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오타쿠

한달 게임비 20만원, 보통 2~3만원 하는 게임비의 10배 가까이 되는 돈이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무지개다리와 오로라를 보고 바다위에 쏟아지는 은하수를 보고 있노라면 그돈이 아깝지 않았다.

팔수만 있다면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호가할 5성검 발테리우스를 휘두르는 그 타격감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손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 우수수 쓰러지는 몬스터들, 손짓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발록들···아···

하지만 이제 이상한 현실가상게임에서 성격 괴팍하고 지팡이로 사람을 마구 때리는 노인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삼시세끼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해 와 밥상을 차리고, 중간 중간 목마르다고 할 때마다 물을 길어와야 한다.

미리 해 놓으면 되겠지하고 나무와 물을 길어와봤자 소용이 없었다. 돌아서면 모두 사라져 버린다.

그 생활을 일주일쯤 하자 지쳐버렸다. 온몸에 알이 베겼고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20만원 내고 노예생활을 하다니, 정말 끔찍했다. 혹시 다른 게임을 하려나 하고 접속하면 흰머리의 노인이 리스폰자리에 떡 버티고서 보자마자 물 길어오라고 시킨다.

“얘야?”

오늘 어김없이 하루치 노동을 끝내고 장갑과 무릎 밴드를 풀고 핼맷을 벗었을 때 뒤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이 사람 아닌거 같은데..”

돌아보니 TV에나 나올법한 늘씬한 미녀 둘이 내 뒤에 서 있었다.

“뭐하세요? 여긴 개인 게임룸인데···”

리버스를 하기 위해선 개인별 게임룸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두명의 여자가 나도 모르게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저기, 저 미안한데 물어볼게 있어서 그런데요.”

둘다 키크고 늘씬하고 너무나 예뻤지만 한명은 눈꼬리가 올라간 여우형이었고 다른 한명은 토끼처럼 맑은 눈을 가진 착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네 물어보세요.”

“저 혹시 가이아스···라고 아세요?”

“네~에?”

도대체 갑자기 나타난 이여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리버스의 가이아스 아냐고 묻잖아.”

여우형의 여자가 몰아붙이듯 묻는다.

“가이아스? 리버스의 가이아스면···”

‘난데’라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내가 뜸을 들이자 여우형이 짜증난다는듯 말한다.

“얘 아닌가봐~ 좀 전에도 무슨 노인네 밥 해주는 게임 했잖아. 해커가 말한 IP가 이 PC방이야?”

가상현실게임은 핼멧안에도 보여지지만 모니터에서도 같은 화면을 보여준다. 여우는 그걸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응 분명 여기라고 그랬어.”

“아 짜증나···사령관님은 갑자기 어디로 가버리신 거야. 이 세상을 구하시고···”

“죄송했어요.”

여우형 여자가 문을 열고 나가버리자 토끼형 여자가 내게 인사를 하곤 여우를 따라 나간다.

나는 센서를 다 떼고 어슬렁 어슬렁 PC방을 나섰다.

살짝 돌아보니 두 여자가 PC방 알바에게 열심히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예전의 나는 여자들과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 창피해서 내가 먼저 말을 걸지 못했고 여자애들은 경멸의 표정을 지으며 나를 피했다.

그렇게 잠시지만 아름다운 두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이 그리고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는 것이 기뻤다.

“잠시만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을 닫으려하자 좀 전의 두 여자가 뛰어든다.

그리고선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망할 정도로 둘이서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이 PC방에서 리버스 게임을 하는 건 당신 하나라는데.”

여우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본다.

“가이아스 맞죠? 콘키스타의 대사령관.”

가이아스를 찾겠다는 일념하나로 불타고 있는 집요한 여자들이었다.

그 멋진 대사령관 가이아스가 알고보니 찐따 오타쿠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끔찍한 일이다.

내게도 그대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

“아까 내가 노인 밥해주는 게임하는 거 봤잖아요?”

내 반문에 두 여자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실망한 표정의 여우가 명함집을 꺼내더니 내게 명함을 한장 내민다.

“혹시 리버스 하는 사람 만나면 이리로 전화 좀 줄래요? 우리가 찾는 사람 맞으면 한턱 쏠게요.”

실망한 표정의 두 사람에게서 멀어져 집으로 향했다.

“얼굴은 괜찮은데 옷 입는 스타일은 영 아니야···”

“정말 가이아스 아닌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설마 얼굴이 괜찮다고 한 것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설마 그럴리가 없었다.

[쁘띠앙주 대표 진채영]

명함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가이아스 때문이 아니라면 저런 여자는 내게 말도 걸지 않을 것이다.

***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보다가 난 깜짝 놀랐다.

거울 안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178cm의 키에 105킬로그램, 권오성, 평생 비만이었고 뱃살은 출렁 거렸으며 얼굴은 얻어터지던지 아니던지 항상 퉁퉁 부어 있었다.

게다가 근육이라곤 초등학생보다도 적어서 조금만 걸어 다니면 땀이 비오듯 쏟아졌었다.

그런데 거울속에 갸름한 얼굴의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홀쭉해진 볼과 부푼 눈두덩이가 사라져 커져버린 눈, 그리고 부어있던 볼이 사라지자 나타난 오똑한 코, 이게 정말 나라고는 믿겨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안경을 쓰지 않아도 사물들이 또렷이 보일만큼 눈이 좋아졌다. 게임을 하면서 눈이 좋아지다니.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었더니 온몸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딴딴했다.

꾹 참고 2주 동안 노인의 노예가 되어서 생활했던 댓가였다.

저울을 올라가 몸무게를 재 보았다. 82.5kg,경이적이었다.

2주 만에 22.5kg을 뺀 것이다.

그 망할놈의 영감탱이가 그렇게 심부름을 시키더니 이런 내 몸을 빚어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살만 빠진 것이 아니었다. 무거운 물통과 나무를 들고 몇 백 미터를 오르내리는 바람에 배에는 복근이라는 것이 생기고 알이 배겼던 팔다리엔 찢어질 것 같이 부풀은 근육이 생겼다.

맞는 바지가 없었다. 기존에 내가 입고 있던 추리닝은 너무나 커서 입을 수가 없었다.

장속에서 유행이 한참 지난 아버지의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키가 비슷해서인지 원래부터 내 것 같았다.

옷을 입고 있는데 다짜고짜 엄마가 내 손을 잡더니 소파에 앉힌다.

“오성아 솔직하게 말해봐”

“뭘?”

“너 무슨 일 있니? 얼굴에 상처도 나고 갑자기 홀쭉해져서 엄마가 걱정되어서 말이다.”

“운동해서 빠진거야. 엄마는 살빠진게 싫어?”

“너무 급작스럽게 변해서 어디 아픈가 하고···엄마는 걱정이 되어서.”

그래, 내게는 가족이 있었다. 항상 나를 걱정하고 나를 돌봐주는 엄마, 그리고 폭력적이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빠, 나를 미워하지만 하나 밖에 없는 내 동생.

“엄마 이거 만져봐!”

난 알통을 만들어 엄마에게 보여줬다.

“어머나 세상에···”

내 근육을 만지고선 엄마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열심히 운동해서 살빠진 거야 엄마, 걱정마세요.”

엄마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살아오면서 엄마의 그런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항상 멍든 얼굴로 엄마에게 신경질만 내던 나였다.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엄마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엄마 또 왜 그래?”

“아니야 오성아 엄마가 너무 기뻐서 그래 엄마가···”

***

“야 PC방 알바주제에 어디서 손님한테 대들어?”

“뭐? 야. 오늘 너 덕분에 알바 때려친다.”

피씨방 앞에서 두명의 남자가 싸우고 있다.

한명은 PC알바인데 다른 한명은 처음보는 사람이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남자가 게임을 하며 시끄럽게 욕을 하는 바람에 조용히 해달라고 한 것이 몸싸움으로 번진 것이었다.

“니네 PC방 사장 나오라 그래!“

“좀 전에 때려 치웠다는 소리 못 들었냐? 욕 해봐 해보라고···”

PC방 알바와 남자는 멱살을 잡고 옥신각신 한다. 평소 같으면 모르는 척 지나갔겠지만 난 두 사람이 사이에 끼어서 두 팔로 싸우려는 두 사람을 밀어냈다.

“싸우지 말고 말로 하세요. 말로”

2주 만에 얼마나 강해진지는 모르겠지만 자석처럼 달라붙어 있던 두 사람이 내 손짓에 밀려서 멀찌감치 떨어져 버린다.

그 모습을 출근하던 PC방 사장이 본 것이다. PC방 사장을 발견한 알바가 대뜸 선언을 한다.

“사장님 저 오늘부로 그만 둘래요 나 참 더러워서···일 못하겠어요.”

“아니 무슨 알바가 손님을 이렇게 대해요?”

옥신각신 하는 사람들을 뒤에 남기고 난 PC방으로 들어가 다시 리버스에 접속을 했다.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리스폰이 끝나자 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체력이 좋아 진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훈련을 한번 해 볼까?”

노인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2미터 정도 되는 기다란 막대기 하나를 던져준다.

“아니 거기 말고 끝 쪽을 잡아야지.”

막대기를 받아들자 노인이 친절하게 잡는 부분까지 알려준다.

“자 휘둘러 봐!”

두 손으로 봉을 잡고 휘두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균형을 잡고 휘두르려면 큰 힘이 필요했다.

“흠 얼추 자세는 된거 같으니 내가 던지는 도토리를 쳐 보렴.”

노인은 5미터 정도 떨어지더니 나를 향해 도토리를 던진다.

“아”

도토리가 날아와 내 이마를 때린다.

분명 봉을 휘둘렀지만 작은 도토리를 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 “아”, “아파요”

“맞지 않으려면 때려”

아프다고 말했지만 노인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딱”

마침내 도토리 하나를 쳐 냈다.

“흠 꽤 하는데..”

고작 하나 쳐냈을 뿐인데 꽤 한댄다.

그러더니 도토리를 던지는 속력이 빨라졌다.

몸으로 도토리를 받아내던(?) 나는 쳐낼 수 있는건 쳐내고 쳐낼 수 없는건 위빙으로 피했다.

“요령이 늘었단 말이지. 그러면 이건 어떤가?”

노인이 이제 도토리를 한꺼번에 세 개, 네 개를 쥐고 던진다. 한 번에 날아오기도 하고 시간차를 두고 날아오기도 한다.

“딱 딱 아!”

한 개 또는 두개를 쳐내기는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영락없이 내 이마나 몸에 맞는다.

별거 아닌 도토리가 마치 산탄총에서 나온 총알처럼 따끔하다.

몇 백 개를 맞고 몇 백 개를 쳐 냈을 까?

노인이 바구니 하나에 가득 든 도토리를 비우고서야 한마디 한다.

“밥차려라 배고프다.”

제길 그 소리 왜 안하나 했어.

물통을 들고 물을 길어오고 나무를 해 밥을 차리자 그제서야 쉬라고 한다.

로그아웃을 하고 도토리에 얻어맞은 곳을 비비며 PC방에서 나오려고 할 때였다.

“학생 알바 안할래?”

PC방 사장이 묻는다. 그동안 비주얼이 비호감이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일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제, 제가 해도 되요?”

“그럼 게임 잘 알잖아 못할게 뭐 있어?”

“그런데 자리가 있어요? 다 찼던데”

“좀 전에 자리 났잖아.”

PC방 사장은 아까 손님하고 싸웠던 알바생을 상기시킨다.

“아. 좋죠 저도.”

“그래? 그럼 내일부터 나와 3시에서 9시 타임으로.”

내가 알바를 할 수 있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게임 할 시간은 확보가 되어야 하는데···”

“알바시간 끝나고 해 그건 하게 해 줄께.”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다니 그렇게 일을 해서 돈을 벌수 있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하겠습니다.”

시간당 8500원, 알바자리를 잡았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보잘 것 없는 일이고 선택의 문제겠지만 나에겐 삶의 희열을 느낄만한 중요한 일이었다.

그만큼 내 삶은 움츠러들어 있었고 사람들과 괴리된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핸드폰에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내일 낮 12시까지 분식점 앞으로 나와라.]

강석찬이 보낸 문자였다.

난 다시 과거의 질긴 공포에 사로잡히는 듯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후들들 떨리기 시작했다.

0
이번 화 신고 2019-02-02 09:09 | 조회 : 782 목록
작가의 말
씨에스타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