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길버트 나이트레이 생일 [나는 너의 시종] (2)

입구와 가장 가까이 있던 오즈가 에코를 발견하고 화색이 돌았다. 오즈는 에코에게 살며시 다가가더니 환하게 웃어보였다.

“에코 양, 그동안 잘 지냈-.”

“에코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무표정으로 정정하는 에코. 하하하, 그런가. 웃으며 넘어가는 오즈와 은근히 반가운 기색인 에코를 보며 길버트는. 언제 저 둘이 저렇게 친해진 거지, 하고 생각했다.

빈센트는 길버트에게 곧장 다가와 달라붙었다. 그의 한 손에는 디저트 가게의 상자가 들려 있었다. 보통 보아왔던 상자와는 달리 큼지막했다.

“형, 나의 하나뿐인 형! 하나뿐인 생일을 축하해!”

“아, 으응, 빈스. 고마워, 그런데‥….”

네가 오기 전까진 에이다 님과 잘 되어가고 있었거든. 뒷말을 삼킨 길버트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어 보였다. 차마 울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지는 못한 채.

“응? 빈센트 님?”

에이다가 익숙하게 빈센트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을 모두 다 가진 듯 길버트의 생일에 환희하던 빈센트는 에이다의 목소리에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빈센트 님, 맞으시죠?”

“아아, 에, 에이드‥… 아니, 에이다 님. 오랜만에 뵙네요.”

빈센트가 재빠르게 길버트에게서 떨어졌다. 그의 얼굴에는 쉽사리 보기 힘든 공포가 묻어나 있었다. 난감한 기색. 그러나 둔한 길버트와 에이다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길버트는 어어, 뭐지, 하는 심정으로 헷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둘이 아는 사이였던가? 길버트가 입술 끝에 손가락을 대고 고민에 빠졌다.

식탁 끝에서는 오즈, 앨리스, 브레이크, 그리고 샤론이 에코를 미소 짓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에코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은 설거지 면제라는 조건을 내걸고.

에코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다시 길버트와 에이다와 빈센트에게로 넘어간다. 에이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길버트의 표정을 용케 알아차리고 빈센트의 옆으로 딱 붙었다.

“길버트, 몰랐어? 그, 빈센트 님과 나랑 요즘 만나는‥….”

“그, 그만하세요! 에이다 님, 우리 함께 케이크를 개봉해볼까요? 하하‥….”

“‥…그렇지만 빈센트 님, 언젠가는 알려야 할 일인데요‥….”

“아뇨, 아뇨. 오늘은 형- 길의 생일이니까 나중으로 미뤄두죠.”

“그치만-.”

“하하, 에이다 님. 우리 저쪽으로 갈까요? 형, 잠시만.”

형이 눈치가 없어서 다행이다, 빈센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다의 시선을 끌려면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써야겠지‥…. 빈센트는 영혼 나간 초췌한 얼굴로 에이다에게 미소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오컬트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에이다가 눈에 띄게 반색했다. 그에 반해 빈센트는 영혼 없는 시체처럼 축 늘어져서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에이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오컬트라는 이름의 감옥 안에 한동안 갇혀 있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저쪽에선.

훗-, 하고.

“어어- 에코 양, 방금 웃은 거 맞지?”

“웃은 것 같은데.”

“꺄아악, 브레이크, 어떡해요? 양녀를 두 명 들여야 하려나요? 그렇지만 에코 양은 빈센트 님의 시종인데‥….”

“아가씨, 진정하세요. 아무튼 무언가 비틀린 웃음 같지만 웃은 건 맞네요?”

에코가, 그 무표정의 에코가, 웃지 않는 석상의 대표 예인 에코가, 웃었다고? 내가 잘못 들었나? 길버트는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주목받는 에코가.
분명 웃고 있었다.

“‥….”

물론 어딘지 수상한 웃음이었지만.

파티의 준비가 끝나고 길버트의 머리 위로 고깔모자가 씌워졌다. 길버트는 가운데에 앉아 두 케이크들을 앞에 두고 촛불이 켜지는 장면을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랬다. 길버트 앞에는 케이크가 두 개였다. 하나는 오즈 일행 다섯 명이 힘을 합쳐서 비밀리에 만든 케이크였고, 다른 하나는 빈센트가 디저트 가게를 빌려 에코와 함께 만든 케이크였다.

여러 개 꽂힌 촛불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길버트는 흔들리는 촛불들을 눈으로 좇았다. 노랗고 빨간 촛불. 마치 어디서 본 것 같은-.

길버트의 주위에 앉은 모든 이들을 향해 오즈가 신호를 준다. 자, 외치는 거야. 하나, 둘, 셋, 하면-.

“생일 축하해, 길버트!”

길버트, 생일 축하한다고, 그렇게. 길버트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환히 너울거리는 불빛들을 앞에 두고 앨리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촛불을 불어라, 미역머리.”

앨리스의 언사에도 딴죽 걸 생각 않고 길버트는 촛불을 불었다. 후, 하고. 심지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길버트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역시 찌질이네요, 길버트는.”

“아, 아니거든!”

“길은 찌질이~”

“이젠 오즈까지…‥.”

그러나 쏟아져 나오는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감동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놀리는데도 길버트는 꿋꿋하게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오즈의 시종이라서- 행복했다. 오즈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터였다. 친해진 모든 이들과의 인연도-어쩌면 없었을 터였다.

“…‥오즈.”

“길, 아직도 우는 거야?”

“오즈, 나는 네 시종이라서- 정말 좋아…‥.”

“기, 길. 갑자기 왜 그래…‥.”

“네 시종인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

길버트는 소매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이게 그렇게 감동한 일인가. 오즈는 당황해 쭈뼛거렸다. 옆에 있던 빈센트가 울고 있는 길버트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도 형의 동생인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

빈센트가 길버트의 대사를 따라했다. 모두의 김빠지는 웃음소리가 났다. 빈센트는 정말로 제 자신이 자랑스러운지 어깨를 활짝 폈다. 길버트도 뒤이어 웃었다.

“그럼, 길.”

오즈가 길버트를 마주보았다. 길버트의 머릿속에서 언젠가 오즈, 에이다와 함께 했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생일 축하해.”

그건 황금빛이 넘실거리던 어느 오후의 추억. 누군가에게는 ‘생일 축하해’ 라는 그 인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말이 될 수 있었다.

길버트가 옅게 미소 지었다. 네 시종이라 자랑스러워, 오즈.


이건 후일담. 케이크를 먹는 도중에 벌어진 이야기. 아주 짧지만 명쾌한 이야기.

판도라의 업무로 바빴던 오스카와 레임이 조금 늦게 방문했다. 오스카의 한 손에는 술이 들려 있었고 레임은 그를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본다.

“생일에 술이라, 그것도 나쁘진 않네요.”

길버트의 속마음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브레이크는 기쁘게 웃으며 벌써 술잔을 꺼내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브레이크는 함께 있던 모두가 멍멍이가 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술이, 새, 생각보다, 강하네에~?”

“그러게요오, 오스카 니이이임-?”

“레인즈워스 가의 양녀가 되어라! 앨리스, 그리고 에코! 내 명을 따라라아!”

“저기, 샤로온, 나 너무 더워어…‥.”

“앨리스 니임, 옷을 함부로 벗으시면 안됩니다아…‥. 에코는 얌전히 있겠어요오…‥.”

“빈센트 니임, 다, 다음에, 딸꾹, 오컬트에 관한 얘기이르을-.”

“형, 나의 사랑하는 하나뿐인 형! 어디가아!”

“술을 마시니까 이상하네에…‥? 빙빙 돈다아…‥.”

브레이크는 난간에 기대어 모든 이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거 참,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명장면이네요? 하긴, 술이 그만큼 세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브레이크는 제 발 근처를 내려다보았다. 길버트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중이었다.

“마스터어! 나는 이 몸인가? 나인가아? 어떤 거였더라아‥…?”

헷갈려 하는 길버트. 브레이크는 술잔을 한 손으로 들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럽네요-? 브레이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즈만 찾는 익숙한 길버트.

길버트와 눈높이를 맞춘 브레이크가 살며시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요, 길버트.”

“어어, 넌 뿌레이크으-! 오즈 님은 어디 간 거냐아!”

길버트가 그러거나 말거나, 술잔을 내려놓은 브레이크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년에도 더욱 열심히 일하는 레이븐이 되길 바라요.”

진짜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이러면 오즈가 싫어해요, 라고.

“뿌레이크으!! 온제나 날 부려먹는 악덕 상사아…‥.”

…‥달빛이 참 밝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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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9 23:43 | 조회 : 1,191 목록
작가의 말
유렌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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