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Y 7-1

"자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인물이 숨겨놓은 내 아들 에반 크리스토퍼일세."


에반 크리스토퍼. 강하고도 잔혹하게 들리는 이름이 뇌리에 박혀 떠날 줄을 몰랐다.

제임스는 그 이름을 들음과 동시에 경련하듯 몸을 떨었고, 양손으로 몸을 감아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틈림없는 공포였다.


"그래, 그 일로 인해 자네가 심한 일을 겪었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서 에반을 해외로 보냈고, 그 뒤로는 자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야."


태연하게 말을 잇는 리처드는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한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고, 그런 태도에 제임스는 더욱 분노했다.


"내 인생을 다시 돌려달라고는 말하지 않겠어. 하지만 조금의 죄책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내 앞에서 다시는 그 이름을 꺼내지 마."

"실례했군. 주의하겠네."


입술이 덜덜 떨려 힘주어 아랫입술을 깨물었지만 두려움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고, 제임스는 더이상의 말은 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카일의 일이라면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될걸세. 빅토리아와는 원래 그렇게 될 걸 알고 있었고, 로버트도 잠깐 화가 나긴 했겠지만 오늘 이후로 그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없을게야."

"그럼 이제 할 말은 없어."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부들거리는 다리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제임스는 망설이지 않고 문앞으로 향했다.

헛구역질이 나 급하게 문을 열자 상쾌한 바람이 온 몸을 쓸고 지나갔다.


"참 기구한 운명이군. 내 아들에 의해 상처입고 또 다른 내 아들과 사랑을 하다니..."


등 뒤로 들려오는 소리를 애써 무시한 제임스는 밝은 불빛을 따라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파티 회장은 몇 가지의 소동으로 인해 조금 떠들썩했지만 파티를 중지할 정도의 소동은 아니었는지 사람들은 다시금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간혹 들리는 카일의 이름을 들으며 심호읍을 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하려해도 새차게 뛰어대는 심장의 박동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복잡하게 어지러진 뇌내 생각들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임스는 지금 눈 앞에 카일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셍각했다. 그를 보면 왜 우리가 운명적으로 만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묻고 따지며 원망할 것이 틀림없었으니...

카일이 에반의 형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좋았을까, 그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까, 처음부터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억누르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제임스는 질문에 답하기를 거듭하며 더욱 더 또렷하게 몇 가지 해답들에 도달했다.


'카일과 헤어지자.'


연인도 아니고 아직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끊어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헤어짐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니 카일의 집에서 나가면 이 지긋지긋한 연을 끊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 제임스는 그와 거리를 둘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제임스!"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무리속에서 카일이 달려오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떻게 찾아온 건지 곧장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를 본 제임스는 순간 코끝이 시큰거려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카일과의 인연을 끊어낼 수 있을까. 저렇게도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의 곁에서 어떻게 떠나갈 수 있을까.

카일과 헤어지자는 결심을 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건만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금 마음속에 커다란 사랑이 떠올라 제임스는 눈물을 참아내려 눈을 꼭 감았다.


"제임스, 괜찮아요? 왜 그래요?"

"아니, 잠깐 눈이 아파서 그래요."

"거기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요. 그냥 저희 둘 인정해주신다고 했어요. 다 잘 됐어요."

"하아... 제임스."


조그마한 한숨소리와 함께 온 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감촉에 제임스는 눈을 번쩍 떴다.

카일의 등뒤로 보이는 풍경에 눈이 시려 제임스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제임스? 어디 안 좋아요?"

"아니, 아니예요."


거리를 벌리려는 카일의 등뒤에 팔을 감아 그를 꽉 껴안은 제임스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포옹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상쾌한 민트향 풍기는 은은한 향수, 부드러운 양복의 촉감, 단단하고 듬직한 등과 어깨, 가늘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 숨을 내쉴 때마다 들리는 조그마한 숨소리.

제임스는 그 모든 것들을 각인하듯 더욱 몸을 가까이 붙여 천천히 호흡했다.


"여기서 돌아가면 제임스에게 할 말이 있어요."

"무슨 말이요?"

"돌아가면 알려줄래요. 여기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카일이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되어 제임스는 또다시 마음 아파했다.

그 마음에 답해줄 수 없다는 것과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이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은 거절뿐이었다.


"제임스, 어서 집으로 가요. 여기에서 할 일은 이제 없어요."

"네."



둘을 파티 회장으로 데려왔던 운전사의 차에 타 돌아오는 길은 비가 왔다.

겨울이 조금씩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되어 제임스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제임스가 카일의 집에 머무는 조건은 '겨울이 끝날 때까지'였다. 그 기간이 끝났으니 이제 각자의 위치를 찾아갈 때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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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24 02:16 | 조회 : 1,100 목록
작가의 말
거짓말너구리

아...피곤해요ㅠ 지금은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입니다ㅠ 해야 할 일이 이제야 끝났어요ㅠ 저번화 댓글 남겨주 만나서반가워님, 에붸벡님 감사드리고 하트 주시고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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