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혹시 여기 야한책도 팔아요?”
“네?!”


내 물음에 화들짝 놀라면서 보고있던 책을 탁, 놓친다. 책이 저절로 덮이면서 툭, 하는 소리를 냈다.

얼굴이 벌게진 책방 주인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린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겠단 눈빛으로 ‘왜요?’ 하는 표정을 짓자 어버버 하면서 설명을 하느라 애쓴다.


“어, 어… 좀 수위가 있는 작품을 원하신다면 그쪽에 보면 <은교>나…”
“아니아니, 아예 성인 소설이나 성인 만화요.”
“예에?!?!”


내가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줄 알겠다, 이 사람아.
반응이 너무 웃겨서 한술 더 뜨니까 아예 대놓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 진짜 웃겨.
얼굴이 빨개졌을 뿐만 아니라 아예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끅끅 거리며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주인은 머뭇머뭇 거리면서 카운터에서 빠져나와 한 쪽 구석을 가리킨다.


“아, 여, 여기에…”


뭐야, 진짜 있네.
은근히 있을 건 다 있는 모습에 뭔가 웃겼다. 주인은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다는 듯이 책들이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살짝 가리킨다.
딱 봐도 아무도 건들이지 않아 그쪽만 반짝거리고 무슨 새 거 같다.


“천, 천천히 고르세요…!!!!”


하고는 후다닥 다시 카운터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귀까지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고 허겁지겁 책을 다시 편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찾으려고 뒤적뒤적 거리면서 뻘뻘거리는 게 너무 웃겼다.


“저기,”
“흐에엑!”


아주 대놓고 변태 취급을 하네.
아무거나 한 권 꺼내서 말을 거니까 아주 기겁을 한다.


“푸학!”


결국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니라고 하면서 다시 책을 꽂으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기겁을 했는지 이제야 눈치 챘다.
성인 만화책이었는지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얼굴에 홍조를 띈 캐릭터가 거의 발가벗은 채로 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제대로 오해할만 하네.


“아니, 아이고야… 죄송해요. 그냥 장난이었어요.”
“네?”
“그냥 분위기 풀어보려고 장난친건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저렇게 사진이 있을 줄은…”
“아니에요. 그런 취향이실 수도 있죠.”


애써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데 억울해 죽는 줄 알았다.
진짜 아닌데!!


“어, 진짜 그게 아니라, 정말 장난이에요!!”
“아…! 네! 괜찮아요!”


뭐가 괜찮다는 건지 손사레까지 치면서 나를 멀리한다.
나는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정말 아무 정보나 막 흩뿌렸다.



“저 진짜 야한 거 찾으러 온 게 아니라 그냥 책 읽을 만한 카페 찾다가 여기까지 온건데 뭔가 책방 처음이기도 하고, 말 한번 걸어보고 싶어서 분위기 풀어본다는 게 그만 저런 책까지 고르게 된 거예요..! 아니 진짜 알아서 고른 건 아니고……”



구구절절도 이런 구구절절이 없다.
나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내 처지가 엄청 비참하다는 걸 느꼈다.
뭘 얻기 위해 이런 장난까지 쳤나.


“크하하!!”


이번에는 내가 아닌 책방 주인의 웃음이었다.
결국 그도 나처럼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안도감에 땀이 뻘뻘나고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같이 하하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오해는 풀린 거겠지? 진짜 억울해 죽는 줄 알았네.


“만약 진짜라고 해도 괜찮아요. 다양한 취향이 있는 거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정말 아니에요...”


그렇게 말문을 텄다.
결과론적이지만, 꽤 해볼만한 장난이었던 것 같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퍽 친근하게 책방 주인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그는 말 주변이 있었지만 절대 언성을 높이질 않았고, 말하면서 쉽게 흥분하지 않았다.
웃음이 많은 사람 같았지만 말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짧은 사이에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 근방에 있는 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을 말하자 그가 반가워 하며 자신도 그 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해줬다.


“제가 다닐 때는 그 주변에 뭐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거의 논 밭이었지.”
“정말요?”
“네. 그렇게 술집도 많이 생기고, 노래방도 생긴 게 아마 지하철역 들어오면서부터 일거에요. 저는 그 해에 졸업했지만.”


학교 얘기도 하고, 주변에 진짜 조용한 곳이 없다는 거에 공감도 해주고.
나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내가 오늘 처음 본 그 사람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에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걸어서 30분동안 다시 기숙사를 향해 가야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학교 여기서 좀 멀지 않아요? 밖이 너무 어두운데?”
“괜찮아요. 금방 가요.”


시계를 보니 벌써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내가 헉, 하고 놀라자 책방 주인은 그것보라는 듯이 씩 웃었다.
뭔가 내가 가도 아쉬울 것 없다는 듯한 미소라서 속이 상했지만, 이런 책방이 밤 늦게까지 할리는 없으니 더 이상 민폐끼치고 싶지 않았다.


“내일 꼭 또 올게요!”
“네, 또 오세요.”


지극히 평범한 작별인사.
나는 순간 내가 특별한 그 어떤 것도 아니면서 또다른 인사말을 기대했다는 것에 스스로가 놀라웠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는 건지. 또 내일 오면 뭘 할 거길래 또 온다는 말을 해 버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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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3 04:53 | 조회 : 2,631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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