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오타쿠

“일어나 봐라!”

아빠의 말에 자고 있던 나는 이불을 걷고 앉았다.

“수능은 본게냐?”

“···”

“네가 애들한테 얻어맞고 다닐때에도 참고 기다렸고 고등학교를 그만둔다고 할 때도 네 뜻대로 했다.”

“죄송해요 아빠.”

내 말이 아빠의 질문에 대한 확답으로 들린 것인지 아빠는 인상을 잔뜩 쓰고선 나를 노려본다.

“네가 인터넷으로 장난질을 쳐서 경찰들이 오고 갈 때에···휴우···”

빨개진 아빠의 얼굴,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계신 듯 했다.

“그래도 니 인생을 위해서 수능은 봐야지. 엉? 어떻게 하려고···”

“···”

“말해봐 앞으로 어떻게 할 셈이냐? 그동안 묵묵히 참고 있었다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무슨 대책이 있는 거야? 엉?”

몇년동안 참고 있었던 분노가 한꺼번에 복 바쳐 오른 듯 아빠의 얼굴은 빨개지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터질듯 하다.

“말해보라고 이 자식아!”

아빠가 손을 들어서 나를 때리려는 시늉을 하신다. 어지간해선 그렇게 화를 내시지 않는 아빠가 잔뜩 화가 나신 듯 하다.

“여보!”

엄마가 뒤에서 나타나 아빠를 향해 소리친다. 엄마 또한 놀란 것이다.

“이 자식 수능시험장에도 안 갔어.”

아빠가 씹듯이 진실을 말하자 엄마의 얼굴표정이 절망스럽게 바뀐다.

“자 인생 지 스스로 시궁창에 쳐 박고 있어 이놈이···이런 망할···에잇!”

아빠는 화를 참지 못하고 집밖으로 나가신다.

아빠가 나가자 런닝구와 빤스 바람으로 앉아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바지를 주섬주섬 찾았다.

“아빠말 사실이야 오성아? 수능고사장 안 갔니?”

“네···”

“어쩌려고, 어쩌려고 그래? 온 집안을 이렇게 풍비박산을 내놓고선···”

엄마가 풀썩 쓰러지듯 주저앉아버린다.

“오성아 흑 오성아.. 엄마 어떻게 사니···너 때문에 너 때문에 집안 꼴이 이게 뭐니? 흑 흑.”

가슴이 아팠지만 엄마가 우는 모습을 한 두번 본 것도 아니라서, 나는 추리닝바지와 추리닝 잠바를 주워 입고 안경을 찾아 썼다.

“죄송해요 엄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울고 있는 엄마를 뒤로한 채 거실로 나와 보니 집안에 온통 빨간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나 때문이다.’

난 양말도 신지 않고 슬리퍼를 신고 집밖으로 나왔다.

고무줄이 헐거워진 추리닝 바지가 자꾸 내려가는 바람에 한 손으로 바지 끝을 쥐고 있어야만 했다.

난 집단 따돌림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모든 걸 참고 묵묵히 기다려줬던 부모님에게 수능고사장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는데

아빠가 수능고사장 앞에서 하루 종일 밖에서 떨면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21평짜리 작은 집들로만 구성된 시영아파트, 나를 알아본 동네 사람들은 나를 피하거나 못 본 척 한다.

혐오스러운 내 외모 탓인지, 아니면 경찰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위험인물로 낙인을 찍혀 그런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일 지도 모른다.

게임비를 벌려고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장난 몇 번 친 것이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돌아왔다.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전과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다가 결국 사채까지 빌리며 피해자들에 대한 합의금과 배상금, 그리고 벌금을 물어냈다.

덕분에 난 감옥에 가지 않게 되었지만 집안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어찌되었든 삼류 대학이라도 가라고 참고 기다렸는데 수능고사장 근처에도 가지 않은 것이다.

아파트 단지 입구를 지나 상가쪽으로 가던 때였다.

“야 권오성! 너 오성이 맞지?”

뒤를 돌아보자 고등학교 때 나를 괴롭혔던 일진 무리들이 나를 부른다.

난 못본 척 고개를 돌리고 도망가려고 했지만 재빠른 녀석들이 어느새 나를 싸고돈다.

“야이 새끼야! 학교 그만두면 끝날 줄 알았냐?”

일진의 세 번 째인 재민이가 내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친다.

“왜 때려?”

나는 이제 학생도 아니고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대항하고서도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이 두려웠다.

“왜 때려? 다시 한 번 말해봐 엉 왜 때려?”

“퍽, 퍽”

얻어맞는 게 익숙해진 나는 습관처럼 몸을 움츠린다.

학교를 그만 두었으니 더 이상 맞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이놈들은 멈출지를 모른다.

손바닥과 니킥을 이용해 나를 때리던 재민이를 선진이가 말리고서야 구타는 멈췄다.

“야야 그만해, 수능도 끝났고 재미나게 놀자고 저런 오타쿠 새끼한테 신경쓰지 말고.”

목소리는 일진의 두 번 째인 선진이의 목소리다.

“놔봐! 이 새끼가 디질라고 어디서···”

독한 새끼, 재민이가 다시 달려든다. 나는 무서워 몸을 움츠렸다.

“야 냅둬! 오성이 건들이지 마라.”

일진의 대장겪인 강석찬이 말하자 재민이가 더 이상 달려들지 않는다.

재민이도 강석찬의 말은 두려워 한다.

“오성이 앞으로 우리 보면 도망가지 말고 응? 가끔씩 형님들 용돈 필요할 때···알지 응?”

강석찬이 몸을 숙여 내 볼을 툭툭 치면서 말한다.

난 두려워 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없다.

“니 동생 연지 많이 이뻐졌더라. 하하하. 야 가자!”

강석찬이 내 볼 따구를 때리고 간다. 김선진은 강석찬을 따라가고 재민이는 헐렁한 내 호주머니를 뒤진다.

“야이 새끼야 담부터 돈 가지고 다녀.”

“빡”

“아!”

재민이가 내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치고 간다.

나는 주저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하도 맞아서 인지 내 몸이 두툼해서 인지 어지간히 맞아서는 끄떡없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초등학생 꼬맹이들이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고무줄이 늘어난 추리닝 바지를 움켜쥐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파카에 코트,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추리닝에 양말도 없이 슬리퍼를 신은 나를 쳐다봤지만 그런 시선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창피한 건 순간이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저들은 그저 스쳐지나갈 사람들에 불과했다.

마침내 동네의 번화가에 도착해 2년 전에 생긴 15층짜리 상가 건물로 들어섰다.

막 닫히려고 하던 엘리베이터 잡아타자 이미 타고 있었던 남녀 커풀이 내 모습을 보고 인상을 쓴다.

“무슨 냄새 나는 것 같지 않아? 숨 쉬는 소리도 이상하고···”

여자는 구석을 보고 있는 나를 힐끔거리면서 남자에게 투덜거린다.

서둘러 온 탓에 숨이 거칠어진 모양이다.

“좀만 참아, 오타쿠 같은 새끼, 씻고나 다닐 것이지.”

커풀은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5층에서 내리고 나는 엔젤리너스 PC방이 있는 9층에서 내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텁텁한 공기, 컴퓨터의 먼지 낀 팬 소리가 들린다.

그제서야 막혀있던 숨통이 트여지는 기분이다.

“어서오세요.”

20대 초반정도 되는 남자 PC방 알바가 웃으면서 나를 반긴다.

밖에서는 몰라도 이곳에선 내가 소중한 존재였다.

“리버스”

내 말에 알바생이 비어 있는 개인 방으로 안내를 한다.

카드를 내밀 필요도 없다.

이곳에선 모두가 나를 알고 VIP로 대접한다.

매달 게임사용료 20만원이 포함된 PC방 결재금액 45만원의 6개월 치 270만원이 선 결재되어 있다.

개인 룸에 들어가자 알바생이 장갑 같은 장비를 착용하는 걸 도와준다.

원래 서서해야 하지만 나는 반쯤 누워서 할 수 있도록 의자를 다시 세팅한다.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알바생이 문을 잠그고 나가고 난 [리버스]에 로그인을 한후 가상현실 게임 [리버스] 전용 핼맷을 머리에 썼다.

지난 2년 동안 난 내 모든 것을 이 가상현실 게임 [리버스]에 투자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 되자. 걸레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사뿐하게 날아 [리버스]의 세계로 들어간다.

***

푸른 창공을 날아가는 기분은 압권이다.

구름사이를 뚫고 지나가면 구름의 작은 수증기 입자가 볼에 부딪치고 어느새 볼은 습기로 촉촉해 진다.

햇살이 뜨거울 때엔 구름 밑으로 날고 햇살이 따듯한 정도면 구름 위를 날아간다.

거센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날아가던 새들이 어마어마한 내 스피드에 놀라서 파닥 거린다.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다. 더 빨리 날아가야 했다.

[존명, 가이아스 사령관님 오셨습니까?]

[사령관님 빨리 와주세요 이제 데이모스가 내려와요. 제발..]

[오 신이여, 사령관님이 오셨어요 이제 우린 살았어요.]

내가 접속하자 수많은 음성이 귀에 쏟아진다. 실제로 한 말들이 캐릭터의 음성으로 변조되어 말을 하는 것이다.

500명으로 구성된 우리 콘키스타 길드는 2달 동안 최종 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이 그 마지막이 될 데이모스를 잡는 날이다.

리버스 게임이 나온지 2년, 난 리버스 게임 최강의 능력자가 되었다.

만렙들이 백여 명쯤 되지만 그들 모두를 합친 것 보다 내가 더 강했다. 크크크큭

한번만 휘두르면 수 십 마리의 마물들이 쓸려나가고 중급 레이드의 최강자 발록도 두 번의 칼질로 잡을 수 있는 최강의 5성검 발테리우스를 든 데다가 마법과 물리공격을 -200으로 만드는 전신갑옷, 모든 원소 속성에 대한 극대치의 파괴력과 저항력을 가진 반지와 펜던트, 그냥 필드에 두고 잠이 들어도 죽을 수 없는 극대치의 HP복원력, 나는 [리버스] 세계에선 왕이었고 신이었다.

[아악], [악]

길드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공격을 당했을 때 전기와 압박감으로 자극을 주는 장치인데 그저 장난으로 툭 치는 정도의 느낌이지만 강한 공격에는 꼬마아이가 세게 휘두르는 주먹에 맞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사령관님 급해요 빨리.]

이미 8배속으로 날고 있었지만 16배속으로 속도를 높였다. 그만큼 마나의 고갈 속도가 빨라진다.

간신히 도착했을 때엔 이미 하늘이 갈라지고 데이모스가 내려오고 있었다.

수많은 상급의 마물들이 하늘과 땅에 돌아다니고 300여명의 중급 이하의 유저들은 땅에서 150명 정도의 상급 유저들은 100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그리고 50여명의 최상급 유저들은 하늘 꼭대기에서 싸우고 있었다.

파이어볼, 아이스볼트, 썬더 스크리밍, 허리케인 스피어, 스톤 캐리어 등 모든 원소를 사용한 마법들이 번쩍 거리며 하늘을 향해 쏘아지고 있다. 지상의 몬스터들은 하급 캐릭이 맡고 중급은 하늘을 향해 마법원기와 마법이 걸린 활과 창을 쏟아 넣고 있다. 상급캐릭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급 몬스터와 발록과 같은 강력한 지상몬스터들을 상대한다.

최상급 캐릭들은 갈라진 이계의 균열로부터 등장하고 있는, 이미 얼굴까지 드러난 데이모스를 향해 총 공세를 펼치고 있다.

온몸이 시뻘건 지옥의 불로 타오르는 뿔과 꼬리, 날개가 달린, 사람형 악마의 모습, 크기가 1킬로는 될 만큼 거대한 몸뚱이가 하늘의 깨진 균열로부터 내려오고 있다.

그 거대한 모습만으로도 경이감과 공포를 느끼게 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급 몬스터들을 해치웠을 때 데이모스가 온전히 왕림을 마치고 완전한 형태가 되었다. 약점이 있었던 시간이 지나버린 것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크로스로 가슴에 엮여 있던 팔을 펼치자 2킬로는 될 만큼 커다란 날개가 함께 펄럭거린다. 그 바람에 최상급과 상급의 캐릭터들이 지푸라기처럼 날려가 흩어져 버린다.

나는 5성검 발테리우스 최강의 파괴력인 ‘대지의 검’기술로 데이모스의 온 몸을 미친 듯이 후려쳤지만 데이모스의 몸에 작은 생채기조차 남길 수 없었다.

데이모스의 검은 눈이 빨갛게 불타오르더니 두개의 붉은 광선이 대지를 한번 훑고 지나간다.

순식간에 중하급 캐릭 100여명이 검은 시체가 되어버린다. 그 시체들에 마물들이 달려들어 뜯어먹는다.

날려갔던 최상급과 상급 캐릭터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데이모스에게 달려들어 각자가 가진 최강의 기술로 데이모스를 공격한다. 몇몇 버서커형 캐릭은 데이모스의 몸에 칼을 꽂아 찢으려고 하지만, 데이모스가 거대한 팔로 자신의 몸에 붙은 캐릭터를 마치 귀찮은 파리떼처럼 쓸어버린다.

[후두두두], [아악], [으악]

버서커형 캐릭터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땅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리고선 데이모스는 송곳니가 달린 커다란 입을 벌려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기둥을 만들어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최상급 캐릭터들을 태워버린다.

[사령관님 80%가 죽었어요.]

[사령관님,], [가이아스님 제발]

이미 죽거나 죽어가는 길드원들의 비명소리가 귀에 들린다.

나는 5성검 발테리우스를 들고서 불기둥을 쏘고 있는 데이모스의 입을 향해 날아간다.

동시에 데이모스도 나를 발견하고 쇠도 녹일만큼 강렬한 화염을 내뿜는다.

뜨거웠다. 점점 점점 뜨거워져 내 투구는 녹아내리고 갑옷은 한 꺼플씩 벗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모든 길드원이 2달 동안 진행해온 최종 레이드였다.

2년 동안 모은 모든 아이템과 기술, 스탯이 초기화 되어도 데이모스를 박살내야만 했다.

“으아아아악”

난 결국 데이모스의 입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 5성검 발테리우스를 데이모스의 목안에 깊이 찔러 넣었다.

“폭열참”

발테리우스에 모든 마법과 마나를 끌어모아 최강의 기술인 폭열참을 시전하자.

[까아아아악 콰쾅 쿠쿵]

세상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폭발음이 들렸다.

잠시 후 지옥의 불처럼 타고 있는 거대한 데이모스의 입 안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최강의 데이모스를 잡은 것이다.

[역시 사령관님이셔!]

[가이아스 사령관님 존경합니다.]

[평생 따르겠습니다. 가이아스님.]

길드원들은 인사를 남기고 하나 둘씩 모두 떠나가버리고 나만 홀로 남아있었다.

불타오르는 데이모스와 수많은 몬스터 시체들 그리고 죽어버린 동지들, 석양이 지고 있는 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2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어 결국 끝까지 온 것이다.

성공했다는 만족감도 있었지만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걸 이뤘으니 이제 계획대로 이번 생을 마감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지고 있는 노을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삐리딩! 데이모스의 학살자 가이아스님 만을 위한 현실가상게임이 열립니다.]

갑자기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하늘에 글씨가 써진다. ‘Yes’, ‘No’의 버튼이 하늘에서 반짝 거린다.

‘가상현실게임인데 현실가상게임이라고? 도대체 무슨 말이야?’

습관처럼 손가락이 ‘yes’를 가르키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환한 빛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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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30 00:30 | 조회 : 99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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