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Y4-2

"카일, 일단 진정해. 어디가는 거야?"

"지하."

"지하? 지하는 작년에 폐쇄했어."


그건 물론 카일도 알고 있었다.

원래부터 개장하지 않고 있던 지하가 작년부터 갑자기 출입금지 구역이 된 것은 파티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를 알고 있던 여자는 분명 그가 지하에 있다고 말했다.

외부인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눈치 빠른 카일이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파티 회장의 웅성거림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걸어온 카일과 콜린의 앞에 폐쇄된 지하로 가는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카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카일, 저 문은 항상 잠겨있어. 열쇠는 빅토리아가 가지고 있고..."


하지만 콜린의 말과는 달리 카일이 조금 힘을 주자 문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틈을 만들며 열어졌다.

콜린의 말대로 평소에는 빅토리아가 관리하고 있는 열쇠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장소지만 그녀가 아직 지하에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기에 문은 열려 있었다.

아연한 콜린은 이미 문 너머로 사라진 카일을 쫒아 뒤늦게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웅장한 원형 아치가 구역을 나눠 세워져 있는 복도를 걸으며 카일은 제임스를 떠올렸다.

이곳까지 와버린 이상 그에게 위험한 일이 닥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카일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안일함을 계속해서 탓했다.

브라운 가문과 등을 지게 되는 파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제임스에게 눈을 뗀 일이나, 콜린과의 대화에 집중해 뒤늦게 제임스의 부제를 알아챈 일이나, 그 모든 일들이 자신의 안일함에서 비롯되었음을 곱씹는 카일은 제임스가 제발 무사히 있기만을 바랄뿐이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도중, 카일은 두 명의 남성과 함께 멀리서 걸어오는 빅토리아의 모습에 이를 으득 갈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인영이 마침내 눈 앞까지 다가왔지만 카일은 멈추지 않고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물론 빅토리아에게 하고 싶은 말들은 많았지만 그녀와 말다툼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제임스를 구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것을 카일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은 곧 뒤에서 누군가에게 팔이 붙잡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카일, 그쪽은 아무것도 없어. 빨리 파티 회장으로 돌아가."

"이거 놔."


자신의 팔을 붙잡는 그녀의 손길에 분노를 느낀 카일은 거칠게 그녀의 손을 떼어냈지만 곧 그녀의 곁에 있던 장정에게 다시금 팔이 붙잡히고 말았다.


"돌아가, 카일. 지금 돌아가면 다 되돌릴 수 있어. 그러니까 가지마."


빅토리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그를 회유하기 위한 포장이 아니었다.

이렇게해서라도 카일을 붙잡는 자신이 비참해져 빅토리아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살아온 그녀에게 카일은 꺾을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녀의 마음에 처음으로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심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카일을 놔줄 수 없었다.


"빅토리아, 카일을 놔 줘."


차분하지만 어딘가 섬득한 목소리로 빅토리아의 귓가에 속삭인 콜린은 이 이상으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기를 원한다는 듯 상황을 종료하려 했다.

빅토리아의 신경이 콜린에게 쏠린 것을 기회로 카일은 재빨리 남성을 뿌리치고 안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남성은 뒤늦게 카일을 잡기 위해 뛰기 시작했지만 곧 콜린에 의해 앞이 막히고 말았다.


"그를 쫓지마. 브라운 가문을 이어받을 사람은 나다. 브라운 가문의 사람이라면 빅토리아 보다 내 말을 듣는 게 맞다."


콜린은 빅토리아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이미 화가 나 있었고, 지금 상황에서는 카일을 돕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브라운 가문의 장남인 콜린의 말에 따라 장정들은 행동을 멈췄고, 콜린은 사라져가는 카일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빅토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문을 물려받는 즉시, 이 호텔은 내 소유로 바꾸겠다. 빅토리아, 카일은 놔두고 파티 회장으로 돌아가."


빅토리아가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을 예상한 콜린이었지만 그 이상에 대한 것은 묻지 않은 채 그녀를 돌려보낸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시 지하를 향해 몸을 옮겼다.




카일은 텅 빈 복도를 오로지 자신의 걸음 소리로 채우며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숨이 차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로 그는 곧 제임스가 들어갔던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의 너머는 고요했기에 카일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도 짐작하지 못한 채로 문을 밀었다.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도배된 벽과 바닥 곳곳에 널린 침대와 쿠션들을 본 카일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곳이 무엇을 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짐작했다.

이제껏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곳이 눈 앞에 드러나자 카일의 속은 더욱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 넓은 장소에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기에 제임스는 더욱 불안감을 느꼈다.

곧 안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 카일은 조심스레 더욱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악마들의 소굴에 던져진 갈색머리의 소년을 보았고, 그 어떤 복잡한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그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튼튼한 장벽을 만들어 모여있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제치며 그들의 중앙으로 파고드는 카일은 이미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있었다.

사랑스럽고 가여운 제임스. 카일은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제임스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며 마침내 사람들의 중앙으로 몸을 내민 카일은 멀리서 보았던 갈색머리의 소년을 단숨에 안아들었다.

하지만 카일의 품 안에 들어온 갈색머리의 소년은 제임스가 아니었다.

제임스와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체격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는 약물에 취한 사람처럼 시선이 흐렸고, 몸을 가누지 못하며 심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제임스, 제임스는 어디있어."


미친 사람처럼 도리질을 치며 제임스의 이름을 되뇌이는 카일의 모습에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은 카일이 어떤 사람인지 대부분 잘 알고 있었고,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모습에 모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제임스는 어디있어."


품 안에 안았던 소년을 조심히 내려놓은 카일의 시선이 멈춰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집중되었다.

그들은 모두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그 자리에서 멀어지며 카일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의도치 않게 길이 트이자 카일은 다시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곳에도 없다면 어디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 걸까, 카일은 순식간에 지쳐버린 마음을 달래며 안쪽에 숨겨져 있던 다른 방을 찾아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그토록 찾아헤매던 제임스가 정신을 잃고 다른 이의 몸에 기대어 잠에 빠져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제임스의 몸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 카일은 곧 제임스의 몸을 지탱하고 앉아있는 사람의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고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에반..."

"안녕, 카일. 오랜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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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11 20:02 | 조회 : 1,152 목록
작가의 말
거짓말너구리

이제 슬슬 비축분이 떨어져 갑니다...ㅠ 제임스 찾기 정말 오래걸리네요..ㅎㅎ 저번화 댓글 남겨주신 만나서반가워님 감사드리고 하트 주시고 읽어주신 독자니님들께도 감사인사드립니다. 시간이 된다면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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