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도 때가 있어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그렇듯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게다가 하늘그림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사는 공동 주거지다.
여관처럼 하루 묵고 가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계속 먹고 자고 지내기 때문에 그 양을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오늘만해도 그간 나온 쓰레기가 자루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쌓여나왔다.
대개는 음식 찌꺼기, 간혹 깨진 유리나 뭔지 모를 것들이 튀어 나왔다. 아마도 골방 마법사들 거겠지.

애들이 그렇게 많은 우리 고향집에서도 이만큼은 안 나왔다.

참, 이걸 매일 치우는 것도 참으로 고역이겠다 싶다.
이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이냐면 하늘그림의 투숙객, 즉 손님이었던 내가 조만간 손님이 아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쓰레기로 빵빵하게 가득찬 자루의 끝을 모아 묶었다.
이거 하면 얼마나 까준댔더라...

"같이 쓰레기 버리러 갈 파티원 구하아암"

나는 대놓고 야우라를 보면서 말했다.
테이블에 엎드려서 휴식을 만끽하는 중인 그 애는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른 골방 마법사들은 식사 문제가 아니면 한 발짝도 안 나올 사람들이니 기대도 안 했다. 하지만 야우라는 아니다.

"거기, 아줌마. 아줌마는 여기 직원이잖아요."
"직원은 사람 아니냐...? 좀 쉬자..."

입은 움직여 말을 하는데 눈은 가물가물 감았다 떴다 하는것이 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낮잠을 자고 있었다.
네가 뭘했다고 쉬냐,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있는 근거는 가지고 있었지만 자격은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냥 가만두기로 했다.
그래, 맡은 건 나니까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아아 레이크. 잠깐만요."

슬슬 그만 투덜대고 버리러 나가볼까하는 찰나에 레샤가 나를 불렀다.
내가 멈춰서자 그 애는 뛰다시피 하는 급한 발걸음으로 오더니 종이뭉치 서너개를 내밀었다.
그게 무엇인고하니.

"이것도 같이 버려줘요."

이게... 그러니까... 어...
분명 맞는 행동이다. 괜히 쓰레기 쌓아두느니 버릴 때 한 꺼번에 버리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긴한데 왜 기분이 상할까.

"레샤. 나는 속이 좁다..."

나는 자루의 입구를 움켜쥐고 말했다.

"네. 알고 있는데, 왜요...?"

레샤가 왜 새삼스럽게 구냐는 듯 가볍게 되물었다.
그리고는 자루에 종이뭉치를 넣으려고 하기에 나는 얼른 그 손을 피해낸 다음 띵, 하고 작은 종소리를 흉내냈다.

"당신은 레이크 아이힐데른을 도울 의향이 있습니까?"
"없 습 니 다."

이미 무슨 말을 하여는 건지 간파한 레샤가 또박또박 대꾸하며 다시 자루를 향해 내 오른쪽을 돌았다.
그 움직임이 답지않게 재빠르다.

"진짜 없어? 진짜? 응? 진짜로?"

나는 똑같이 오른쪽으로 돌며 되물었다.

"이럴 시간에 그냥 갔으면 벌써 세 번은 갔다 왔어요...?"

참다못한 레샤가 내 옆구리를 주먹으로 찔렀다.
허를 찌르는 통증 덕에 내가 한심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건 갈비뼈에 사무치도록 알 수 있었다.
그렇데도 세 번 갔다올 시간이라는 건 인정 못하지만.

끝내 자루의 주둥이를 열어주자 레샤는 종이뭉치들을 그 안에 넣고 손에 남은 먼지까지 모두 탈탈 털어내었다.

"레샤아, 잠깐만 와봐아..."

이번엔 야우라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레샤를 불렀다.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던 야우라를 본 레샤는 눈을 찌푸리며 탄식을 내더니 곧 그리로 갔다.

"어제밤에 혼자 부스럭 대더니 안 자고 뭘 한 겁니까...?"

야우라가 레샤에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예에? 뭐라고요...?"

그 소리가 거기서도 잘 안들리는 듯, 레샤는 좀 더 가까이 귀를 기울인다.

"야우라가 쓴 컵은 야우라가 갖다 놔요..."

레샤가 단호히 거절하자 야우라는 한 번 더 가까이 오라고 손을 저었다. 레샤는 한 숨을 쉬면서도 끝내 한 번 더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주었다.

"...좀 해줄 수도 있지, 하는 그런 정도면 그냥 야우라가 하라고요...!"

별로 대단한 얘기가 아니었으므로 엿듣기는 그만두고 그냥 쓰레기나 버리러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기 싫은 일 할 때는 별 게 다 재미있어졌지만 저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저걸 다 들을 시간이면 정말로 세 번은 왕복해서 쓰레기를 전부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여 대문을 열었다가 나가려던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바깥에 웬 가죽 갑옷 차림의 사내 두 명이 서 있었다.
자연스럽게 잡담을 나누던 두 사람의 시선은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쪽으로 향했다.
잠깐의 시선교환.

나는 부끄럼 많은 청년이기 때문에 물 흐르듯 문을 닫았다. 저런 시선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이 내겐 없다.
하는 수 없이 뒷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커다란 자루를 이끌고 힘겹게 건너편의 뒷문까지 가는 수고를 들인 나는 잠시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문을 열었다.
그 곳에도 완전무장의 위병이 세 명 있었다.

"이야, 이 더운 날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말 그대로 햇빛 화창한 날에 고생하시는 위병 분들에게 한 마디 인사를 건낸 나는 뒷문을 닫고 거기에 기대 섰다.

세 명으로 늘어났다.
앞문에 있었던 두 명까지 더하면 다섯 명이다.
큰 일이 나도 무지막지하게 큰 일이난 모양이다. 게다가 갑옷이라니.
가죽갑옷에 판금을 덧댄 식이라고는 해도 그것도 갑옷은 갑옷이었다.

갑옷을 입은 위병 다섯 명이 두 개뿐인 하늘그림의 문을 모두 지키고 있다.
단순히 정리하면 그랬다.

흠...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이렇게 맑은 날씨는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흔하지 않다. 여름에도 이렇게 화창하게 개인 하늘은 보기 힘들었다.
그 얘기인즉슨.

"오늘은 해가 너무 뜨거워서 밖에 나가면 안 되겠다."

내 건강을 챙겨야한다는 뜻이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얼렀다.
건강을 위한다는 건 아주 좋은 이야기였지만 문제가 있다면.

"무슨 소릴 하는거야. 헛소리 말고 빨랑 갔다와. 아직도 이 만큼이나 남았잖아."

클로에가 그걸 들었다는 것 정도.
실내 한 켠엔 아직 자루에 담기지 못한 쓰레기가 많이 남아있었다. 결국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내가 하기로 한 거였다. 쓰레기 버리면 그걸로 낼지 안 낼지 모르는 다음 월세를 할인 받을 예정이었다. 할인 받으면 어쩌다 적은 돈이 생겨도 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런 날에 바깥에 나가면 피부가 탈지도 모르잖아."

월세고 뭐고 일단 제 몸부터 지켜야하지 않겠나.
그래서 '일단' 뱉어봤지만 내가 말해놓고서도 좀 이상하다 싶었다.

"남자가 되가지고선 무슨 소리야? 넌 얼굴로 먹고 살 위인은 못되니까 얼른 갔다오기나 하셔."

그냥 우스갯 소리였는데 돌아오는 건 막말이었다.

"아니 저기 그러니까..."
"뭐 얼마나 덥다고 그래, 태양이 뚝 떨어지기라도 했어?"

듣다듣다 답답해진 것인지 식칼을 든 클로에가 거침없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직후엔 놀란 소리를 내었다.

"어머, 무슨 일이세요?"

우와 목소리부터 달라지는 거 봐.
아주 청아하네 그래. 나한테도 그렇게 좀 말해보지. 그럼 이렇게 안 틱틱대지.

"아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바깥의 위병의 목소리는 여기까지 들리지 않아서 클로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까진 알 수 없었다.
위병과의 대화를 마친 클로에는 문을 닫고선 1층에 있는 모두에게 선언했다.

"본인이 혹시 경비대에 끌려 갈 일을 했다. 거수."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클로에는 들고있던 식칼을 지휘봉처럼 흔들며 다시 한 번 말했다.

"거수."

이번에도 역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자던 야우라는 엎드린 체로 레샤는 그 건너편에 앉아서, 늦은 식사를 하던 골방 마법사들까지 전부.

"왜 날 봐? 왜 날 봐요? 어이가 없네."
"아니 이상하게 네가 생각나네."

클로에까지 날보고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릴하는거야. 이거 큰 일 낼 사람들이네. 그렇게 막 사람 의심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난 떳떳하거든?"

이야기가 먹혀들긴 한 건지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 번 식칼을 들었다.
아니 왜 자꾸 사람 옆에서 그런 걸 휘두르는 거야.

"본인이 경비대에 끌려가본 적이 있다. 거수."

나랑 골방마법사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두 명뿐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야우라 너도 들어야지!"

어디 몰래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어.

"난 너랑 다르게 경비대까지 잡혀간 적은 없거드은?!"

나름대로 할 말은 있었던 것인지 엎드려 있던 야우라가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아아,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 중에서 최근에 외출한 적 있는 사람만 남아봐."

골방 마법사가 손을 내렸다.
그리하여 명탐정 클로에가 내린 결론은.

"너네."
"야, 이거 잠깐만. 아닐 수도 있잖아.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 아닐 수도 있지. 그러니까 가봐."

훠이훠이, 내저어지는 손.
가서 네 결백을 증명해보거라.
클로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특별히 쓰레기 버리는 건 안 해도 돼."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클로에는 그런 조건까지 내걸었다. 뿐만 아니라.

"만약 너가 아니면 평생 월세도 안내도 돼."
"너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냐?"

그것만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반론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해도 너무한 얘기지 않은가. 사람을 무슨 가출한 부랑자마냥...
가만, 가출은 했네.

"어여 가보기나 하셔어?"

쐐기를 박는 말에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하면 할 수록 손해보는 거 나요. 마음의 상처만 늘어갔다.
그래도 자신에게만큼은 떳떳했다.

'나는 떳떳한 사람이다.'

그렇게 굳게 마음 먹고 문을 열고 나갔다.
예의 그 위병들이 아예 밖으로 나온 날 보고선 당연한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팔부터 잡는다.

"아니아니 잠깐만요. 제가 누군지 확인도 안 해요?"

그 파격적인 행동에 나는 황급히 되물었다.
요즘 세상이 어느 때인데 위병이 사람을 함부로 끌고가나.

"레이크 아이힐데른이 아닌가?"

그 중 나를 붙잡지 않고 있는 한 명이 물었다.

"네... 맞는데요..."
"그래, 가자고."

"아니이, 이유는 듣고 가자고요. 이유."

합리적인 요구에 위병들의 걸음이 멈췄다.
그 사람들이 내게 흘린 건 딱 한 마디였다.

"뮤리엘 비셔스 경."

그리고는 또 다짜고짜 끌고가기 시작했다.
그 처사가 너무 황당하기 그지 없다.

"잠깐만요. 내가 이상한 건가? 언제부터 사람 이름이 죄목이 됐지. 진짜 그거 하나로 끌려가는거에요?"
"뭐? 이상하네. 비셔스 경은 이렇게만 말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하셨는데."

"아니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진짜 손톱도 아니고 손톱 끝의 각질만큼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명령이야."

아니 그 사람 무슨 신이야? 하며 속으로 씹어봐도 별다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비셔스 경... 그 사람이 불렀다면 지금 경비대에 연행되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끌려가는 건 맞지만 연행과는 목적이 엄연히 달랐다. 그 사람은 분명히 나한테 일을 맡긴다고 했다.
단순히 그 말만 남기고 가버려서 예의상 지나가는 얘기겠거니 흘려듣고 말아버렸는데 이런 식으로 갑자기 호출을 해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기옌 경이 시간 많이 비워두라고 했던건 비셔스 경의 이런 일처리 방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 대체 가서 뭘 하게되는 걸까. 중앙 기사단의 높으신 분이 지나가는 동네 청년한테 시킬만한 일이라는 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런 사람을 도와서 할만한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도무지 풀리지 않던 내 상념을 깨뜨린 건 철푸덕,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아앗, 레이크님?!"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에반젤린의 것이었다.
얼마나 놀란 건지 손가락 끝을 물고 있다.

"레이크님이 또... 범죄를..."

그리고선 한다는 얘기가 그거였다.

"아니 왜! 그것부터 시작이야? 아닐 수도 있잖아. 물론! 경비대 분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으은...!"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플라나 사제가 아는 척을 해오자 위병들은 우선 멈춰섰다. 아무리 경비대라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관계.
그 정도 위계라는 건 나도 방금 처음 알았다.

자초지종-
극장에서 만난 뮤리엘 비셔스 경부터 지금 아침의 일까지 모든 설명을 들은 에반젤린은 그제야 안심한 듯 떨어뜨렸던 과일들을 다시 주워 담았다.
그런 다음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레이크 님은 벌써 전과 2범이잖아요. 그래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보니 착각해버렸네요."

아닌 것처럼 굴면서 여태까지 중 제일 심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마음의 준비까지 해가면서 기다릴 일이야? 하지 못하게 막던가 아니면... 됐다. 생각해봐야 내 머리만 아프지.

확실한 건 나는 경비대에 두 번 끌려간 경력이 있을뿐이지, 전과 2범은 아니었다.
그것들 전부 무효처리였다고.

"그래도 다행히 이번엔 제가 봤으니까. 같이 가드릴게요. 레이크 님은 결백하다고 꼭 말씀드릴거에요. 레이크 님이 얼마나 착한데. 저는 알고있어요."
"사제님, 솔직히 제 얘기 안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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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20 07:37 | 조회 : 10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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