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실 이만큼 친해졌으면 남자 사이에 번호 물어보는 것 쯤이야, 그냥 친한 형동생 사이처럼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저 잘지내고 싶은 한 후배처럼 다가갔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떨려서 턱이 덜덜 떨리기까지 하는 이 순간이다.


“번호요?”


혹시 번호는 너무 사적이라서 알려주기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내색하지 않으면서 알려줘도 사실은 싫은 거면 어떡하지.
나는 지나치게 불안해했다. 습관처럼 또.


“물론이죠!”


긴장이 탁, 하고 풀린다.

그는 내 속도 모르고 폰을 건네는 손을 보며 왜이렇게 떠냐며 살짝 손을 쥐었다 뗀다.
그의 손이 내 손을 쥐는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시간이
멈춘 듯이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뭐해요? 안들어오고?”


내 손안엔 이미 그의 손이 아닌 핸드폰만 잡힐 뿐.
나는 그 1초의 그 순간, 그 찰나가 아쉬워서 주먹을 꽉 쥐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오늘 번호, 받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번호를 줬다.
얼마만에 생긴 의미있는 번호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번호도 몰랐었네요.”


그가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아침에 타온 차라고 하면서 줬는데, 아직 따끈하니 좋았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책방 안은 에어컨을 항상 틀어놓고 있어서 시원한 편이었다.


“당연히 알고있는 줄 알았는데,”


그의 책을 넘기는 손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쪽이 당연해서 그랬나봐요.”


그거, 당신 그거 반칙이야.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는 거 반칙 아닌가?
누군가에게 당연한 존재가 된다는 거, 조금은 가까운 관계에 대한 기대를 가져도 되는 걸까.



“...우리 번호만 모르는 거 아니에요.”
“어? 그러면?”
“이름도 몰라요.”
“아?!”


그는 자기 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통화만 누른 상태였다.
내가 통화목록을 보여주며 말하자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크게 터졌다.


“아-하하하하. 진짜 그러네!”


뭐가 그리도 웃긴지 그는 한참을 웃음을 멈추질 못했다.
어리둥절해서 가만히 있자 그가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웃기지 않아요?”
“뭐가 그렇게 웃겨요-”
“우리 이렇게 친한데 이름도 모르고 있었어!”


‘이렇게 친한데’
나는 그 말밖에 안들렸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해줬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았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입꼬리가 주체가 안된다.
나도모르게 씨익 웃으니까 그가 나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치! 웃기지 않아요? 하하하하-”
“흐흐, 그러네요.”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한참이나 웃었다.
같이 이렇게 크게 웃은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이훈. 손 이훈이에요. 내 이름.”


이훈, 손 이훈.

이름도 예쁘고 부드럽다.
그의 따스함과 잘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평생 뇌리에서 지울래야 지워지지 않을 듯이
나를 괴롭힐 이름일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는 도 재현이에요.”
“재현씨? 이름 너무 예쁘다.”


이훈씨가 더 예뻐요.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이 훨씬, 훨씬 더 예뻐요.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요.


벅차오르는 행복에 오늘은 잠을 못잘 것 같다.



*



“.......”
“뭐.”



이유는 알겠지만 괜히 모르는 척 했다.
룸메가 나를 저렇게 한심하게 보는 건 주체 안되는 입꼬리 때문이겠지.


“야 그러다 입 찢어져.”
“안찢어져.”
“아 짜증나!”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해도 말 안하고,
입은 귀에 걸려서는 핸드폰만 보고있으니 궁금할만도 하지.

번호를 저장하자 메신저에 자동으로 그가 친구추가가 됐다.
손 이훈, 이름은 누가 지어줬을까?
부모님? 조부모님? 아니면 작명소에서?

누가지었든간에 노벨문학상 받아야 한다.
사람을 이렇게 감동시키는 이름을 짓다니.


“아악!”

프로필 사진 왜이렇게 멋있어.
책 읽는 사진으로 해뒀는데 진짜 잘생겼다.
아니 잘생겼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나는 연예인 보면서 찬양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됐다.
이게 연예인 할 얼굴이 아니면 뭐야...


“하.....”


이젠 포기라는 듯이 룸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조용히 이어폰을 꼈다.
이내 승희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아무래도 도재현 드디어 미친 것 같애.”

“어, 장난 아니야. 나 너네 집 가면 안되냐?”

“진짜라니까!! 쟤 무슨 사이비 만난 거 아니야?!”
“야!!”


듣자듣자하니까.
물론 나도 지금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훈씨보고 사이비라니!


설레서 잠못이룰 줄 알았던 그날 밤은 결국 룸메와 그렇게 한창 싸우다가 지쳐서 잠에 들었다.
꿈에도 찾아와주길 바랐는데 그거까진 욕심이었나보다.


10
이번 화 신고 2019-02-24 04:10 | 조회 : 1,697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재현이 사랑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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