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전투는 치열했다.
그간의 훈련이 빛을 발하듯 기사들은 무리 지어 마물을 썰었고, 병사들은 기사들의 뒤에서 엄호하거나 기사들이 마무리하지 못한 마물에 검을 찔러넣었다.

“거기! 이리 와!”

마물을 잡던 디엔이 다급하게 시아의 공격 범위 안에 들어간 기사를 꺼내왔다.
푸확
기사가 머물렀던 방향에서 오던 마물이 땅에서 솟아난 얼음 가시에 꿰뚫려 죽었다.

“....”

시아는 최상급 마물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날뛰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엘이 쉬지 않고 불을 뿜고 있었다.
시아의 근처에 다가간 마물은 시아가 휘두른 검에 맞아 죽었고 도망가는 마물은 땅에서 솟아난 얼음 창에 찔려 죽고 멀리서 공격하는 마물은 시아가 날린 창에 맞아 죽었다.

“....”

시아의 주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마물의 시체가 쌓여있었고 심지어 시아는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하면…. 마법을 동시에 36개나 펼칠 수 있습니까..? 저분이 사람입니까?”

“이해를 포기하십쇼. 포기하면 편합니다.”

마법 36개를 동시에 펼친다는 건 36개의 사고를 동시에 한다는 것...
평범한 마법사들은 많아봤자 3개가 한계인 사실을 떠올린 디엔은 아연한 기사의 어깨를 두어번 두들기고 뒤돌아 전장으로 돌아갔다.
‘사실 성인이 되지도 않은 여자애인 걸 알면 기절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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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루엘디움이 위치한 초소도 비상이었다.

“저하! 여기 이분께도 부탁드립니다!”

“저하!! 이분이 더 급해요!”

치유의 힘을 가진 루미너스종의 마스터인 루엘디움도 치유의 힘을 쓸 수 있었고 그 탓인지 그는 전투가 시작된 이래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중상자들을 치료했다.

“저하 여깁니다!”

“여기가 더 급합니다 저하!”

‘후우…. 제 몸은 하나란 말입니다...’
루엘디움이 하얗게 빛나는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제 파트너의 괴로움을 읽은 것인지 비상시를 대비해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나디엘이 루엘디움에게 다가와 콧등으로 툭툭 쳤다.

“위로해주는 건가요 나디엘...”

[크릉]

마치 제게 맡기라는 듯한 표정으로 크릉거린 나디엘이 치료소를 향해 브레스를 머금었다.
나디엘의 종을 정확히 모르는 치료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콰아아아아
나디엘의 백색 브레스가 치료소를 한차례 휩쓸었다.

“어…? 상처가..?”

의아해하는 치료사들에게 지친표정의 루엘디움이 웃어 보였다.

“나디엘의 브레스에는 치유능력이 있습니다. 비상시를 대비해 아껴두었는데 이렇게 썼네요.”

[크릉]

보란 듯이 고개를 치켜세운 나디엘이 다시 전방을 주시하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던 사람들도 다시금 밀려오는 부상자를 치료하러 바쁘게 뛰었다.
루엘디움은 바쁜 와중에도 저 앞에서 번쩍거리는 엘의 불꽃과 섬뜩하게 빛나는 시아의 얼음 가시들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

“괜찮은 거겠죠 시아..?”

그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그를 보좌하던 3황자가 루엘디움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까 그…. 음…. 그 얼음덩어리 못 보셨습니까? 저는 기절할뻔했는데요.”

“봤지…. 봤는데 그래도 걱정돼서...”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지금 실려 오는 부상자 중 절반이 특무단 단장이 날린 눈먼 마법에 잘못 맞아서 실려 온 겁니다 만.”

“그래도 걱정되는걸...”

손으로는 착실하게 환자를 보살피면서도 눈은 시아가 있는 방향에 고정되어있는 루엘디움을 보는 3황자의 표정이 떨떠름 해졌다.
‘차기 황제가 남자를 좋아하니 후계는 방계 쪽에서 찾아봐야겠군.’
나름의 결론을 내린 3황자는 작전회의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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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쏘아 올리는 시아의 이마에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발을 구르자 일제히 주변 땅에서 얼음기둥이 솟아나며 마물들을 으깨버렸다.
‘이렇게 해도 또 몰려오겠지.’
잠시 생긴 틈을 타 시아가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맴돌며 불을 뿜는 엘에게 소리쳤다.

“엘! 그 드래곤은 찾았니?”

[크르르 큥큐응]

“아직 못 찾았구나.”

다시금 지평선 너머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마물을 바라보는 시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무리 보이는 대로 족치고 있다만, 그녀가 놓친 마물들의 양도 꽤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특무단과 황실 기사들이 먼저 지칠 게 분명했다.
하아아
한숨을 내쉰 시아가 공중을 배회하는 엘을 불러들였다.

“엘... 이젠 어쩔 수가 없다. 힘들어도 그 마법을 써야 할 때가 와버렸어.”

[큐웅]

후우우
엘의 머리에 이마를 갔다 댄 시아가 크게 심호흡하며 동화를 최대로 끌어냈다.
푸른 불꽃이 튀는 듯한 눈이 감기고 시아가 천천히 마력을 풀어내었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불안한 느낌을 느꼈는지 마물들이 으르렁거리며 주춤거렸고 병사들과 기사들도 공기의 흐름이 달라짐을 느꼈다.
오로지 특무단만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부, 부단장…. 이거 그 기술 아닙니까..? 저희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단 냉기저항 마법 있으면 준비하고 기다리도록. ”

디엔은 말없이 시아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지금 펼치려는 마법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한숨만 내쉬었다.

“엘…. 도와줘.”

[큐우우...]

마력을 최대한으로 풀어내 퍼뜨린 시아의 눈에서 푸른 빛이 튀며 일그러졌다.

[앱솔루트 필드 영역 선포]

사하아아
사방으로 퍼진 마력이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개체 지정 아이스 포레스트 전개]

콰득 콰가가가가가각
눈을 질끈 감으며 외치자 땅에서부터 얼음 나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마물만을 휘감으며 자라는 나무들은 지평선 끝까지 숲을 이루었다.
꾸드드득
마물을 뭉개면서 자라난 얼음의 나무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전보다 더 커졌네요. 나무가...”

이미 3년 전 이 기술을 겪어본 적 있는 특무단조차 바보처럼 감탄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모든 마물들이 나무에 삼켜지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흐읍…. 하아...”

쿨럭
엘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서 있던 시아가 피를 토했다. 토해낸 피조차도 얼어있을 만큼 현재 시아는 얼음 그 자체였다.

“흐으으…. 춥다 추워. 그래도 눈에 보이는 마물은 다 없어졌지?”

[큥!]

“이걸로 시간을 벌었을 테니 드래곤을 찾으러 가자.”

덜덜 떠는 몸을 이끌고 엘의 위에 올라탄 시아가 하늘로 떠올랐다. 오후의 햇살이 끝도 없이 펼쳐진 얼음의 숲 위로 부서져 내렸다.
그 광경이 퍽 아름답다고 생각한 시아가 출발하려는 그때,

“시, 시아아아아-!!”

저 멀리서 나디엘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디엘의 위에는.

“루엘...?”

“시, 시아아 괜찮나요!!?”

루엘디움이 한 손에는 붕대를 들고 울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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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28 16:35 | 조회 : 966 목록
작가의 말
킴샤키

썸네일을 바꿀때가 되었네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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