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편* 누구에게나 불행은 있다(레인편)

내 이름은 남우현. 현재는 개인 사정으로 가명인 레인으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본래의 이름을 쓸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힘"을 가져야 하겠지만.

내가 속한 이 세계에선 개인의 능력보단, 집안과 가문이 어디냐 가 더 중요한 철저한 계급사회다.

이 사회의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나면 우선은 인생 프리 패스권을 얻은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귀족 사이에서도 상하관계는 존재하지만.

흔히 갑과 을의 관계성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봤겠지? 이 갑과 을을 결정하는건 딱 하나다. 힘이 있느냐? 물리적인 힘이 아닌, 실질적인 권력이 있느냐...?를 말하는거다.

자신에게 주어진 계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건 이 세계의 룰이다.

이 규칙을 어기려하면, 자신의 목숨만이 아닌 나와 관계된 혈족은 모조리 몰살당할 각오가 필요하다.

...귀족이지만 이름 있는 귀족 가문이 아니였기에, 난 어릴때 깨달았다. 내가"힘"을 가져야 내 가족을 소중한 사람을 지킬수 있지 않을까?

귀족 신분을 버려서라도 그 힘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내가 이뤄내면 행복해 질것이다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것은 내 신분을 버리고 거짓 인생을 사는것이였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만 할께. 세상엔 공짜가 없고, 내가 하나를 얻을려면 나도 뭔가를 줘야한다는 아주 심플한 법칙을 알고 있냐?고 물을께.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면, 내 선택은 지극히 현명했다는걸 잘 알꺼야. 선택할지는 본인의 자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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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그랑"
"이걸 차라고 끓여왔어? 얼굴에 부어줄까?"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다시 준비하겠..."
"콱"

"내가 나 부를때 뭐라고 부르라 했지? 이렇게 머리가 나쁘면..."

이전에 있던 곳은 실수를 해도, 이렇게 살벌하게 주인님에게 혼나진 않았었다. 예전 이야길 해봤자, 지금 상황엔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하...늘 도련님이라 부르라 하셨습니다"
"슥"

"뭐야? 알고 있잖아. 설마 너 지금 나를 우롱한거냐...?"
"...절대로 맹세코 그런 적은..."

어떻게 반응해야 혼나지 않을지...를 생각해야 하는데...!머릿속이 새하얘져서...생각없이 질문에 즉각 대답을 해버렸다.

"너...주인을 뭐로 아는거야? 지금 반항하냐?"
"털썩"

절대로 하늘 도련님 앞에서 울면 안된다...! 울면 또 어떤 말을 들을지가 더 두려우니까. 반드시...참아야 돼.

"자 잘못했습니다 하늘 도련님. 부디 자비를..."
"씨익"

"까닥까닥"
"...?"

...도련님에게서 아무 말이 없어서 고개를 천천히 들자, 웃으면서 손짓하는 하늘 도련님이 보였다. 오라는...거겠지...?

"터벅터벅"
"가까이 와. 우리 레인한테 주인님이 줄게 있으니까"

머리로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걸 알고 있지만...나는 따를 수 밖에 없다. 왜나면 난...하늘 도련님께 고용된 집사니까.

"촤르륵"
"..."

"니가 끓인게 얼마나 끔찍한 맛인지 잘 알았지? 다시 끓여와"
"...알겠습니다..."

머리에 뚝뚝 흐르는 찻물을 닦지 않은채로 바닥에 던져진 차기를 주워들고 하늘 도련님을 향해서 허리 숙여 인사한다.

"...저런 무능한걸 집사라고. 아침부터 재수없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혼잣말이지만, 조용한 방안이라 그 작은 소리도 잘 들렸다.

덜덜 떨리는 손발을 어떻게든 움직여서, 하늘 도련님 명령대로 그 입에 만족하는 차를 만들때까지 레인은 찻물 세레를 받게 되었다.

아주 뜨거운 상태의 차를 그대로 끼얹는 경우가...대부분에, 절대로 어떻다는 티를 내면 안되니까...퇴짜맞고 다시 차를 끓이러 가는 과정에서 하늘 도련님 몰래 많이 울었었지.

이 서러움에서 벗어나려면 잘하는 수밖엔 방법이 없다해서, 하늘 도련님만이 아니라 하늘 도련님의 양부모님께 나갈 다과 준비도 원래 담당인 메이드에게 사정해서 기술을 익혔었지.

지금은 주인 입장에서 어리숙한 집사가 어떤지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집사를 시작한 초창기 때 못한다는 이유로 받았던 수모는 시간이 지나도 잊을수가 없다.

차 끓이기를 어느정도 마스터 할 즈음엔 내가 하늘 도련님몰래 다른 먼 도시의 저택 집사로 면접을 봐서, 합격후엔 긴 장문의 편지만 남겨놓고 미련없이 떠났었지.

한동안 가명인 레인이 아닌, 본명인 남우현에서 딴 현이란 가명으로 집사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저택에 방문한 한성 도련님께 막무가내로 집사하라 끌려온게 벌써 2년전이고.

지금 보니까 꽤 파랑만장한...인생이잖아? 이름없는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그저 그런 인생을 살 예정이였는데...그걸 거부하고 바꿔보겠다 무작정 집을 나와서 집사를 했었지.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써줬던 나보단 좋은 집안의 도련님을 보고 질투한 적이 있었지만, 가질수 없는걸 탐내봤자 가질수 없다는걸...알고 있으니까...그런 감정도 애써 무시했었다.

지금 떠올려도 차 끓이기는 끔찍했다로 귀결되는, 내 인생 최악의 하늘 도련님은...솔직히 다신 만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잡힐까 조마조마 했던것도, 매일을 울면서 지냈던 그 기억도 모두 지울수만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다.

하늘 도련님께 바라는게 있다면, 부디 자신보다 뛰어난 차 끓이기에 능숙한 집사를 고용해서 자신과 같은 희생자를 만들지 않아주셨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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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이 없다는게 무슨말이야?"
오랜만의 승마 수업으로 땀에 흠뻑 젖은 김하늘이 시종에게 말했다. 잠깐 외출했다는건가...?

"그게 저...이걸 남기시고 자리에 없으셔..."
"! 줘봐, 뭐라 썼는지 확...하!?"

"꾸깃"
"...지금 당장 사람 풀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찾아내! 알았어!?"

"네 도련님"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면 몸이 떨린다고 하는데, 거짓이 아닌가 보다.

...레인 감히 네가 날...배신해?
처음에 차를 정말 더럽게 못끓여서, 승질난김에 개선될 때까지 주인으로서 아랫사람을 교육시킨건데...설마 그런걸로 도망간건 아니겠지? 그치, 레인?

"...이런식으로 도망가는건 내가 용납 못해. 난 우리 사이가 각별하다 생각했는데"
"쾅"

꽉 쥔 주먹으로 벽을 세게 쳤다. 나만의 착각이였다고...생각하게 만들지 말라고...레인.

"숨바꼭질할 생각이라면, 기꺼이 술래잡기에 동참해줄께. 잡히면...이번엔 아무데도 도망 못가게 묶어둘거지만"

이제껏 단순히 신경쓰여서 잘해준(?)거라 생각했던 레인이, 사라지니까 자신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를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젠 잘해주고 있었잖아...그런데 왜!"
"와장창"

장식장에 올려진 골동품들을 손으로 힘차게 쓸어버렸다. 분노가 차올라서 감당이 안된다.

"...반드시 찾아낼꺼야. 그 때까지 자유를 즐겨봐 레인 하하하"
실성한 사람처럼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하늘 도련님을 보고, 저택 안의 사용인들은 공포에 질렸다.

...이렇게 레인과 김하늘의 숨막히는(?)숨바꼭질은 정확히 2년 후에 김하늘의 방문으로 막을 내리는가 싶었는데, 놀랍게도 아직도 못만났다고 한다.

잡는 술래든 도망치는 레인이든...둘 다 잘 해결 될 수 있을까?가 앞으로의 묘미다. 둘은 지옥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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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지겨운 이벤트를 돌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삘 받은대로(?)쭉 써봤습니다. 지금 쓰는 시리즈가 아닌 본편을 선호하는 분께는 재미없는 글을 써서 죄송하다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ㅎㅎ: 부족한 글을 봐주신 분이 계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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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02 02:12 | 조회 : 1,204 목록
작가의 말
키스키

어쩌다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관의 캐릭 이야기를 쓰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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