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를 맞이하는 조촐한 자리 후 모두 정자에 마련되어있는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태자의 옆자리에는 가화부에 가있어 오지 못한 2황자 소유를 대신하여 3황자인 김해평장왕 신사월이 앉았다.
공달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리인 맨 마지막 자리에 앉았다.
' 역시나 뭐라는 지 들리지도 않고, 먹을 거나 먹어 볼까? '
23명이나 되는 황자라는 수는 이런 곳에서 단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그 덕에 눈치 보지 않고 마음 껏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니 괜시리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여 마음편히 먹기 위하여 차고온 향주머니를 바닥에 풀어두었다.
-딱!
" 아야! "
" 응? "
공달이 고기를 입에 가져대는 순간 누군가에게 강력한 딱밤을 맞아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소리를 내며 이마를 감싸안았다. 얼마나 소리가 컸는 지 맨 앞자리에 있던 태자가 소리를 듣고 공달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 오 나의 막내동생 공달이 아니더냐. "
" 하하.. 소월 형님 오랜만입니다. "
-딱!
말을 마치자 마자 또 다시 딱밤이 날라왔다.
" 아야! 세영 형님 적당히좀! 대체 여기는 왜 있는 겁니까? "
자신을 강타한 딱밤이 날아온 곳에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있는 세영을 보며 살짝 성난 목소리로 세영에게 다그쳤다. 그러면서도 다른 이들은 들리지 않도록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이다.
" 태자마마의 존함을 함부로 말하다니. 네가 아직도 어린아이인줄 아느냐? "
" 그건 나도 모르게.. "
" 그만하거라. 귀여운 막냇동생이 아니더냐 "
태자가 그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세영을 만류하자 세영은 허리를 숙였다.
" 이제는 다큰 성인이옵니다. 관대하신 태자마마의 은덕을 모르고 방자하게 구니 이를 고치게하는 것 역시 형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겠사옵니까. "
" 되었다. 허나 세영이 너의 따쓰한 마음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하는 구나. "
태자가 세영을 바라보며 방긋 웃음짓자 세영은 그 말이 듣기 살짝 부끄러웠는 지 얼굴을 붉히었다. 본래 잘 달아오르는 그이기에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 느낌을 받자마자 앞에 놓인 술잔을 바로 비운 후에 손부채를 살랑살랑 부쳐대며 술이 강하다느니 하는 말을 일부러 하였다.
태자가 공달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마음이 들지 않았는 지 김해평장왕 사월이 태자에게 말하였다.
" 태자마마. 이러한 자리에 춤이 빠져서야 되겠사옵니까. 소제가 지난날 훌룡한 무희들을 보았사온데 한번 보시지요. "
" 무슨 바람이 들어 무희들을 보았느냐. 춤과 노래에는 관심이 없던 네가 아니더냐. "
의아해하며 태자가 묻자 사월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 태자마마를 기쁘게하고 싶어하는 소제의 정성이옵니다. "
" 하하하. 그러하더냐? 한번 보자꾸나. "
사월은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시종에게 준비한 이들을 데려오라 명하니 시종이 밖으로나가 이윽고 여러명의 무희들이 정자로 들어섰다. 무희들은 그야말로 꽃과 같았다. 그녀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흩날리는 벚꽃의 하늘거리는 춤사위와 같으니 정자에 모인 황자들은 멍하니 그녀들이 뽐내는 자태를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공달 역시 그녀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왕 정도 되니까 저런 무희들을 불러대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함께 하였다.
" 형님. 역시나 셋째 형님은 다르십니다. "
" 뭐.. 형제들 중에 5명 밖에 없는 왕이 아니더냐. "
공달이 귀엣말로 속닥이자 세영은 앉아있는 자세 그대로 입만 열어 나지막하게 답했다.
" 이 정도면 태자마마께서도 흔들리지 않으실.. 악! "
" 한심한놈! 태자마마가 너인줄 아느냐? 가무나 보거라 "
농으로 한말에 하나하나 날카롭게 반응하는 세영을 흘깃 바라보며 혼잣말로 융통성이 없다느니 불평을 열거하지만, 공달 역시 형제 중 태자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챙겨주는 세영에게는 마음 한켠의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툴툴대도 세영의 말이라면 왠만한 것은 결과적으로 듣는 것이니 자신은 꽤나 동생으로서 도리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가무를 보았다.
절세의 미인들로 구성된 무희들은 조선의 가요였던 조동요를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부르며 자신들의 춤을 뽐내었다. 마치 벌이 꿀을 찾았다고 동료들을 부르는 8자의 춤사위와 같이 그녀들은 그 자신이 달콤한 꿈이라 말하는 듯 보였다. 노래가 끝나고 무희들이 춤을 마치자 태자는 박수를 치며 크게 기뻐하였다.
" 사월이 네가 왕이 되더니 다방면으로 우수한 안목이 트였구나. 나는 몹시 만족하고 감탄스럽네. 특히 저 왼쪽의 있는 아이야 말로 참으로 아름답고 절묘한 춤이도다. "
태자의 칭송을 듣자마자 사월은 왼쪽에 있는 무희를 노려보았다. 태자는 그 표정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월의 표정은 확실히 버러지를 보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공달은 그런 사월의 표정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 큰형님에게 칭찬을 받았는 데 왜 저러는 거야. '
공달 역시 왼쪽의 무희를 보니 확실히 아름다운 꽃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붉은 매화꽃과 같은 여인이었다. 태자가 술잔과 술병을 들고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자 무희들은 모두 엎드리고 그녀만이 태자의 앞에 무릎 꿇었다.
" 고개를 들고 나의 잔을 받거라. "
" 화..황공하옵니다. 태자마마 "
" 이름이 무엇이냐? "
" 선희이옵니다. "
" 아름다운 외모에 아름다운 춤을 지닌 네게 아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이름이구나. 너의 춤을 본 나는 오늘 매우 감탄을 감추기 어려웠다. 치하의 답례로 술을 한잔 주고 싶구나. "
" 황공하옵니다 마마... "
태자는 잔을 그녀에게 건내고는 술을 따라주었다. 선희라 불리우는 이 무희는 조심스럽게 잔을 받아 조신한 몸짓으로 술을 마시었다.
무희의 영향이었는 지는 몰라도 이후의 자리는 빠르게 끝이났다. 공달은 빠른 끝맺음에 기뻐하며 세영에게 달라붙으며 집으로 가자고 하니 세영이 '에잇!' 하며 뿌리쳤다.
" 형님 또 왜 이러십니까. 아까 아침에는 저에게 그리 붙으시더니.. "
" 뭐? 내가 언제 그랬다는 게냐? "
" 아까 제 배를 어루만지시지 않았습니까~ "
" 하. 네가 드디어 실성을 했구나. "
세영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공달을 무시한 채 자신의 가마에 올랐다. 공달 역시 웃으며 자신의 가마에 오르려던 순간 문득 무언가 깨달은 듯 멈춰섰다.
" 뭣하느냐. 어서 타지 않고. "
" 아까 정자에서 향주머니를 두고왔습니다. 가지고 올테니 먼저 가시면 안됩니다! "
" 칠칠치 못한 녀석. 빨리 갔다오거라! "
바로 정자를 향해 뛰어가면서 귀찮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정자에 가 향주머니를 찾아 자신의 품에 달고서는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 였다.
-짝!
정자의 뒷편에서 누군가가 뺨을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달은 호기심에 슬며시 그곳을 보니 그곳에는 아까 그 선희라는 무희가 바닥에 깔린 비단위에 서서 3황자, 김해평장왕 신사월에게 맞고 있었다. 당혹스러움에 공달은 우선 몸을 숨기고는 입을 막았다.
' 뭐야..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
" 잘못했사옵니다. 전하 잘못했사옵니다. "
" 잘못? 네년이 무엇을 잘못한 것이냐? "
들려오는 소리에 공달은 얼굴을 살짝 내밀고 보니 사월의 앞에서 선희는 눈물을 흘려대며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대고 있었다. 공달이 자세히 보니 그녀의 얼굴은 이미 멍과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 무엇이든 잘못했사옵니다. 제발 살려주시옵소서. "
" 하하하하 "
사월은 무엇이 우스운듯 이마를 한손으로 부여잡고는 이내 선희의 볼을 여러번 툭툭 쳐댔다.
" 네이년. 누가 이리 아름다워 태자마마의 혼령을 뺴라 하였느냐? 마마가 내리는 술은 마음에 들더냐? "
" 아니옵니다! 어찌 소녀가 그런! "
" 닥치거라! "
주먹을 내질러 선희의 얼굴을 치자 선희는 나가떨어졌다. 사월은 넘어진 선희의 가느다란 목에 발을 가져다 대더니 정색하며 물었다.
" 허면 태자마마가 내린 술이 별로라는 것이냐? "
" 콜록 콜록.. 그..그렇사옵니다. 저...저..전하에 비하면..! "
-콰직
부러지는 소리가 공달의 귀에 들려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공달이 들었으니 필시 바로 옆에 있는 무사들과 형님인 사월 역시 들었을 것이다. 아니 들었다. 공달의 눈에 웃으며 그녀의 목을 짖밟아 버린 사월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 태자마마의 술보다 내가 주는 술이 낫다니. 역적이 아닌 가? 하하하 "
" 그러하옵니다. 전하 "
호위무사인 고대산이 고개를 숙이며 웃고 있는 사월에게 답하자 사월은 시종에게 신발을 닦으라고 명하고는 조금 전 태자가 마음에 든다는 무희를 말할 때 그녀를 바라보았던 그 얼굴, 몹시 기분이 나쁘고 더러운 것을 밟은 듯한 그 표정을 지었다.
" 이 버러지를 치우거라. "
" 예 전하. "
' 못 볼걸.. 봤다. 빨리 돌아가야지. '
- 달그락
공달이 가마로 돌아가려고 움직이면서 실수로 옆에 놓인 탁자를 건드렸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은 듯 사월이 공달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누구냐!"라고 말하자 공달은 몸을 들어 모습을 나타낼지 고민하다가 헤실헤실 웃으며 몸을 들었다.
" 공달? 네놈이 아직도 예 있었느냐? "
" 하하하.. 그것이. "
공달이 웃으며 흘깃 선희가 있던 쪽을 바라보니 이미 바닥에 깔린 비단으로 그녀의 사체와 혈흔은 가려져 있었다. 공달은 향주머니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 고기에 빠져 이것을 두고 간 것을 방금 깨달아 찾으러 왔습니다. 형님께서는 태자마마께 선물을 드리려고 아직까지 있으신겁니까? "
" 방금 왔다고? "
사월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공달을 보았으나 이내 피식 웃었다.
" 그래. 비단을 선물하려 내 아직 남아있었다. 주머니를 찾았으면 너는 어서 가거라. "
" 아 예.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허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
공달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아무것도 못 본듯 조심스럽게 자리를 떴다. 사월은 그런 공달을 보다가 가마에 올랐다.
세영이 있는 곳으로 오자 세영은 화가난 듯 공달에게 소리쳤다.
" 주머니 하나 찾는 데 뭐 이리 오래 걸린단 말이냐! "
" 그게.. "
" 무엇이냐? 얼토당토한 변명이라면 오늘이야말로 혼쭐을 내주마! 아침부터 지금까지 이 형님을 얼마나 기다리게 하는 게야 "
화내는 세영의 얼굴을 보며 말을 해야할지에 대해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 미안합니다 형님. "
" 어? 어..음.. 큼! 그래. 어, 알면 되었다. "
생소한 공달의 모습에 세영은 당혹스러워 방금 전 까지의 화를 내던 자신을 잊었다. 그리고 어색해진 분위기 때문인지 빨리 가자고 하였다.
9황자 민세영과는 주작대로의 중앙에서 헤어지고는 최남단에 위치한 자신의 사택으로 돌아가면서 공달은 가마의 창을 열고 밖을 보며 좀 전의 일을 생각하였다.
무언가가 속안을 헤집는 것만 같은 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 심정에 공달은 답답함을 느꼈다.
" 마마 도착하였사옵니다. "
말이 끝나자마자 공달은 가마에서 뛰어내려 사택의 문을 열고 급하게 뒷간으로 뛰어들었다.
-웨에에엑
그리고는 오늘 먹었던 모든 것을 토해내었다. 답답함 때문인건지 너무 잔혹한 장면을 보아서인지, 토악질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의 이유를 공달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