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 -그 공작영애의 사정


나는 그저 세상이 지루한 꼬마였다.

“세상에! 또 시험에서 만점을 맞으셨군요!”

“이번에는 근위대의 단장님을 검으로 꺾으셨다죠?”

“어머 역시 비센테의 핏줄이네요..”

날 향한 경외와 찬사는 귀 끝을 간질이지도 못했다.
그저 시키는대로 하라는대로 살아왔다. 아버지나 오라버니가 갖고싶은거 하고싶은것을 물어와도 그저 괜찮다며 웃을 뿐이었다.
내 삶은 무채색의 파노라마였다.

11살, 엘을 만난 겨울까지는.

그날은 유독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그날도 난 변함없이 드래곤 산맥에 인접해있는 공작성의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이만 검을 거두고 들어가려던 난 어디선가 느껴지는 이질적인 마력에 홀린듯 이끌려 산으로 들어갔다.

그날, 설산에서 나는 엘을 만났다.

깊은 바다처럼 푸른 두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내 삶이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어가는 듯했다.
자리에서 주저앉아 엉엉 운 나는 멋도모르는 상태에서 엘과 동화를 시도했다.
넘실거리며 흘러들어오는 엘의 마력을 느끼며 이 아이와 평생을 함께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난 남들은 10년도 더 걸린다는 동화를 30초만에 해치우고 기쁜듯 내 뺨에 얼굴을 부비는 녀석에게 엘이라는 이름을 붙혀줬다.

고대어로 ‘나의 빛’이라는 뜻이었다.

수련한다며 나간 내가 왠 드래곤과 함께 울면서 돌아오니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가족들에게 엘을 소개시켜주었다. 아버지는 얼떨떨해 하시면서도 축하해주었고 상냥한 오라버니는 자신의 일 처럼 기뻐해주었다.
이후 3년간 난 거의 생사를 넘나들어야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때의 엘은 왕위를 계승한지 얼마 안되었을때라 능력사용이 미숙했고, 그 탓에 난 엘과함께 드래곤들의 눈을통해 밀려들어오는 온 대륙의 정보와 마력이 바닥을 치도록 풀리지 않는 동화때문에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고 했다.

“시르카시어스 베디아 로엘 비센테를 황실 직속 용기사 특무단의 단장으로 임명하고 북부마물토벌단의 총사령관으로서 헤일론 파병을 명한다.”

겨우 능력을 안정시켰더니 돌아오는건 전장으로 날 몰아내려는 황제의 명이었다.
한편으로는 훌륭한 처세였다.
드래곤들의 왕을 휘하에 둔 수하는 내가 생각해도 위협적이었다. 그 수하가 아무리 충성스럽다해도.
나는 나를 두렵다는듯 보는 황제를 뒤로하고 헤일론으로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않을 생각이었다. 평생 이곳에 머물며 북부를 지킬생각이었다.

루엘디움을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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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6-01 16:47 | 조회 : 1,030 목록
작가의 말
킴샤키

짧은 외전입니다! 다음은 본편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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