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싶었어(3)

그리하여-
좀처럼 비가 그치질 않자 영지관의 관리가 금일 작업의 중단을 선언했다. 혹여 중간에 작업을 멈추더라도 지역사업은 그 날 일당을 그대로 주기 때문에 나로서는 아주 이득인 부분이다.
사람들은 성당에서 나온 분들이 비를 맞지 않게 하기위해 천막의 기둥을 들고 그 째로 함께 이동했다. 정말 놀라운 방법이다.
그 사이에도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지만 이미 해산 선언이 떨어진 이상 그들을 막을 순 없었다. 그리고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가지 못했다.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지 않은가.
나도 집에가서 쉬고 싶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동굴 찾기다.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은 동굴의 불가사의를 해결한다! 왠지 엄청 굉장한 거 같지 않나요?"

굉장히 신이난 듯 에반젤린은 앞장 서 걸었다.
남쪽 숲의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아서 길을 잃거나 사고가 날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불가사의한 소리가 나는 동굴이라니.

"마을 사람들 태반은 그런 동굴이 있다는 것도 모를 걸."

나는 뺀질뺀질하게 대꾸했다.
차라리 진짜 그런 거였으면, 아니 정말로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떨 사건이면 경비대에서 나설테니까 구태여 우리같이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찾아 나설 이유는...

"그렇네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앞서 가던 에반젤린이 휙 뒤돌아 섰다.
하마터면 얼굴을 부딪힐뻔 해, 주춤주춤 뒷걸음치자 그 애는 벌어진 거리만큼 다시 다가왔다.

"그 동굴엔 뭐가 있을까요?"

그리고는 늘 그렇듯 은은히 미소지었다.
평소엔 귀염상인 에반젤린은 그 때만은 인자한 수녀님처럼 보였다.
햇살같은 미소라...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별 이유도 없이 뭔가 잘못한 거 같은 그런...
내가 동굴 수색이나 하는데는 별 이유 없었다.
구태여 에반젤린의 부탁을 거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하고.
한 마디로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

"글쎄...?"
"뭐가 되었든 분명 재미있을 거에요."

"글쎄에..."
"적어도 할 일 없이 집에 가만히 누워서 천장 결 세는 것보단 재미있을 거에요."

꼭 그렇게 얘기 해야하는 건가요.

"혼자 체스 연습하시는 것보다도 재미있을 거에요!"
"아니..."

그거 그냥 심심해서 두는 거야.
절대 한심하게 깨진 이후 혼자 연습하는 게 아니라고.

"...틀림없이 재미있을 거에요!"

곧 있으면 세뇌라도 할 기세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만해. 대신 확인만하고 금방 오는거다? 나도 집에서의 일정이 있다고."

결 갯수 세기 같은 거, 아니면 로망소설 읽기. 그다지 떳떳하진 못해서 일단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모양이었다.

"후훗, 레이크님은 정말 정다운 분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에반젤린은 날 끌어안고 살짝 등을 두들겼다.
정답다니...
서늘한 옷자락 너머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감사, 관용, 이해, 공감.
플라나교에서 포옹은 기본적인 감정의 표현을 의미했다.
...이럴 땐 그런 교리를 내린 여신님이 참 좋단 말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자 이제 출발해요!"

짧게 인사를 마친 에반젤린은 그대로 내 팔을 끌어안고 잡아당겼다. 언듯 대담한 행동에 어쩔수 없이 나는 앞으로 걷는 수밖에 없었다.
거리감각이 미묘한 우리 수녀님 탓에 난처한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그래 설마, 누워있는 것보다야 못하겠나. 또 어릴 적엔 이런 탐험을 동경하기도 했고.
재미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겠지....

설마하니-
얼마지나지 않아 우리는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숲 도입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보르넬 씨가 말했던 그 동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얼추 그 위치인데다가 금방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여기가 맞는 거 같다.

침침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알게모르게 깨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앞서 걷던 에반젤린도 시야가 어두워지니 옆으로 나란히 걸었다.

나는 몇 안되는 재주인 '라이트' 마법으로 작은 발광구를 만들어 손에 쥐었다.
아무리 못 배웠어도 밝기를 적당히 조절해서 마나를 주입해 놓으면 촛불을 사용하는 것처럼 오래 쓸 수 있었다.
훤히 밝진 않아도 앞가림 정돈 가능하다.

그 빛에 의지해 조금 더 안 쪽으로 들어가봤지만 그 때까지도 이상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역시 그냥 헛소문인거 아니야?"
"아니에요. 자세히 들어보세요."

자세히 들어보라고?
나는 숨을 죽이고 동굴의 안쪽에 귀를 기울였다.
공허한 공기 속에 울리는 건 두 사람의 발소리뿐 그 외에 다른 건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들리는데?"
"아하, 레이크님 숨소리였나봐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걸음만 재촉했다.
동굴은 생각보다 길었다. 건조하기에 토굴인가 싶었지만 딱히 그렇진 않고 평범하게 암석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아무래도 동물이 살만한 곳은 아니다.
보르넬 씨가 우릴 놀린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양반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어두운 곳에 단둘이 있다고 이상한 생각하시면 안돼요."

잠잠하다 싶더니 대뜸 에반젤린이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하긴 정상적인 남자애라면 이런 상황에서 에반젤린 같은 아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안했어."

나는 정말로, 정말 아무 생각도 안했다. 진짜로.
잠깐 들었던 잡념은 에반젤린의 머리칼에서 나는 은근한 꽃향은 향유의 것일까 하는 것 정도.
...그 정도는 할 수도 있잖아, 해도 되는 거잖아.
문제없잖아?

"정말요? 정말 안하셨어요?"
"안했다니까..."

"레이크님은 저랑 다니는게 싫으신가요...?"
"아니..."

갑자기 시무룩한 목소리를 내는 에반젤린, 요상하게 상황이 난처해져버렸다.
그게 왜 그렇게 이어지는지 전혀 하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촌스러운 수녀랑 다니는 건 요즘 청년들에게는 조금 그렇죠?"
"아니..."

솔직히 그런 걸 신경 써본적은 없었다.
뭣보다 깊은 내면에선 플라나의 사제인 에반젤린이 쪽이 더 귀한 인재인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러고보니까 너도 요즘 애들이거든?

"아니야... 난 너랑 다니는 거 좋아해."

네, 네. 그렇고 말고요.

"네? 조... 좋아...?"

적당히 한 얘기에 반응하듯 우물거리던 에반젤린이 반짝 고개를 치켜들었다.
빙글빙글 구르는 눈동자와 오갈곳 없이 분주한 손짓까지, 방금 내가 뭔가 말실수를 한걸까.
절대 아닐텐데?

"아, 아무리 으슥한 곳에 단둘이 있다지만 갑자기 그런 고백은... 저는 이미 여신께 의탁한... 아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그냥 좀 넘어갈 수 있을까요, 자매님! 예?!"

쿠우우...!

내가 스트레스를 분출할 무렵 기이한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레이크님도 참... 너무..."

나는 아직까지 이상한 소릴하는 에반젤린에게 검지를 입술에 붙여 보였다.
한 번이 아니다. 쿠우우... 쿠우우... 하는 소리는 간격을 두고 계속 들려왔다.

"이게 그 소리인가봐요..."

조심스러운 에반젤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르넬씨의 말대로 기이한 소리다.
당연히 들어본적 있을리 없다.
소리가 울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동물의 울음소리라기보단 샌 바람소리에 더 가까웠다. 그마저도 울림이 크다보니 정확히 어떤 종류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괜히 긴장되어 등과 뒷목이 묘하게 따끔거린다.

"...소리도 들었으니까, 이제 집에 갈까?"
"무슨 말씀이세요, 축음단도 아니고! 정체를 밝혀야죠!"

에반젤린은 그게 꼭 무슨 사명이라도 되는양 말했다.

"그거 꼭 밝혀야 돼? 이런 건 모를 때가 더 재밌는데."

무조건 그럴거라고 생각해.

"이대로 겁에 질린 나무꾼님이 남쪽 숲에 못가게되는 건 너무 안됐잖아요. 레이크님은 그렇게 생각 안하세요?"

딱히 아저씨가 했던 이야기 속에 그런 부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이왕 온 김에 이 동굴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증명하는 쪽이 에반젤린에게도 더 좋을 것 같다 싶었다.

우리는 동굴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굴은 아래로 향하고 있었고 의아하게도 그 사이 소리는 멈추었나 싶으면 어느 순간 계속 되었다.
계속 소리를 쫓던 우리는 머지않아 두갈래 길을 만나게 되었다.
소리에 집중해봐도 어느쪽이 특별히 더 가깝게 들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레이크님은 어느 쪽이 좋을 것 같아요?"

척척법사님 노래라도 불러볼까하는 찰나에 에반젤린이 물었다. 나한테 묻는다고 한들 마땅히 정답이 나오겠냐만은 때마침 공명정대하고 후회없을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잠깐만 이것좀 가지고 있어줘."

나는 발광구를 에반젤린에게 넘겨주었다. 주머니에서 늘 가지고 다니는 토큰을 꺼냈다.
검과 날개가 교차되어 그려져있는 노란색 동주화, 공식 명칭 '용사토큰'이다.
진짜 공식명칭이 그렇다.
딱히 장난감은 아니고 계시를 받은 아이들이라면 다들 원없이 받았을 물건이다. 나는 그저 행운의 부적삼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앞면이면 왼쪽 뒷면이면 오른쪽으로 가자."
"좋아요, 그렇게 해요."

에반젤린이 동의하자 나는 토큰을 공중으로 튕겼다. 그리고 그러던 중에 퍼뜩 생각났다, 용사토큰은 앞뒤가 똑같은 무늬를 가졌다는 것을.
무심결에 저지른 한심한 실수에 정신이 팔려버린 바람에 나는 토큰을 놓치고 말았다. 작은 동전은 용케 바닥을 굴러 오른쪽 길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야! 잠깐만 기다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이기에 헐레벌떡 토큰을 부르며 굴 안쪽으로 쫓아 뛰어들었다.
그렇게 생각없이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없을거라고 한지 단 몇 초만에 나는 그렇게 후회해야만했다.


....최근들어 토할 것 같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 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홀딱 젖기까지 했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름은 레이크 아이힐데른, 방년 18세의 건강한 청년.
특별히 하는 일은 없고 좋아하는 건 로망소설 읽기, 기타 여러가지 잡재주와 기초 마법을 익힌...

음, 이렇게 나열해보니 나름대로 나쁘지 않네.
이렇듯 개인적은 신상은 기억나지만 여전히 여기가 어디인지는 역시나 생각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처음 오는 곳일테니까!
아핳핳하하! 아하하. 아하하하...
세상에 이런 바보 멍청이가 있나 토큰 줍겠다고 그 컴컴한 데를 뛰어들다니.
근데 그게 나니까 문제지.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토큰을 붙잡은 순간 발밑이 허했다는 것과 우당탕탕하는 기억.
그리고 그 결과 이렇게 비탈에 뒤집어 쓰러져 있다는 것뿐이다.
까지 의식의 흘러갔을 무렵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밝다. 아니 밝지는 않다. 내 눈이 이상해져버린 걸까 동굴 안이 밝을리가 없는데 밝다. 아니 밝은 건 아니고 어두운데... 그러니까 앞이 보인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된걸까 어디 머리를 잘못 부딪쳐서 특수한 능력이라도 깨우친 걸까.
그러면 좋겠지만, 아니 그렇데도 상황이 이 모양인데 좋을리가 없지.

천장이 반짝 거린다.
내 뒤통수가 지금 바닥에 닿아있으니 저건 천장이 분명하다. 그런데 깜깜해야할 동굴천장이 푸르스름한 빛이 꼭 밤하늘의 별처럼 알알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멀어보인다.

...알게 뭐야.

다행히 에반젤린은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다리고 있으면 도와주러 오겠지? 그보다 내가 준 광구의 마나가 다 되기 전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려나, 하긴 플라나의 사제님인데 다른 마법은 몰라도 라이트정도는 쓸 수 있겠지.
아니, 책에선 원리가 다른 거라고 했던가.

허기사 이 꼴로 무슨 남 걱정을 한다고 우선은 내 몸부터 간수하기로 했다.
음... 그럴까 싶었는데 일단 지금은 몸이 쑤시니 좀 더 누워있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턱 턱 턱 턱.

뭔가 둔탁한 소리가 박자감 좋게 들려오고 있었다. 무엇인가 싶어 누운 체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니.

"우워어어으아악!"

이상한 털뭉치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차례 비명을 지른 후에는 놀라도 너무 놀란 것인지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거참 목청 한 번 되게 크네."
"우워으아아아아악!"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소리 지를 힘이 남아있던 것인지 나는 남은 비명을 마저 지르고 몸을 뒤집어 일으켰다.
털뭉치가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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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8 06:57 | 조회 : 505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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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콩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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