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 시끄러.”


날씨가 좋다보니 바깥으로 트여있는 카페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고즈넉한 노을 아래 행복해보이는 사람들. 그런데, 그 행복이 너무 투 머치 한 듯 하다.
나는 심하게 깔깔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북적거리는 곳을 싫어한다. 방금은 좀 까탈스러워 보였을 법한데, 그냥 어렸을 때부터 귀가 좀 예민해서 저렇게 째지는 웃음 소리나 시끄러운 걸 못 견딘다.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한 권 읽을 만한 카페 하나가 없었다. 이렇게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은데 어쩜 그렇게 다 시끌시끌한건지.

이쯤되면 궁금할 수도 있다. 왜 집에는 안가냐고?
기숙사 룸메이트가 웬만한 수다쟁이가 아니니까. 아마 걔 얘기 들어주려면 여기 있는 아무 사람 열 명 갖다 둔거랑 똑같을 거다.

들어주고 장단맞춰주면서 얘기하는 것도 너무 체력 소모가 심해서, 나도모르게 자꾸 기숙사에 늦게 들어가버릇했다. 어차피 책 읽거나 공부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가서 잘 때쯤에 들어가면 됐다.


“여기가 어디지?”


정말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기만 하다보니까 익숙했던 가게 간판들은 없어지고 원룸촌을 지나 약간 허름한 골목길이 나왔다.
학교가 들어오기 전에 여러 가게가 있었던 곳 같은데, 학교가 생기고 상권이 더 학교 주변으로 바뀌게 되면서 많이 사라지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이런 곳이라면 하나 쯤은 내가 원하는 조용한 카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풀어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다.
이런 내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골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간간히 남아있는 가게들이라고는 철물점이나 편의점 등 별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네…”


그냥 내가 카페를 하나 차릴까 싶어서 그냥 돌아가려는데, 아직 불이 켜진 곳이 하나 남아있었다.
마지막 희망이다 하는 마음으로 가봤는데, 카페는 아니고 웬 낡은 책방이 하나 있었다.

<별빛 책방> 이라는 이름의 간단하고 예쁜 이름이었다.
심심한데 한 번 들어가기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약간 뭔가에 홀렸던 것 같다.


거의 다 진 노을, 깜빡거리며 켜지는 가로등, 눈이 편한 그 베이지색 조명,
그리고 그 안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는 책방 주인.


“…어서오세요.”


뭔가 인사하는 반응이 느린 것 같은데.
손님이 없어서 그런가 낯선 사람이 방문했다는 거 자체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책을 대충 정리하고 있던 주인은 바로 카운터로 다다다, 달려가더니 가만히 내 모습을 흘깃거리며 지켜보았다.

주인이 쳐다보는 게 약간 부담스럽긴 했지만, 가볍게 둘러보기만 하고 바로 나가야지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그냥 책을 둘러보았다.
대체로 깔끔했고, 외관에서는 못느꼈던 세련됨이 느껴졌다.
원목 책꽂이에는 하나하나 정리해놓은 분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외국 소설, 국내 소설, 외국 수필, 시집, 옛날 만화책…
꽤 여러종류가 있었다. 중간중간 써있는 안내판들을 보니까 서점이 아니라 대여해주는 곳 같았다.
시집 코너에 가서 기웃거리면서 흘금 카운터를 보니까 주인은 내가 알아서 책을 고르는 걸 보고 다시 자기 책에 집중한 것 같았다.

책에 집중하고 있는 그 모습이 좋아보여서, 나는 오히려 내가 주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이는 나랑 비슷해보였다. 혹은 좀 더 위? 아무튼 젊었다.
벌써부터 이런 작은 책방을 차리기에는 어려보이는데, 뭐 어렸을 적 꿈이 책방 주인이라던가 그랬던 걸까? 여기 있는 책들은 다 자기 취향인건가?

혼자 머릿속으로 물음표만 수십개 그리면서 기웃거리다가 결국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기 야한 책도 팔아요?”

16
이번 화 신고 2019-02-03 04:26 | 조회 : 3,214 목록
작가의 말
천재일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