...학교에서...그러셨구나. 친구 한명도 없어서, 아는 사람이 있을거란 생각은 못했는데...어쨌든 감사합니다...덕분에 매일이 지루하진 않았어요"

병실에 가득 쌓인 꽃들에 묻힌 풍경은...설마 자신이 보낸 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시들었든 생기가 있든 상관 없이 소중히 여겨준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밖에 나갈 수 없으니까, 하루가 굉장히 지루하거든요.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럴때 매일 새로운 꽃을 보면, 오늘도 살아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힘이 나더라구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자신이 보낸 꽃이 이 사람에게 힘이 되었다면 다행이다. 사실 같은 남자에게 남자가 꽃을 선물 한다는게 보통 이상하다 여길 수 있는 일이라, 보낼까 말까 엄청 고민했었는데...이런 말을 들으니까 꽃보내길 잘한 것 같다.

"...저 말씀중에 죄송하지만, 실례가 안된다면 앞으론...직접 보러 찾아와도 될까요?"
"...! 음 바쁘시지 않다면, 전 괜찮습니다 남는게 시간이라..."

서로를 마주보는 시선에 부끄러움...이 느껴졌지만...뭐 어색해서 그런거겠지...? 꽃을 보낸 사람이 남자란 것에 솔직히 살짝 놀랬지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내일부턴 직접 얼굴 보러 올께요. 그 쪽이 아프지 않으면, 같이 산책도..."
"아 제 이름...모르시죠...?제 이름은..."

"정이현...맞으시죠? 아까도 말했지만 스토커는 아닙니다"
"와 제 이름을 알고 계셨나요? 이 정도면 대단하신데요~그럼 그 쪽 이름은..."

"전 채하랑입니다. 이름이 많이 특이하죠? 편하신대로 불러주세요"
"음...그럼 하랑씨...?라고 불러도 되죠? 예쁜 이름이네요"

자신의 이름을 예쁘다고 해주다니...수십년간 여자 같다고 놀림받은 수모가 사라지는 것 같다. 이 이름으로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이젠 아프지 않으니까, 같이 밖도 나가보고 친구로 잘 지내봐요 하하"

사실 상태가 많이 호전됐을뿐, 다시 누워있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설령 나중에 정말 아파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됐을때 적어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프지 않으면 다행이네요. 네 그럼 내일 같이 한번 나가봐요"
눈 앞의 남자, 채하랑을 마주보고 씩 웃는다. 서로 용기를 내는게 늦었지만, 제가 아프지 않을 동안...잘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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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이름은 즉흥적으로 지은거라 여자 이름 같은데...어디서 본 것 같은데...란 생각이 드셨다면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올린 글을 재밌게 봐주셨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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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25 23:26 | 조회 : 1,045 목록
작가의 말
키스키

요즘 이런 저런 생각은 떠오르는데 막상 글로 쓰면 생각과 많이 다른 글이 써지네요(실력 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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