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무슨 일 있었어?”


사람 기분 하나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승희는 이리저리 내 얼굴을 살피더니 뭔가 눈치를 챈 듯이 말을 했다.
괜히 말하고 싶지도 않고, 아직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 일단 고개를 저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게 전해졌는지 승희는 그저 고개만 으쓱 해보이고는 말았다.


“그냥 말이 없길래.”
“언제는 뭐 많았나.”
“하긴 그건 신하림이나 그렇지.”
“그치.”


괜히 나 때문에 친구까지 우울해지는 건 보고싶지 않아서 애써 괜찮은 척 했다.
하지만 사실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 까지도 나는 결정하지 못했다.
오늘 책방에 가야할까, 말아야 할까.


사실 아침에 문자가 한통 와 있었다.

-어제 저 때문에 고생했죠? 죄송해요.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 잊어버린 것 같은데 나는 차마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물어보고 싶었다.
그 재민이라는 사람, 누구에요?


한참을 답을 안하니까 이훈 씨는 의아했는지 저녁에 한통을 더 보냈다.


-나 무슨 실수했어요?-


실수...일까요.

실수라면 내가 그 책방을 찾은 게 실수가 아니었을까.
나는 또 고민하느라 답장을 못했다.
아무래도 어제 자기가 실수를 해서 내가 정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 오해는 풀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하루종일 폰만 붙들고 있으니까 오히려 공부가 더 안됐다.
그 책방은 독서실처럼 조용해서 왠지 공부도 술술 잘됐었는데.

나는 그 사람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괜히 열심히 하는 척을 하다가 진짜 생각보다 많은 범위를 풀고 와서 놀랬던 적도 있었다.
내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또 왠지 모르게 아련했다.
설렘은 왜 항상 절망과 함께 찾아오는 것일까.


“에라, 모르겠다.”


일단 부딪히자.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가보기로 했다.
가서 공부도 하고, 얘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할거다.


*



“안녕하세요.”


엄청 떨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분한 음성이 나왔다.
그 사람은 인사보다는 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루종일 아무 연락이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답장은... 죄송해요.”


아무래도 읽씹은 너무하긴 했지.
혼자 얼마나 이런저런 상상하고 있었을까.


“경황도 없었고, 뭐라고 답장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나 어제 실수한 거 맞구나! 그쵸?!”


어지간히 걱정이 됐는지 안절부절 못한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워서 좀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실수한 건 아니고...”
“그럼요?”
“재민이가 누구에요?”


그걸 묻는 순간 우리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훈씨는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실수했다.

나는 그걸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쉽사리 말을 안해줄 걸 각오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오랜 침묵이 있을 줄은 몰랐다.

늘 밝고 다정해보이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차가운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나도모르게 기대를 하고 있었나보다.
별 사람 아니에요, 같은.


"...긴 얘긴데, 들어주시겠어요?"



나는 시험 직전 펜을 잡는 순간보다 더 떨렸던 것 같다.


6
이번 화 신고 2019-03-10 00:39 | 조회 : 1,698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참고로 19랍니다! 너무 순수한 내용으로 아시는 분들 계실까봐...ㅎㅎ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