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자의 삶

" 마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옵소서.. "

" 내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게냐. 내가 들어가겠다! "

" 9황자 마마! "

9황자라고 불리우는 이 남자는 늙은 상궁의 애절한 만류에도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 형님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겠느냐! "

" 아. 오셨습니까? "

" 아..앗! "

9황자는 눈 앞의 건장한 남성의 나체를 보자마자 해괴망측한 표정을 지으며 너풀거리는 긴 소매를 들어 눈을 가렸다. 당황한 그는 붉어진 볼을 애써 감추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 이런 해괴망측한.. 한시경 가량 기다렸는 데 복장도 못 갖추었느냐! "

" 아. 형님. 한시경은 조금 과장아니십니까. "

그는 궁녀들이 의복을 입혀주는 것을 자리에 서서 받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어느정도 복장을 갖추자 그는 9황자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 헌데 이른 아침부터 왠일이십니까. 평소엔 잘 오시지도 않으시면서 "

" 뭣이? 내 오늘 태자마마께서 불러 가야한다고 누누히 말했거늘! 넌 어째 맨날 그 모양인 게냐! "

자신이 한 말을 까먹은 동생에게 화가났는 지 9황자는 허리춤에 한 손을 받치고 한 손으로는 삿대질을 하며 지난번 경연자리에서 잠을 자버린 일, 사마일가가 대접한 오찬식에서 차가 쓰다고 얼굴을 찌뿌린 일 등을 일장연설인양 잔소리하였다. 그것을 듣기 싫었기에 그는 두손으로 귀를 막았다. 이윽고 궁녀가 관모를 씌워주며 다 되었다고 말했다.

" 공달! 듣고 있는 게냐! "

" 아. 예 당연히 듣고 있습죠. 하늘같은 민세영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건데 "

" 너.. 그 태도를 바꾸라고.. 하 되었다. 다 입었으면 어서 따라나오거라! "

" 아 잠시만 형님 "

" 또 뭐냐! "

9황자 민세영은 얼굴을 잔뜩 찌뿌리고는 공달에게 소리쳤다. 공달은 헤실헤실 웃음지으며 배를 어루만졌다.

" 아직 조식도 못 했는 데요. 허허 "

" 그러니까.. "

민세영은 머리가 아픈듯 이마를 부여잡더니 이내 공달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배를 꼬집었다.

" 아! 아파! 아파요!! "

" 그르니까.. 태자마마께서 조식을 같이 하자는 거 외에 왜 부르겠냐 생각을 해! "

그는 이를 앙다문채로 공달의 배를 꼬집어댔다. 공달이 아파하건, 궁녀들이 어쩔줄 몰라 안달이 나건 아무상관 없이 한참을 그러다가 공달의 팔을 잡고는 밖으로 끌고 나섰다.

" 아파! 천천히좀 갑시다 형님! "

" 시끄럽다! 멍청한 녀석 "

" 오랜만이옵니다 23황자 마마. "

밖에서 기다리고 있건 화랑 신우랑이 황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공달은 그를 보더니 팔을 잡은 세영의 손을 가볍게 제치고 달아오른 표정으로 매우 기쁘게 신우랑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 오오 자네도 와있었나. 진작 말하지! 그러면 내 일찍 나왔을 터인데 "

" 너는.. 네 형님을 앞에두고 잘도 그런 말을.. "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는 민세영을 애써 무시하고은 훤칠하고 잘생긴 신우랑에게만 관심을 두며 이것저것 안부를 묻는 공달은 결국 민세영에 의해 다시 배를 꼬집히며 끌려가고야 말았다.

23황자인 공달, 그가 있는 황자궁에 비하면 금성의 태자궁은 10배이상 큰 규모, 화려한 금제장식으로 꾸며져 있는 아름다운 정자가 주변에 흩뿌려져있듯 피어있는 꽃들과 함께 이곳이야 말로 제국의 태자궁이다라고 알리는 듯 하였다.

대문에 들어서자 검은 갑주를 입은 소위 흑랑이라 불리우는 이들이 곳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과 단아하게 정리된 정원을 가마를 타고서 지나가면서 공달은 턱을 괴고서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 어차피.. 얼마 머물지도 않으면서 굳이 이런걸 만들 이유가 있나? ´

" 도착하였사옵니다 마마 "

" 드디어 이 갑갑한 가마에서 내리겠구나 "

기지개를 크게 피고서는 가마에서 내리자 눈 앞의 정자에 이미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다른 황자들이 벌써 와 있었다.

" 역시나 우리가 제일 늦었군.. "

민세영은 그 말을 하며 공달을 노려보았다. 공달은 그저 양손을 목뒤로 하고는 휘파람을 불러댔다. 민세영은 체념한듯 함께 정자로 향했다. 그곳에 가자 여러 황자들이 세영을 보고는 반갑게 다가와 맞이해주었다.

" 오. 이번에도 늦었구만 크크 "

" 송구합니다 형님. "

" 9황자는 어째 매번 늦는 가. "

" 형님 이번에도 늦으셧습니다. "

13황자 미유진이 낄낄 웃으며 민세영을 놀리자 민세영은 살짝 흘겨보니 처음에 그를 놀렸던 7황자 성하윤은 농담을 가지고 그러냐고 세영을 다독였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세영을 반기어 주었으나 아무도 공달에게는 신경쓰지 않았다.

공달 역시 그런 분위기가 익숙한 듯 슬금슬금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더니 놓여있는 고기를 한점 입에 가져다 넣었다. 고기는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한 것이 필시 가화산 소고기임에 틀림 없다고 믿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황자들 사이에서 말하였다.

" 어찌 늦은 게 세영의 탓인가. 막내동생을 챙기다 그런 것이니 공달의 탓이 아니겠는 가. "

그 말이 있자 황자들은 모두 고기를 씹고 있는 공달에게 시선이 몰렸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공달은 사레가 들린듯 켁켁거리며 가슴을 치고는 고기를 삼켰다. 황자들의 한 가운데에 눈꼬리가 올라가 마치 여우와 같고 마른체격의 남자, 그러면서도 차가운 눈매를 지닌 한 남자가 다시금 공달을 향해 물었다.

" 아니 그런가 23황자. "

" 하.. 하하.. 맞습니다 김해평장왕 전하.. 하하 "

사레 때문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답하자 김해평장왕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 울보는 어쩔 수 없는 게냐. 그런 것 가지고 눈물을 보이다니. "

그러자 주위의 모든 황자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어쩔수 없는 울보라느니 역시 울보는 울보라느니 하며 말을 해댔다. 공달은 고개를 푹숙이고는 몸을 떨었다.

" 기분이 나쁜게냐? 형제끼리 농도 못하겠구나. "

퉁명스레 말하는 그에게 공달은 벌떡 일어나 다가가더니 손에 든 고기를 김해평장왕의 입에 넣었다. 평장왕은 갑작스러운 일에 당혹해하였다.

" 뭣 하는 게냐?! "

" 고기가 너무 맛있습니다. 드셔보시지요 사월형님 "

공달은 방긋 웃으며 사월에게 말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고기를 먹어댔다. 사월은 시녀에게 손수건을 받아 그곳에 고기를 뱉고는 떨어진 더러운 고기를 씹은 듯 기분나뿐 표정을 지었다.

´ 시건방진.. ´

민세영은 흘겨보는 사월을 바라보다가 공달에게 다가가더니 따지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둘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하였다.

" 지금 그게 넘어가느냐? "

" 아 형님. 저 배고픕니다. 하하 "

고기를 씹으며 배를 쓰다듬는 그를 보고는 세영은 골이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 태자마마 납시옵니다! "

그때 정자의 입구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리고 모든 이들이 좌우로 열을 맞추어 섰다. 세영은 공달을 끌고 사월과 반대인 우편에 자리했다. 건장한 체격의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깔끔하게 정리된 수염을 가진 대 신라 제국의 황태자가 자신의 형제들이 서있는 곳 까지 오자 김해평장왕 신사월이 말하였다.

" 황태자 마마를 뵙사옵니다. "

" 태자마마를 뵙사옵니다! "

이윽고 그의 말을 모든 황자들이 복창하였다. 태자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팔을 뻗었다.

" 오랜만이네 나의 형제들. 늘 보고 싶고 보고 있어도 그리운 형제들이 생각나, 내 모두를 불렀네. 민폐가 아니라면 좋겠네만 "

" 어찌 민폐이겠습니까. 무궁한 영광이옵니다. "

김해평장왕 신사월이 말하자 모두 이를 복창했다. 그러나 공달은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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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8 03:41 | 조회 : 433 목록
작가의 말
jindal

매주 연재하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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