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오즈왈드 바스커빌 생일 [네가 없는 기념일]

붉은 눈동자의 레이시- 그녀가 어비스의 심연에 먹혀버린 뒤, 몇 달이 흘렀다.

사람이 죽은 아픔은 쉽게 잊히는 게 아니다. 특히 제 혈육이 고인이 되었다면 더욱, 그리고 그 혈육 제 손으로 죽였다면 죄책감도 함께 밀려온다.

오즈왈드는 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입을 굳게 다물고 의연한 눈빛을 하고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따라 레이시가 그리워졌기에-.

마지막에 지어보였던 씁쓸하고 모든 걸 받아들인 듯한 웃음, 저를 닮은 날카로운 눈빛, 살아생전 ‘죄의 아이’라 불리며 멸시당한 원인인 의연한 붉은색 눈동자-.

그 모든 게 지금도 생생해서, 마음이 아프다. 지금이라도 그녀를 찾아가고 싶지만, 그는 당주인 ‘글렌’이 되어 있었다. 함부로 나서거나 하면 안 되는 몸이 되어버렸다.


“마스터!”


저 멀리에서 리본을 매달고 달려오는 고동색 머리카락의 아이가 오즈왈드를 불렀다.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상념에 잠긴 오즈왈드가 파득 고개를 들었다.

쪼르르 달려온 작은 아이는 오즈왈드에게 매달렸다. 아이의 이름은 길버트, 그처럼 죄의 아이에 해당되는 붉은 눈동자를 지닌 동생이 있는 차기 글렌이었다.

이 순수하고 해맑은 아이는 알까. 제가 했던 것처럼 길버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중한 동생을 어비스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걸- 아마 아직 모를 것이다.


“길, 같이 가…….”


길버트를 뒤따라온 오드아이의 아이가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입가에 매달았다. 아이의 이름은 빈센트, 길버트의 동생이었다. 이 둘이 위험에 처했을 때, 쟈크가 구해주었고 바스커빌 가로 데려왔지.


“마스터, 오늘 생신이라면서요?”


“……그렇구나.”


레이시, 네가 없는 이 세상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생일은 씁쓸하고 아프고, 또 고독하구나. 오즈왈드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걸 눈치 챈 두 형제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오즈왈드, 생일 축하해! 아니, 이젠 글렌이라 불러야 하려나?”


때마침 쟈크가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쟈크는 다짜고짜 고깔모자를 내밀었다. 아이 같은 웃음을 짓는 쟈크의 손에 있는 모자를, 오즈왈드가 머뭇거리며 받아들었다.


“이건…….”


“기억 안 나? 레이시와 내 생일을 축복했을 때 쓴 모자잖아!”


밝게 웃는 친우의 얼굴에서 슬픔이나 그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물’ 그 자체였다. 까슬까슬한 위화감이 있다. 그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쭉 느꼈던 위화감.


“자, 길버트도 빈센트도 하나씩 머리에 써.”


길버트와 빈센트는 고깔모자를 받아 스스럼없이 머리 위에 얹었다. 어딘가에서 탁자와 생일상을 차려온 쟈크로 인해 오즈왈드의 생일파티는 예기치 않게 진행되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행복하게 까르르거리며 생일파티 내내 웃음을 터뜨렸던 아이들은 나무 밑에서 숨을 고르며 자고 있었다. 오즈왈드와 쟈크는 저들의 외투를 벗어 아이들에게 덮어주었다.

오즈왈드는 큰 나무 밑에 앉아 서서히 나타나는 반딧불이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쟈크는 그 옆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레이시가 생각나는 저녁이다.

레이시, 너는 반딧불이가 만들어내는 빛보다 더 아름다운 황금색 눈을 보고 자란거지? 아아, 황금색을 볼 때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세계를 말해주던 네가 생각난다-.


“……이런 날이면 레이시가 떠올라. 예전에 레이시가 여기서 노래를 불렀었지?”


쟈크가 반딧불이를 건드렸다. 그 반딧불이는 한 바퀴 돌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여기에 레이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와 나는 레이시의 노래를 듣고 있었지.”


“오즈왈드.”


레이시가 부르던 그 곡조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맴돈다. 쟈크가 불현 듯 오즈왈드의 앞에 서 몸을 낮추고 하얀색 장갑 낀 손을 내밀었다.


“너도 레이시가 그리운 거지? 그러니까-”


쟈크가 오즈왈드의 손을 잡았다. 그가 말갛게 웃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처럼.


“-나와 함께 레이시를 찾으러 가자.”


그는 모르는 걸까? 레이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동시에 아무데도 없다는 걸, 이제 영영 사라져버렸다는 걸.

오즈왈드 또한 레이시가 그립다. 한 번이라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다. 레이시- 나의 사랑스러운 누이여, 널 다시 보고 싶다.


“……안 돼.”


그러나- 오즈왈드는 쟈크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눈동자가 올곧게 이룰 수 없는 소원을 가진 쟈크를 바라본다.

그립다, 레이시. 널 다시 보고 싶다. 만나고 싶어. 오라버니 된 자로서 널 그 외롭고 어두운 심연 속에 밀어 넣은 걸 사죄하고 싶다. 만나서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너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

그러나 그는 글렌. 바스커빌 가의 당주라는 무거운 책임을 맡게 된, 자유가 제한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자. 오즈왈드 또한 뼈저리게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레이시, 네가 그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있어. 미안하다, 레이시. 설령 네가 어비스에 있다 해도 더 이상 찾거나 그리워하지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누이여.

-미안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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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10 13:56 | 조회 : 1,031 목록
작가의 말
유렌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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