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넌 집 안가?”


시험이 끝났다.
너무 홀가분했다. 생각보다 잘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평소처럼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어. 나 계절학기 들을 거야.”
“계절학기?!”


사실 약간 충동적인 결정이긴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답지 않은 행동이니까 친구들이 놀랄만도 하지.
나는 쉴 땐 완전히 쉬는 편이라서 주말이면 12시간씩 잠을 자곤 했다.
그래서 종강을 하면 연락도 잘 안된다며 친구들이 나무랐었지.
그런 내가 방학을 마다하고 계절학기라니, 나같아도 놀라겠다.


“너가 아쉬울 게 뭐가 있어서?”
“그냥 듣고싶었던 강의도 있고... 집에 있으면 집중 안돼. 자격증 공부도 좀 하고...”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손 이훈.
집으로 내려가게 되면 그 사람을 더 이상 못볼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날 이렇게까지 만들었다.


-시험 끝나면, 방학이죠?


아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두고 내가 어딜 가.


“끝난 기념으로 술이나 마시러 가자.”


하림이는 내가 있으니까 이제야 완전체가 된거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그렇게 불참이 잦았나? 의아해 하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너 맨날 책방 가느라 우리 둘이 먹거나 혼밥 했어.”
“그거 잘 됐네.”
“야 지랄 하지마. 저새끼 맨날 여친 만나러 가서 내가 혼밥했어.”


둘은 서로를 고자질 하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오랜만에 편한 분위기를 느껴서 좋았다. 술에 취하고 싶은 날이었다.



*



“...큰일났다.”


내가 술에 취하고 싶다고 하긴 했지만, 취한 애들을 책임지겠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나보다 더 신나서는 들이키더니 거의 반죽음 상태였다.
이 장정들을 어떻게 들고 가.

일단 자취를 하는 승희네 집에 우겨 넣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학교 근처에서 마셨으니 다행이지.
그래도 승희는 어찌어찌 자기가 걸을 힘은 있길래 걸어오게 시키고 하림이만 내가
부축해서 끌고 왔다. 장정들을 방에 우겨넣고 나니까 기운이 쭉 빠졌다.


얘들은 바닥에 눕자마자 아무렇게나 쓰러져서 잠들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마셔라 부어라 하더니, 결국 이렇게 잠이든다.
밤 11시쯤, 나는 괜히 책방으로 가보고 싶었다.
문을 닫았을 것 같은데, 그냥 그 골목을 한 번 가고 싶었다.
나는 그제야 취기가 돌았나보다.



“좀 쌀쌀하네...”


반팔 하나만 입고 돌아다니기엔 약간 서늘했다.
어쩐지 달빛이 골목만 비추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춥게 느껴졌다.
이렇게 밝았던 적이 있었나. 취기가 갑자기 훅 하고 올라왔다. 나는 간만에 힘을 써서 그런가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면 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기대감에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해서 취했다고 느끼는 걸까.



“아...”


문은 닫혀있었다.
하긴. 지금 시간이면 닫혀있어야 맞지. 나는 무슨 기대를 해서 온걸까.
불이 꺼진 책방 안은 주인이 없어서 그런지 더욱 추워보인다.
늘 에어컨을 틀어놔서 시원했던 책방 안이 손이훈 때문에 온기있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그저 황량하게 느껴질 뿐이다.


“어? 재현씨?”


기적은 그 때 일어났다.
손이훈이 내 앞에 있었다. 그는 내가 왜 여기있냐는 의문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마저 너무 사랑스러워서, 당장이라도 홧김에 안아버릴 뻔했다.


“무슨 일이세요?”
“아... 혹시나 해서요. 문 닫은 줄 알았어요.”
“아까 닫았는데, 실수로 두고온 게 있어서요.”


손이훈은 안에서 노트북을 금방 꺼내왔다. 책방 안이 어두운데도 척척 들어간다.
나는 차마 보고싶어서 왔다는 말은 할 수가 없어서 밖에서 머뭇거리기만 했다.


“보고싶은 책이라도 있었어요?”


책이 아니라, 당신을 보고 싶었어요.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취한 김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 술냄새 풍기면서 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중 가장 최악인 말을 했다.


“저 하루만 재워주세요.”


6
이번 화 신고 2019-03-25 17:48 | 조회 : 1,375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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