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오타쿠

주먹이 너무나 아팠다. 집에 돌아와 봤더니 주먹이 살짝 찢어져 있다.
평생 단 한번도 누군가를 때려본 적이 없는 주먹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리고 평생 경험하지 못한 흥분감이 밀려온다.

게임에서 수많은 몬스터와 대악마 데이모스까지 해치웠었는데 한번도 현실속에 사람을 때리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현실가상게임으로 전환된 [리버스]를 진행하자 내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았다.

약육강식의 아메바세계, 아메바들을 유인해서 아메바를 해 치우며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갈망이 솟구쳤는지도 모른다.
게임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나는 나를 괴롭히고 때려왔던 이재민에 대해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내 삶에, 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이재민에게 최소한 경고라도 해줄 생각으로 녀석의 집앞에서 기다린 것이었다.

전 같으면 그런 비슷한 일이라도 생겼다면 무서워 밤새 떨었겠지만 지금은 미묘한 쾌감과 함께 흥분이 된다.
내 세포 한알 한알이 생존을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용기가 그런 생각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메바 게임을 한 이후 본능적으로 솟구쳐 오른 욕망이었다.

재민이는 분명 복수를 할 것이다.
예전에는 상대방이 화를 낼까봐 잔뜩 움츠리고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두려움보다 살아야겠다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강했다.
아니나 다를까? 밤 11시 재민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니네 집 앞이다. 나와! 안 나오면 내가 쳐들어간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와 아파트 단지로 나갔다. 거기에 재민이가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이 새끼가 미쳤냐? 이게 디질라고..”

재민이가 나를 보자마자 주먹질을 했다. 난 몸을 숙여 그 주먹을 피했다.

“어쭈 피해?”

어이없어 하는 재민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붙고 싶으면 조용한데로 가자.”

“뭐, 뭐라고 붙어?”

내 입에서 나온 말에 재민이는 무척이나 놀란듯 했다. 솔직히 나도 놀랐다.
아파트 단지 입구, 밤이라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 재민이에 앞서서 성큼 성큼 걸어가 놀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재민이에게 돌아서서 반창코를 붙인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너 지금 돌았냐? 나랑 해보겠다는 거냐?”

재민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왜 막상 붙자고 하니까? 쫄리냐?”

내 말에 기가막히다는 듯 콧방귀를 낀다.

“그래···수능 끝나고 미친놈들 많다더니···미친놈한테는 매가 약이지. 에잇.”

재민이는 마치 경공을 하는 것처럼 3미터는 떨어진 공간을 훌쩍 넘어와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이어서 미쳐 피할 수가 없었다.
한대를 맞고 정신을 못 차리는데 동시에 반대편에서 훅이 날아온다.

[팍, 팍, 팍]

소나기 같은 펀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안경은 어느새 날아가 버렸고 얼굴은 퉁퉁 붓고 코피가 났다.
그 사이에도 재민이의 펀치는 계속해서 날라온다. 난 가드를 올리면서 재민이의 편치를 맞으면서 재민이를 노려봤다.

“으아악 퍽”

빈틈을 노려 마구잡이로 휘두른 펀치가 정확히 재민이의 코를 때렸다.
나만큼이나 재민이도 놀랐던지 흐르는 코피를 손으로 닦아 내더니 표정이 변한다.


“이게 정말 오늘 죽을 려고···”

[퍽 퍽]

재민이는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내 펀치를 연달아 맞는다.
아까는 방심한 재민이를 때린 거지만 지금은 싸우는 와중에 펀치를 때린 것이다.

재민이를 넘어서야 살 수 있다. 재민이의 폭력을 이겨내야 살 수 있다.
아니 적어도 과거처럼 얻어터져 무서움에 벌벌 떨지는 말아야 했다. 그 간절함이 나를 독하게 만들고 강하게 만들고 있다.

한쪽만 맞게 되면 일방적인 폭행이 되지만 서로 때리고 맞으면 싸움이 된다.
그렇게 몇대 재민이의 얼굴을 때리자 전처럼 막무가내로 덤벼들지 않는다.
난 대여섯 대를 맞더라도 한대만 때리면 되었다.
펀치의 강도는 다르겠지만 멍청하게 서 있는 채 또는 쓰러진 채 가드만 올리고 맞고만 있던 어제의 찐따 오타쿠 권오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주먹질을 하면서 싸웠다.

“야 니들 뭐야?”

어떤 덩치 큰 아저씨가 우리 둘을 발견하고 소리를 친다 그 바람에 우리는 후다닥 도망을 가야 했다.
밝은 곳으로 나오자 재민의 얼굴엔 이곳저곳 상처들이 나 있었다. 재민이 얼굴이 저정도면 내 얼굴은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다.

“너 이새끼, 너 뒈졌어 이 새끼야.”

재민이가 도망가면서 나를 협박한다. 그 모습이 웃기게 보인다.
입술이 찢어지고 눈은 부어 있고 코피자국을 얼굴에 묻힌 놈이 하는 협박이다.

‘내가 저런 놈에게 5년 동안 얻어맞고 다녔다니···’

“시끄러 이 새끼야.”

“뭐?”

재민이를 향해 나온 내 욕지거리에 재민이가 바짝 약이 오른다.

“이게 디질라고 말 다했냐?”

“억울하면 한 판 더 뜨던가.”

일주일에 한번씩은 이렇게 맞았었다. 맞는건 일상이었지만 때려본 적은 없었다.
재민이의 얼굴을 보고 깨닳았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건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는 걸, 오히려 재민이가 같잖아 보였다. 지가 나를 몇대 더 때릴 순 있을 지 몰라도 그러면 지도 맞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그 권오성이 아니다.
내 말에 재민이가 오히려 움츠러 든다.

“석찬이 앞에서도 그럴 수 있는지 두고보자.”

재민이가 썩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말한다.
난 석찬이라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그러던지 말던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재민이에게 돌아서서 집으로 향해 가면서 다시 두려워졌다.
석찬이는 180에 90킬로그램, 복싱으로 다져진 재민이 따위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 놈이다.
전국체육대회를 준비하다가 인대만 끊어지지 않았다면 미들급 메달을 땄을 놈이다.

석찬이가 학교 앞에서 아이들 삥을 뜯던 동네 양아치 다섯을 한방에 한명씩 주먹질 다섯방에 골로 보냈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퍼졌다. 위빙으로 상대의 주먹을 피하면서 떨어져있는 다섯명을 눕히는데 딱 2초가 걸렸다고 했다. 다시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왠 일로 이렇게 ?n게 들어와?”

집안에 들어오는 내게 엄마가 묻는다. 시간은 벌써 새벽한시가 넘었다.

“아빠는?”

“아직”

요즘 갑자기 흰머리가 많아진 엄마의 얼굴이 더 나이들고 초췌해 보인다.

“또 맞은거야?”

“아니야.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얼굴이 엉망인데”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도 돼.”

나는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행이 안경은 깨지지가 않았다. 오랫동안 맞으면서 내 몸보다 안경부터 챙겨보는 습관이 잡힌 것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오른쪽 눈과 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내가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평생 처음으로 남자가 된 것처럼 느꼈다.
두려움에 올라가보지도 못했던 담을 뛰어넘은 것 같았다.

‘석찬이 앞에서도 그럴 수 있는지 두고보자.’

재민이가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러자 어깨를 펴고 기세 등등했던 권오성은 사라져버리고 다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권오성이 나타난것 같았다.

***

새벽이 다 되어서야 아빠가 들어오시는 문소리를 들린다.
그 동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들에 대해서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엄마와 아빠의 애정과 헌신, 제대로 사람노릇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 하나하나 돌아보면 마구 헝클어져 있어서 어디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럴때엔 외면을 하고 모른 척 했다. 그래도 되었다.

난 찌질이 오타쿠 권오성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왜 그런지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게 무엇때문에 그런 것인지 찾고 있었다.

‘아빠 미안해.’

난 꺼내지도 못할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잠에 들었다.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엔 모두가 사라지고 난 뒤였다.
일어나자 마자 얼굴이 너무나 아팠다.
거울을 보자 어제보다 붓기가 더 커졌고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대강 챙겨먹고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지금 내게 일어나는 변화, 그 원인이 리버스게임의 현살가상모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달려가듯 PC방에 도착해 [리버스]에 접속했다.

꽤 여러가지를 선택하고 클릭해야 게임에 들어가는 가상현실모드와 달리 현실가상모드는 게임 접속만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편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


높은 산과 나무들, 구름위에 까진 솟은 봉우리들이 삐죽 삐죽 솟아있는 산중은 마치 그림에나 나올법한 전경이다. 나는 시작하자마자 그림 같은 전경에 넋이 빠졌다.

“딱”

“아야!”

왠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내 머리를 때린다.

“물길어 오라는데 뭐하는 거야? 목이 마르다.”

“저, 저보고 하신 말씀인가요?”

“그럼 네놈 말고 여기 누가 있어?”

손바닥을 펼쳐 손을 보았다. 다행히 이번엔 사람이었다.
무슨 만화처럼 좁은 산꼭대기에 평평한 공간이 있고 초가집 같은 집이 있다.
한쪽 편에 나무로 만든 물통 두개가 보인다. 물통을 드니 화살표가 등장을 한다.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따라 갔더니 커다란 원기둥처럼 된 산을 빙글 빙글 돌아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내려가려고 하는데 잘 내려가 지질 않는다. 내가 반쯤 의자에 누워있는 자세여서 그런 듯 했다.
할 수 없이 가상게임용 무빙워크(바닥이 둥근 공처럼 되어 제자리에서도 걷거나 뛸 수 있는 기계)위에 올라서서 걸어가자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지름 30미터쯤 되는 거대한 원기둥을 다섯 바퀴 정도 돌아 바닥에 닿았다.
다행히 물을 길을 수 있는 곳은 가까이에 있었다.

물통에 물을 담아 양손에 들려고 할 때였다. 물통의 무게가 10킬로는 되는 것 같았다.
가상현실용 끼운 장갑이 무거워졌다. 아마도 전기와 자기장을 이용한 듯 했다.
한쪽에 10킬로짜리 물통 두개를 들고 계단을 하나씩 올라 가야했다.

“이런”

“퍽”

반쯤 올라갔을 때 손에서 미끌어져버린 물통 하나가 아래로 떨어져 버린다.
다시 내려가 줏어갈까 하다가 한 통만 들고 간신히 정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리줘봐 목이 몹시 마르구나.”

고생했다는 말도 없이 노인은 물통 째 들고 꿀꺽꿀꺽 마셔 물통 하나를 모두 비워 버린다.
지켜보고 있는 내가 기가 막혔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고생해서 들고 온 10킬로짜리 물 한 통을 다 마셔버리다니···

“뭐해? 물 떠오지 않고”

물을 다 마신 노인이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좀 전에 물 떠왔잖아요.”

“그건 다 먹었잖아. 밥 안 할 거야?”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노인의 표정이 퉁명스러워서 뻔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딱”

“아”

노인은 내가 꾸물거리자 지팡이로 또 내 머릴 때린다. 그 촉감이 그대로 센서를 통해 내 머리에 전달되었다.

“빨리 물 길어와서 밥하라고 이놈아.”

나는 할 수 없이 물통을 들고 게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딴지와 허벅지가 알이 배긴듯 아팠다.

‘아니 무슨 게임이 이래? 이걸 돈 주고 해야 하다니 노예도 아니고..’

물통을 들고 내려오면서 짜증이 났다. 나는 원래 하늘을 날아다니던 [리버스]의 최강캐, 500명이 넘는 콘키스타 길드의 가이아스 사령관이었다. 한번 칼을 휘 저으면 몬스터 100마리가 죽어나갔고···대악마 데이모스도 내 폭열참에 희생이 되었···

“빨리 안 내려가냐?”

노인의 고함소리에 중얼거리던 나는 허겁지겁 아래로 달리듯 내려갔다.
물을 퍼 옥상으로 올리자 땔감이 필요했다. 도끼로 나무를 패고 장작을 만들어 불을 지피고 밥을 했다.
선반에 있는 장아찌 몇 개와 밥을 담아 상을 차리자 그제서야 노인이야 흡족해 하며 말한다.

“넌 이제 가서 쉬어도 좋다.”

그 말에 [리버스]게임을 로그아웃하고 PC방을 나올 수 있었다.
온 몸에 알이 박혀 걷는것 조차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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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1 08:54 | 조회 : 1,03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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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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