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2-1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밝은 창가 곁에 벌써 몇 십분 째 서 있는 남자는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의 행열에 관심이 있는 듯 보였으나 그는 곧 나른한 하품과 함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는 자신의 변하지 않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예기치 못한 방문 뿐이었다.


'똑똑똑'


규칙적인 노크음에 귀가 트인 남자의 시선이 닫혀 있는 문을 향했다.

처음에는 기쁜 듯 화색이 돌았던 얼굴에 순식간에 못마땅한 기색이 비친 것은 다시 한 번 규칙적인 노크음이 들린 것 때문이었다.


"들어와."


검은색 안경을 쓴 외소한 체격의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와 자신을 지나쳐 칠판과 가장 가까운 앞 자리에 앉자 못마땅한 얼굴이었던 남자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너, 왜 노크하고 들어와. 너는 노크하지 말라니까."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 거리는 남자를 보고도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한 번 눈길만 주고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 외소한 체격의 남자는 곧 말없이 들고 온 책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루카스. 루카스 엘리엇."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놀란 듯 고개를 돌린 루카스는 곧 자신을 바라보는 두 개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그 시선을 피해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곧 낮은 웃음소리가 조용한 공간 안을 채웠고, 바깥의 공기와는 다른 분위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있던 남성이 일어나 가만히 앉아있는 루카스의 뒤편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곧 그의 곁에 의자를 빼 앉았다.


"에반 크리스토퍼. 내 이름이야."

"알고 있어."

"알고 있었다니, 의외인데. 그런데 왜 내 이름은 한 번도 안 불러준거야?"

"너랑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올곧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에반은 잠시 머리가 멍해져 입을 다물었다.

너무도 솔직한 한 마디에 헛웃음을 짓는 그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빛나는 눈동자로 밝게 웃음지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걸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아서."

"하하. 범생이 치고는 재밌는 녀석이잖아."


에반은 진심으로 기쁜 듯 조금 더 크게 소리내어 웃었지만 정작 그 웃음을 짓게 한 루카스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책으로 시선을 옮겼을 뿐이다.

감정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은 마치 그가 타고난 특징인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는 주위에 친구를 두지 않았고, 학교 안에서 소리내어 웃은 적도 없이 그저 공기처럼 지내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듯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런 혼자만의 시간에 불쑥 비집고 들어오려 번번히 말을 걸어오는 에반이 루카스의 시선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저리가. 너랑 있으면 시끄러운 일들 투성이야."

"뭐야, 왜 그렇게 거리를 둬. 어차피 너나 나나 외톨이인 건 똑같잖아? 외톨이들끼리 잘해보자고."


조금 더 가까이 거리를 좁혀오는 에반과 반대로 루카스는 그가 다가온만큼 옆으로 몸을 빼 다시 거리를 벌렸다.

빈틈없는 모습을 유지하는 그가 얄미우면서도 더욱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는 에반은 다시금 몸을 더 밀착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 거리가 멀어져 결국 다시 처음의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의 실랑이를 거친 뒤에는 수업이 시작되었고, 언제나 변함없이 가장 끝자리에서 수업을 듣던 에반은 루카스의 곁에 앉기 위해 오늘만큼은 가장 앞자리에서 수업을 들었다.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그의 모습에 같은 반 학생들은 물론이고 매주 그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오늘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에반은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교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 있었고, 그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인 룰처럼 널리 퍼져있었다.

그만큼 그는 누군가에게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타인에게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런 자유를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최근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사자인 루카스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오늘 에반이 수업 시간에 보인 행동으로 인해 루카스는 모두에게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에반은 수업이 시작한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칠판을 응시하는 루카스의 옆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들고 왔던 책을 다시 들고 교실 안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물론 그런 그의 뒤에는 어느새 따라온 에반이 함께였고, 복도에 배치된 사물함에 물건을 넣고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따라오는 에반이 마음에 들지않는 루카스는 결국 못마땅한 얼굴로 뒤를 돌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따라오지마."

2
이번 화 신고 2019-04-29 01:10 | 조회 : 1,401 목록
작가의 말
거짓말너구리

에구ㅠ 정말 오랜만이죠ㅠ 드디어 시험이 끝났어요ㅠ 그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ㅠ 만나서반가워님 댓글 언제나 감사드립니다ㅠ 하트주시고 읽어주신 독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