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오타쿠

난 인생의 패배자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사회에서도 쓰레기였다.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거나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이 넓은 세상에 내가 편히 숨쉬고 있을 공간이 없었다.
모두 나를 혐오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정상적으로 살면 되잖아, 니가 어리석은 짓을 해서 그런 거잖아.’

후후, 말을 참 쉽게 한다.
도벽이라는 말이 있다. 도둑질이 습관이 되는 걸 말한다.

난 세상의 모든 뽕쟁이들과 도벽이 있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도둑질을 하기 전이나 약을 하기 전에 그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아는가?
그들은 숨이 막히는 일상을 질식하듯 살아간다. 그러다가 물건을 홈쳐야 겠다고 마음 먹을 때, 약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을 때 그들의 심장이 비로소 쿵쿵 뛰기 시작한다.

심장의 박동은 빨라지고 머리속의 신경은 한껏 고조되어 팽팽해진다. 도둑질을 완료했을 때, 약물을 몸에 넣었을 때에야 비로소 불안함에서 벗어나 나른한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만명중에 한명은 스스로 벗어나올지 모르겠지만 대다수는 혼자 힘으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범죄자가 되거나 약쟁이가 되어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게 될 운명인 것이다.

내겐 [리버스]가 그랬다. 2년동안 내 삶의 모든 것을 갈아넣었고 모든 걸 완료 한 후 죽으려고 했었다.
번개탄과 수면제와 소주, 청테이프를 준비하고 버려진 창고나 차를 찾아다녔다.
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그런 끔찍하면서도 확실한 방법들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소심하고 찌질했던 나는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조차 두려웠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겠다는 내 계획마저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 [리버스]에선 모든 걸 진두지휘하는 게임속 최강의 캐릭터 가이아스이자 최강의 길드 콘키스타의 사령관이었지만 현실에선 양말 한짝 찾아 신지 못해서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한심한 찌질이 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내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가상현실게임 [리버스]에서 내 모든걸 초기화시키고 ‘현실가상게임’모드로 전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분명 선택창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만약 ‘No’를 눌렀더라면 나는 리버스의 최고 캐릭터로 계속해서 떵떵거리며 살아갔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더 엉망이 되어버렸을 테지만,

왜 그랬는지 나는 ‘Yes’를 눌렀다.

그리곤 [리버스]는 다른 게임이 되어 버렸다.

게임속의 나는 마치 2차원 공간처럼 바짝눌린 세계에 존재하는 이상한 생명체였다. 슬라임 같기도 하고 아메바같기도 했다. 형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듯 몸의 일부분이 늘어나기도 하고 느린 속도로 움직이기도 했다.

그런 원시적인 생명체에는 눈이 없을 텐데 게임속의 생명체는 사방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뿌연데다가 올록볼록한 렌즈가 눈앞을 가린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과장되거나 찌그러졌다.
시원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칼질 한방으로 몬스터부대를 초토화 시키던 가이아스는 사라져버리고 원시의 단세포 생명체만 남은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Yes’버튼을 누른 내 손가락을 저주했다. 이걸 왜 해야하는지 의문과 짜증이 들었지만 그래도 뭔가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멈추지 않고 진행해갔다.

내가 변신한 아메바는, 아메바인지 아메바가 아닌지도 불확실하지만 아메바라고 하자.
처음에는 그저 시작 지점에 머물러 있다.
내가 움직이면 꾸물꾸물 움직이곤 하는데 이동 속도가 너무나 느렸다.

아메바가 있는 곳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토굴같은 곳이었는데 울퉁불퉁 튀어나온 벽들을 지나가면 가끔씩 넓은 공간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이동하면서 파란색이나 녹색으로 빛나고있는 영양소를 먹는것이다. 그러면 이동속도가 더 빨라지고 몸이 더 커진 것 같았다.
반대로 자칫 잘못해서 녹색과 파란색의 영양소의 옆이나 뒤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빨간색을 먹게 되면 이동속도도 느려지고 몸이 작아진다.

그곳엔 게임속의 나와 비슷한 형태의 놈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약하고 힘이 없는 놈은 잡아먹을 수가 있었다.
나보다 크고 강한 놈에겐 잡아먹힐 수 있어서 도망가야 했고 비슷한 크기의 놈들하곤 꽤 오래 싸운후 잡아먹거나 먹힐 수가 있었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단세포 동물 아메바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힘을 키운 아메바는 둘로 분열을 해 둘이 함께 다니기도 한다.
심지어는 셋이되기도 넷이되기도 수십 마리의 부대 단위가 되기도 한다.

열번쯤 먹히고 양분이 되어 녹고 난 다음에야 게임 규칙을 알게 되었다.
먹히지 않고 몸을 키워 상대를 먹어치우는 것, 그렇게 분열을 계속해서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이 게임의 승리조건이었다.

약하면 먹힌다.
양분을 먹지 못하면 먹힌다.
빨간약을 먹게되면 약해져서 먹힌다.
같은 하나라도 더 강하면 상대를 먹을 수 있고 상대보다 숫자가 하나라도 많으면 상대를 먹을 수 있었다.

마치 현실세계처럼 느껴졌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짓누르고 부와 권력을 차지하는 현실 세상과 다를바가 없었다.

결국 영양소를 먹고 약한 놈을 잡아먹으면서 갖은 애를 다 써가며 일곱 마리까지 분열을 했지만 아홉 마리로 분열한 놈의 습격을 당해 잡아먹혔을 때 게임을 포기하고 나와야 했다.

새벽 1시, 엔젤리너스 PC방을 나와 터벅 터벅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추웠다.

한 손으로 흘러내리는 바지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몸을 감쌌지만 삐져나온 뱃살과 양말을 신지 않은 발가락이 너무나 추웠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집으로 들어왔다. 아빠 신발이 없었다.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아빠는 밤이면 돈을 벌기 위해 대리운전을 하신다.

밥통에서 밥 한공기와 스팸 하나를 들고와서 거실로 가져온다. 오늘 제대로 먹는 유일한 식사다. 이런데도 어떻게 살이 빠지지 않는지 그게 신기하다.

밥을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길드 게시판을 살펴보자 게시판은 난리가 나 있었다.
데이모스를 잡은 기념으로 길드원들이 오프라인으로 만나 축하파티까지 열었는데 데이모스를 죽인 영웅, 콘키스타 길드의 사령관이었던 가이아스를 찾아야한다는 글이 게시판에 도배가 되어 있었다.

만약 내가 그들의 눈앞에 정말로 나타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안다.
현실의 못난이 오타쿠보다 게임속의 영웅 가이아스로 나를 추억하는 게 그들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보길 원하는 가이아스는 이제 아메바에 불과하다.

[가이아스님 사랑해요.]

[22살 168, 52킬로 00여대생, 가이아스님 나랑 사겨요.]

[당신에게 내 인생을 겁니다. 제가 남자라도 받아주실 거죠?]

내게 온 쪽지도 수십통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쪽지를 읽으며 키득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


21평 아파트는 방이 두개다. 원래 내 방이었던 곳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고3에 올라가는 연지의 방이 되어버렸다. 나는 거실소파에서 잠을 자야했는데 모두의 생활공간이다보니 엄마 아빠가 움직일 때 마다 눈치가 보였다.

“저놈 저거 어떻게 해? 기술이라도 배우던가…”

나를 바라보고 중얼거리던 아빠가 출근을 하고 연지가 학교에 가자 중간에 눈치를 보며 잠깐 깼었던 난 잠을 이어서 잔다.

12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엄마도 어딘가로 일을 다니신다는데 뭘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다.

[오덕아 프라이팬에 햄 있다 데워 먹어라]

핸드폰에 엄마에게 온 문자 한통 있었다.
게임속에선 모두가 보고 싶어하는 가이아스지만 현실에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밥을 먹고 또 다시 난 집을 나선다.

나도 안다. 난 인간 쓰레기다.
자식으로써 오빠로서 그리고 권오덕,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만 그런 생각 이후에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이미 모든 것이 너무나 망가져있었다.

난 다시 습관처럼 에인절리스 PC방으로 향한다. 나를 반기는 유일한 곳이다.
다시 리버스에 로그인을 했다. 하룻밤 사이에 사령관 가이아스는 사라져버리고 로그인하면 쏟아지던 쪽지와 음성메세지도 사라져버렸다.
다시 한마리 벌레가 되어 던전보다도 더 칙칙한 2차원 만큼이나 눌려진 공간에서 살아야 했다.

‘뭐가 현실가상게임이야?’

시작하자마자 리스폰자리에 있던 두 개로 분열된 아메바에 먹혀버린다.
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시작했을 땐 두 개로 분열된 아메바가 없었다.
난 다시 구석구석을 숨어다니면서 영양소들을 찾았다.
그리고선 다른 아메바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먼저번에 본 것처럼 아메바들은 철저히 약육강식의 논리로 움직였다.
분열개수가 더 많은 아메바가 수가 적은 아메바를 잡아먹고 같은 개수면 더 센 아메바가 약한 아메바를 잡아먹는다.
그런데 재미난 현상이 한가지 있었다. 분열되어 개수가 많은 아메바중에 흡수할 아메바가 근처에 없거나 영양상태가 부족하면 분열되었던 것이 다시 합쳐지기도 했다.

게다가 3개나 4개로 분열된 아메바가 영양상태가 좋은 2개로 분열된 아메바에게도 잡아먹히곤 했다.
약육강식의 빈틈이었다.

다짜 고짜 약한 아메바나 영양소를 찾아서 돌아다니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도처에 외톨이 아메바를 노리는 2개 3개짜리 개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면 생명치가 달아서 죽게 되고 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난 영양소가 있는 곳 근처에서 기다렸다.

영양소를 노리고 다가오는 1개짜리 아메바를 덥칠 계획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 숨어 있자마자 영양소를 노리고 생명력이 거의 다 닳은 약한 아메바 한마리가 다가왔다. 힘없는 아메바가 영양소에 거의 다가왔을 때 숨어있던 내가 나타나 영양소를 꿀꺽 삼켰다.

그리고선 힘없는 아메바에게 다가가 영양소가 충분치 않아서 이동속도가 느린 힘 없는 아메바까지 꿀꺽 삼켰다. 온 몸이 에너지로 가득차는 느낌이다.

아메바를 삼키고 분열을 했다. 이제 2개가 되었다.
신기한건 둘 모두 나라는 사실이었다.
분열된 자아가 어떤 느낌인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선 다시 영양소를 찾아서 영양소 옆에서 기다렸다. 3개짜리 아메바가 영양소와 나를 삼키려고 다가온다. 나는 재빨리 영양소를 먹고 3개짜리 아메바를 덥쳤다. 생각했던 것처럼 영양상태가 좋아서인지 3개짜리를 잡아먹을 수 있었다.

이번엔 5개로 분열했다. 그 다음엔 영양소를 찾아다니며 눈앞에 보이는 2개, 3개짜리 아메바를 흡수했다. 어느새 30개쯤 되었을 때 구석에서 괴물같은 아메바를 발견했다.
200개쯤 되는 아메바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장 붙어선 승산이 없었다.

괴물 아메바는 나를 향해 쫓아왔지만 좁은 길로 도망가자 괴물 아메바는 쫓아올 수 없었다.

그걸 보고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30개로 분열이 되었을 때 3개를 떼어놓고 27개는 숨었다.
3개로 분열한 아메바가 10개나 20개쯤 되는 아메바들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27개짜리가 있는 곳으로 도망을 오면 10개나 20개쯤 되는 영양상태가 좋은 아메바들은 3개짜리를 노리고 흡수하기 위해 쫓아온다.

구석을 돌아서자 마자 아메바들은 자기보다 큰 27개짜리와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씩 흡수해 가다보니 어느새 250개짜리 아메바가 되었다.
그 다음 30개 짜리 아메바를 분리해 200개짜리 괴물 아메바를 유인했다.
그리고 30개짜리 아메바를 잡으려고 좁은 통로를 향해 팔을 길게 뻗고 있는 괴물 아메바를 뒤에서 습격해 꿀꺽 흡수했다.

잠시후 모든 아메바와 영양소를 흡수했고 눈앞이 환해지며 게임이 끝났다.



***


“야 이재민!”

재민이가 혼자 걸어오는 걸 보고 언덕위에서 재민이를 불렀다.

“어? 너 왜 거깄냐? 맞고 싶어서 온 거냐 어디 근질근질해?”

재민이는 나를 보곤 희죽 비웃는 얼굴이 된다.

“한 마디만 한다! 너 나 때리지 마라 앞으로.”

난 최대한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으려고 했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의식은 내 몸을 제어하지 못한다.
5년 동안 맞고 지낸 내 습관과 본능이 도망치라고 말을 하고 있다.

“뭐? 한마디만 한다? 이 새끼가 미쳤나?”

재민이가 나를 향해서 언덕밑에서 언덕위로 달려온다.
나는 좀 전에 했었던 게임속의 아메바처럼 허겁지겁 옆에 있는 골목뒤로 숨었다.

재민이가 후다닥 골목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팍!’

내 물주먹이 녀석의 코를 정확히 때렸다.
나를 잡는데에 혈안이 된 재민이는 코너를 돌자마자 내 펀치에 맞을 거라곤 예측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대로 재민이는 발라당 뒤로 넘어져서 언덕을 세바퀴 구른다.

손이 아팠지만 나는 내 손을 보고 놀랐다. 이정도까지 일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순간 재민이가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다시 달려왔다. 그러면 그렇지, 재민이가 내 물주먹 한방에 맞아 떨어질 리가 없었다. 나는 다시 골목으로 도망갔다.

이번에는 재민이도 조심스럽게 코너를 돌았다. 두리번 거리며 나를 찾았지만 그곳에 내가 없었다.
내가 없자 방심이 풀린듯 골목안으로 달려가려고 한다.
그때 숨어 있던 옆집 문을 열고 튀어나와 재민이를 발로 차버렸다.

습격을 당한 재민이는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지고 만다.

내 온 몸에 뜨거운 피가 터져 나갈듯 부글 부글 끓고 있었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그것도 나를 잔인하게 괴롭히던 놈을 줘 패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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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31 09:18 | 조회 : 1,00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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