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길버트 나이트레이 생일 [나는 너의 시종] (1)

길버트는 아침 일찍부터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잠도 다 깨지 않은 채로 밀가루반죽을 하는데도 손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잠에서 깨자마자 요리를 한 적은 거의 없어 낯설 법 한데도 그의 입은 헤실헤실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가 아침 일찍부터 요리를 하게 된 건 오로지 오즈의 부탁에 의해서였다. 오즈는 난데없이 길버트를 꼭두새벽부터 깨웠으며 그 덕분에 길버트는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요리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해도 밝지 않았는데 길버트더러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오라고 하진 않았다. 오즈가 미리 사놓은 모양이었다. 분명 어제는 없었던 밀가루가 생겨난 신비에 길버트도 고개를 갸웃했지만 굳이 의문을 표하진 않았다.
물론 평소와 같았다면 오즈를 붙잡고 캐물었겠지만, 그는 지금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오즈가 햇살과도 같이 밝게 웃으며 제 부탁을 들어준다는 길버트에게 한 마디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내 부탁을 들어주는 거야? 고마워, 길. 너는 훌륭한 시종이야!”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오즈가 남긴 메시지를 떠올린 길버트의 입매가 찢어질 듯 벌어졌다. ‘훌륭한 시종이야!’ 라니. 오즈의 시종인 길버트에게는 최고의 칭찬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고로, 길버트는 밀가루를 반죽하며 홀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일출을 바라보며 아침에 만드는 요리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시계가 똑딱거렸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길버트는 일순 드는 생각에 밀가루를 묻힌 손을 멈추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 아무도 곁에 없는 거지? 평소에는 오즈도, 바보토끼도, 브레이크도, 샤론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수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즈가 자신보다 일찍 일어났다는 점과 오즈의 곁에 앨리스마저 없었다거나, 깨어나 보니 식재료가 미리 준비되어 있다든지.
눈치 없는 길버트 나이트레이는 일정시간이 흐른 뒤에야 의심을 시작했다.
…‥어쩐지 갑자기 쓸쓸해졌다. 어울렸던 이들이 저들끼리만 가버리니 소외감이 들었다. 오즈와 브레이크의 합세 하에 만들어진 찌질이라는 별명을 소유한 길버트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유독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게 설령 동생인 빈센트라 할지라도. 고독해진 길버트는 밀가루 반죽을 멈추고 옆에 놓인 자신의 검은 모자에 시선을 두었다.
언젠가 저에게 검은 모자를 내밀며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에이다 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귀엽게 꾸짖던 모습도. 에이다 님이 곁에 있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버트는 밀가루 반죽이 눅눅해지는데도 아랑곳 않고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직 오즈와 에이다의 모습만이 떠돌아다녔다.
10년 전이었나, 어린 오즈, 어린 에이다 님과 함께 술래잡기를 하던 어린 나. 계속 잡혀서 울었던 적이 있었지. 숨바꼭질을 했을 때는 모두들 감쪽같이 숨어버리는 바람에 눈물을 바가지로 흘렸었…는데‥….

“‥…길.”

“흠냐, 오즈‥… 에이다 님‥….”

어느새 잠들어버린 길버트의 머릿속에는 오즈와 에이다에 대한 망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음, 길버트 님♡”

그 행복한 망상 사이로 브레이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길버트의 머릿속이 이번에는 브레이크로 가득 찼다. 여기도 브레이크, 저기도 브레이크, 어딜 봐도 브레이크‥….
레임 씨에게 브레이크의 행동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던 그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엄청난 각오를 다지고 있던 그에게 브레이크가 ‘길버트 님‥…♡’ 이라고 했었지.
굉장히 소름 돋았던 날. 사실 그것이 적절한 태도인데도 불구하고 브레이크가 그렇게 하면 굉장히 소름 돋는다. 그날의 일을 되살리듯 제 머릿속에서 브레이크는 활짝 미소 짓는다.
그리고-

“길버트 님?”

“끄아아아아아아악!!”

길버트가 비명과 함께 고개를 확 젖혔다. 브레이크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사탕봉지를 한 손에 들고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오즈에게 다가가 툭 쳤다.

“거봐요, 길버트는 이렇게 해야 깬다니까요?”

“길은 내가 부를 땐 일어나질 않네. 브레이크, 어떻게 한 거야?”

“후후, 그건 말이죠‥….”

“브레이크, 그만 해요.”

샤론이 브레이크의 말을 막았다. 길버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제가 졸았던 걸까? 손에는 부드러운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미역머리! 내가 오늘 특별히 네 생일을 축하해주지. 그런 의미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라!”

조용히 있던 앨리스가 튀어나와 의자에 한 발을 올리고 위풍당당하게 외쳤다.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앨리스는 쓰다듬어달라는 뜻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길버트는 앨리스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혼란스러웠다. 뭐지, 오늘 내가‥….
‥…생일이었나?
정신이 없었다. 요즘 날짜 개념을 어디에다 두고 살았다지만 설마 제 생일마저 잊어버렸을 줄이야. 길버트가 어수선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에이다가 입구에서부터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길버트, 생일 축하해‥…!”

“어‥… 에이다, 님‥….”

에이다는 머리에 달린 리본을 나부끼며 길버트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길버트는 얼굴이 빨개지며 뇌의 사고력이 정지되었다. 에이다의 한 손에는 상자가 들려 있었다.
딱 봐도 선물 상자였다. 길버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열어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분명 제게 줄 선물이겠지? 에이다가 식탁 위에 들고 있던 선물상자를 내려놓았다.

“이건 길버트를 위해 우리 모두가 준비한 선물이야. 부,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에이다 님, 저를 위해 이렇게 애써주셨다니. 가, 감사합니다-.”
마치 에이다만이 저를 위해 준비한 것처럼 감사를 표하는 길버트에, 브레이크의 얼굴이 조금 딱딱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 사이에는 분홍색 기류가 흘렀다.
분홍빛 기운을 풍기는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브레이크가 아니었다. 그는 길버트의 어깨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길버트, 그건 에이다 님을 포함한 모두가 준비한 선물이라구요-?”

“맞아, 맞아!”

브레이크의 어깨 위에서 얌전히 있던 에밀리가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쳤다. 길버트는 핫, 하고 잠시 몸을 뒤로 뺐다가, 쑥스러운지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제 생일을 챙겨주셔서 감사‥….”

“형,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드립니다, 길버트 님.”

쾅,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빈센트가 길버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뒤따라오는 에코가 축하의 말과 함께 들고 있던 폭죽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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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9 23:38 | 조회 : 1,231 목록
작가의 말
유렌54

조금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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