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2-2

"따라오지마."

"무슨 소리야? 나는 너 따라간 적 없어. 나도 여기로 오려고 했었던 것 뿐인데 과민반응하지마."


한쪽 입꼬리를 여유롭게 올린 에반의 얼굴에 가지고 있는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루카스였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한 폭력적인 생각을 행동으로까지 옮길만큼 대담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에게 더이상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한 루카스는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고 빠른 걸음으로 건물 밖으로 나섰지만 에반은 걸음을 맞춰 다시금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들을 몇 번이고 눈 감아줄 만큼 인내심이 깊지 않은 루카스는 결국 다시금 뒤를 돌아 자신을 짜증나게만든 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답잖은 장난하지마. 한 번만 더 이런 짓하면 고소할거야."

"고소? 좋지. 그런데 너랑 나랑 싸우면 더 불리한 쪽이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지?"


호를 그린 입가와는 달리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에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린 루카스는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인지했지만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원망했다.

무서울 정도로 또렷한 시선으로 눈 앞의 인물을 바라보던 에반의 눈이 곧 초승달처럼 휘며 아직도 얼이 빠진 루카스를 순식간에 으슥한 벽으로 몰아붙였다.

갑작스럽게 밀착된 몸의 거리가 낯설어 빠져나가기 위해 급히 몸을 돌렸지만 에반의 손이 벽을 짚는 바람에 루카스는 빠져나가지 못한 채로 정착했다.


"뭐하는 거야."

"친구끼리 가볍게 장난치는 거야.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며 에반은 한 쪽 손을 올려 루카스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낯선 손길에 몸을 부르르 떠는 루카스는 미간을 찌푸리고 재빨리 그 손을 치워냈지만 아직도 그와 벽 사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였다.

무슨 목적이 있어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재빨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그가 보이는 행동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고개만 갸우뚱하던 루카스는 더이상 이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한 쪽 손으로 벽에 걸쳐진 에반의 손을 밀어냈다.

손은 한 번 떼어졌지만 곧 다시 한 번의 마찰음과 함께 다시 벽에 붙었다. 그 모습에 황당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던 루카스는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가만히 시선을 올려 자신의 앞에 있는 불청객과 눈을 맞췄다.

방금까지 눈을 휘고 웃고 있던 그는 이제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 있었고, 곧 짧은 숨을 토해냄과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루카스는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곧 무언가에 의해 턱이 잡혀 맥없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고, 시선의 끝에는 코 앞까지 다가온 에반의 얼굴이 있었다.


"읍...!"


뭉툭하고 말랑한 촉감이 낯설었다. 고개를 돌려보려 해도 강한 힘이 얼굴을 잡고 있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루카스는 가만히 내려두었던 양 팔을 앞으로 뻗어 에반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무거운 바위같은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놔...읍!"


겹쳐졌던 입술이 조금 떨어져, 무언가 말하려던 루카스의 입을 막은 에반은 조그맣게 벌어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진한 키스를 나눴다.

나란히 이어진 이 사이를 휩쓰는 부드러운 촉감의 무언가가 입을 한가득 채우며 희롱하자, 루카스의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

두려움에 잔뜩 굳어진 전신 중에서도 아랫배가 가장 단단하게 뭉친것 같은 기분이었다.

부드럽게 혀를 감싸다가 또 가차없이 혼자 움직이는 에반의 혀가 입안에 가득해 루카스는 더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공포에 떨었다.

처음 겪는 자극적인 그 행위가 '키스'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질척하게 움직이던 에반의 혀가 사라지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에반은 입술을 떼고 조금 거리를 벌려 루카스의 모습을 살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풀려버린 다리와 눈물로 젖은 눈동자가 사랑스럽게 비춰졌다.

너무 놀란 탓일까, 루카스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만히 벽에 기댄 채로 서있었다.

에반이 엄지 손가락을 뻗어 입가에 묻은 타액의 흔적을 닦아준 후에야 정신이 들었는지 팔 소매로 계속해서 입술을 닦아내는 루카스의 눈빛에 공포와 경멸의 감정이 섞였다.

원망스러운 눈빛을 받아내면서도 에반은 전혀 망설이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것만 같아 보였기 때문에 루카스는 억울한 마음에 결국 눈물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를 더 강하게 밀어내지 못했던 것과, 영문도 모른 채 기분나쁜 일을 당하게 된 것을 떠올리며 눈믈을 흘리는 그는 이미 에반에게 무언가 이의를 제기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에반이 사라지는 것밖에 없었다.


"루카스, 난 네가 정말 마음에 들어. 네 머릿속에서 절대 나를 지워버릴 수 없게 더 깊이 원망해줘."

"미친놈."


정신없이 입술을 문지르던 팔을 내려놓고 그는 서둘러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상식이 통하지 않을만한 사람이라는 깨달았기 때문에 그와 이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알기에 선택한 행동이었다.

다행히도 에반은 더이상 따라오지 않았지만 기분 나쁘게 울리는 낮은 웃음소리는 루카스의 귓전에 따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붉어진 눈가를 매만지며 어디론가 향하는 루카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비참했고, 자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심란해져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런 일을 하도록 이끈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루카스도 알고 있었다. 에반이 그런 일을 한 것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다는 것을...



에반은 방금까지 루카스가 서 있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로 자리를 지켰다.

역겨울 줄 알았던 동성간의 키스는 신기하게도 기분 좋았고, 특히나 키스 이후에 보았던 루카스의 표정은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눈물은 흘렸지만 결코 꺾이지 않은 루카스의 눈동자가 생각이 난 에반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기쁨에 찬 마음을 진정시켰다.

루카스의 입술을 어루만졌던 엄지 손가락에 남은 타액은 공기에 닿아 어느새 말라붙어 있었고, 에반은 고민없이 그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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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29 23:53 | 조회 : 1,057 목록
작가의 말
거짓말너구리

에반은 가학적인 면모가 있어요ㅠ 제임스가 잘 버텨내야겠죠ㅠ 같이 따라와주시는 독자님들께 언제나 감사드리고 오늘밤도 다들 굿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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