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Y 6-1

"빅토리아와 파혼하겠습니다."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카일의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강한 결의를 본 이들은 모두 그가 하는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알았고, 곧 회장 안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맴돌게 되었다.

하지만 귀가 있는 자라면 듣지 못한 이가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그 말을 들고도 리처드는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제임스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제임스는 어째서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강렬한 눈빛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카일! 당장 그 말 취소해!"


정적만이 맴돌던 그 자리에서 갑자기 소리친 것은 빅토리아였다.

그녀는 카일을 노려보던 눈을 내려 제임스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을 억지로 끌어내렸다.

하지만 카일은 절대 제임스의 손을 놓지 않았고, 그건 제임스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단단히 붙잡은 손을 빅토리아의 힘으로 뗴어낼 수 있을 리 없었기에 그녀는 화가 난 숨을 푹푹 내쉴 뿐 이후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빅토리아의 목소리로 하나 둘씩 정신을 차린 사람들의 입이 트여 그 조용했던 장소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시끄러운 장소로 변해갔다.

로버트는 그 소동에 머리가 아픈 것인지 이마를 짚었고, 곁에 있던 콜린은 아직까지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카일을 바라볼 뿐이었다.


"카일, 그 말에 거짓은 없는거냐."


무거운 침묵을 유지하던 리처드의 입이 열리자 곁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의 불타오르는 눈빛은 자신의 아들인 카일을 향해있었고, 그 숨막히는 긴장감은 카일과 제임스를 중심으로 파동처럼 널리 퍼져갔다.


"네,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카일의 대답에 주위 사람들은 또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리처드의 입은 오래토록 열리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은 그 대화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


"빅토리아와 상의한 내용인지 알고 싶네."


리처드 대신 곁에 있던 로버트의 입이 열렸다. 침착한 자세였지만 그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있었고, 눈동자에서는 악의마저 느껴졌다.


"빅토리아도 원하는 파혼일 겁니다. 어릴 때 정한 약혼이니 커가며 서로 맞지 않아 자주 다퉜습니다. 더이상 서로 힘들지 않게 이제는 파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정중한 자세로 자신의 뜻을 전한 카일을 바라보던 로버트의 눈이 힘없이 내려앉는가 싶더니 곧 곁에 있는 제임스에게 향했다.

아직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을 무렵의 어린 시절에 정한 약혼이니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남자가 빅토리가 서 있어야 할 곳에 대신해서 서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용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 정식으로 파혼이 인정된 것은 아니니 나중에 마저 이야기하도록 하세. 그나저나 곁에 있는 남자는 누구인가."


카일과 제임스가 맞닿아있는 손을 본 로버트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마치 적을 본 것이라도 되는 듯 잔뜩 눈썹을 구긴 로버트의 시선이 제임스를 향했다.

카일은 제임스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자신의 뒤쪽으로 조금 숨기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섰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아버지!"


이제까지 평정을 유지하던 로버트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곁에 있던 콜린이 받혀주지 않았더라면 그의 몸은 뒤편에 있는 분수대로 힘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아직 파혼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연인을 만들어오다니! 자네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건가!"

"그거라면..."

"하하, 재밌군."


호탕한 웃음소리로 카일의 말을 끊은 건 리처드였다.

이제껏 침묵을 유지하던 그의 입이 벌어짐과 동시에 사람들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네!"

"뭘 이런 걸 가지고 인상을 쓰나. 즐거운 파티와는 어울리지 않아."


몇 마디 더 하려는 로버트를 말리고 가볍게 앞으로 나아선 리처드는 곧 카일과 제임스의 앞에서 멈춰섰다.

긴장해서 몸을 움츠린 제임스와는 달리 카일은 변함없이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손을 잡고 있는 제임스는 그가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일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적어도 떨고 있다는 것은 숨겨주고 싶은 마음에 제임스는 맞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 마음에 화답하듯 카일의 떨림과 긴장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둘은 손을 마주잡은 채로 리처드와 마주했다.

그는 중후하면서도 매력적인 눈매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키는 컸고,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당당한 눈빛은 오만하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었다.

제임스는 이제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짐작했고, 이번 자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람임을 알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리처드 크리스토퍼입니다."

"제임스 와일드입니다."


리처드는 카일에게 겨눴던 시선을 거둬들이고 제임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상황에 당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임스는 꽤나 침착하게 악수를 받아들이고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리처드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제임스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카일은 한발 더 나아가 리처드의 시선에서 제임스를 숨겨버렸다.

그 모습에 흥미를 느낀 리처드는 동요한 얼굴로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카일과 눈을 맞추고 입꼬리를 올렸다.


"카일, 파혼하는 건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만 뒤처리는 모두 네 몫임을 알아두거라."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라는 표정으로 리처드는 카일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 재미있는 상황에서 벗어날 마음이 없었다.


"카일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내 생에 이런 일도 다 있군. 자네는 나랑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


리처드가 눈을 휘며 제임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절대 이대로 둘을 보낼 생각이 없는 듯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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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18 19:46 | 조회 : 1,095 목록
작가의 말
거짓말너구리

끊기신공 성공한 이후에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죄송했습니다ㅠ 저번화 댓글 남겨주신 Nickel님, 휘료소님, 만나서반가워님 감서드리고 감사드리고 하트주시고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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