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사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저 개자식들을 막아! ”
“ 신라 찌끄레기들을 갈기갈기 찢어죽여라! ”
전란, 그때의 그것을 그 외에 더 표현할 말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쳐들어온 적들에 의해 우리들의 고을은 쑥대밭이 되었다. 우리의 군사들은 밀려오는 적들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 전장의 한가운데 어렸던 난 그저 울고 있을 뿐이었다.
“ 꼬맹이녀석 시끄럽다! ”
울고 있는 나에게 검을 치켜드는 그 어른의 모습을 보고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떠오르지도 않았을뿐더러, 확실하게 없기 때문이었으니까.
“ 죽억! ”
챙! 소리가 크게 나며 바닥에 있던 돌과 그가 들고 있던 칼이 마주닿았다. 울음을 터뜨린 채로 쓰러진 그의 모습을 보니 그의 얼굴은 방금 내가 보았던 날 죽이려던 험악하고 흉악한 살인자의 얼굴 그대로, 그대로 화살이 박혀 죽어있었다. 그것을 보고는 나는 더 크게 울 수 밖에는 없었다.
늘 그렇듯 전쟁터에서 들리는 것은 차가운 철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쓰러져가는 어른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니까. 아이들의 울음소리의 뒤에서 한무리의 검은 병사들이 몰려오며 적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 중 체격이 좋은 털보아저씨가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의 병사들을 바라보더니
“ 빨리 아이들부터 피난시켜! 나머지는 나와 함께 저놈들을 죽인다! ”
“ 예 부관님! ”
검은 병사 중 한명이 나를 끌어안고서 뒤로 달렸고 다른 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갑주의 차가운 한기를 느끼며 피난하는 나의 눈에는 달려나가던 그들의 죽음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안고 뛰는 이 남자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도 보였다. 대체 뭔지를 몰랐었다.
모든게 그저 무서웠으니까. 남자는 나를 다른 피난민들이 있는 장소로까지 옮겨주더니 무어라 말했지만 지금와서는 크게 기억나지는 않는 다. 아마도 안전한 곳으로 피해라 였던 것이 아닐까?
아주잠시동안의 불안정한 평화. 누군가의 죽음 뒤에 무기력하게 보호받는 평화 속에서 나는 사라진 나의 아버지가 어찌되었는 지는 안중에 없었다. 내가 계속 울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어머니의 죽음이 가슴속에 계속 맺혔다.
그때는 그렇게 어렸음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울음을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전방의 병사들이 모두 죽고 적들이 피난민들이 있는 이곳까지 왔을 때도, 그들에 의해 앞에 있던 노인들과 아주머니들이 공중으로 피를 흩뿌리며 쓰러질 때도 나는 울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무찌르기 위해 나타난 병사들이 그들을 모두 해치웠을 때에도 그저 큰소리로 울 수 밖에 없었다. 그것 밖에는 어린아이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다들 환호를 내지를 때까지도 울고 있던 내가 신경쓰였는 지 세상에서 처음보는 색깔의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말위에서 병사들에게 무언가를 시키고 있다가 나에게 다가왔다.
주변의 어른들은 그를 향해 절을 올리며 고개를 숙이고 촌장님은 나에게 “ 얘야 어서 엎드리거라. ”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촌장님을 향해 손을 들더니 “ 되었다. ”라고 하고는 말에서 내려 나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어 눈을 맞추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눈을 마주한 후로는 눈물이 멈추었다.
하루종일 울어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한건 그 순간 눈물은 멈추었다. 남자는 촌장님에게 물었다.
“ 이 아이의 부모는 누구인가? ”
“ 난중에 죽었습니다. ”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답하는 촌장을 한번 보고는 남자는 훌쩍이는 나를 바라보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아버지라 부르거라.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
“ ....... ”
그의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할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다. 이름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윤달에 태어났기 때문에 재수가 없다고 5살 때까지 이름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사람들과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 불렀다.
“ 공달...”
“ 나와함께 가자. ”
그는 웃으며 나를 안아 자신의 말에 태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렇게 새로운 부모를 만나 새로운 자식이 되었다. 그렇게 19년이 흘렀다.
언제나와 같은 따쓰한 햇살이 창을 타고와 잠들어 있는 나의 얼굴을 살짝 어루만지며 이제는 일어나야할 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조금만 더 잠의 달콤함에 취해있고 싶어 이불을 끌어 얼굴을 덮으며 몸을 부르르 떨지만 계속되는 햇살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앉아 부스스한 머리를 어루만지고는 미리 열어져있던 문 밖의 풍경을 본다.
이제 얼마전부터 피기시작한 개나리는 노오란 빛깔을 뽑내며 만개해있고 그 곳에는 나와는 다르게 일찍일어난 나비와 벌들이 꿀을 따러 앉아있다. 눈곱을 떼지도 않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것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난다.
“ 마마. 9황자께서 한참을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상궁이 나에게 말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피고는 크게 숨을 들이 내쉰다.
“ 이른아침부터 이 보잘 것 없는 막내 동생을 왜 찾아 오셨을 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