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냥 그럴 뿐이였다. [판타지]

묘한 감각이였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삶의 끝이 정해진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5단계의 심경변화를 겪는다고 했다.

 그 첫번째는 부정, 잘못된 진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찾아오는 것은 분노, '왜 하필 내가'라는 생각과 함께 찾아온다고 했다.

 3번째가 타협,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어떻게든 연기시켜 볼려고 노력한다.

 4번째는 우울, 더이상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돼버렸을 때 극도의 상실감을 느끼며 심한 우울에 빠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용, 더이상 분노와 우울등을 느끼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 단계를 거친다. 나는 그럼 어느 단계를 겪고 있는 걸까.

 딱히 슬프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내게 내려진 시한부 판정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기간을 늘리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수용인 걸까.

 나는 이런 것조차도 평범한 사람들과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격는 그런 심경의 변화따윈 없었다.

 다른 이들보다 남은 시간이 많아서 일까. 13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래서 일까.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나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더 난리였다. 아직 20살도 채 되지 않은 애가 시한부인게 말이 되냐고. 13년 밖에 남지 않는 게 확실하냐고. 왜 하필 나냐고. 관리 잘하면 낫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다들 많이 슬퍼했다.

 어쩌면 시한부가 겪는다던 그 심경의 편화는 시한부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같이 겪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와서 웃었다. 내가 웃으니 다른 이들은 더욱 슬펴했다. 그냥 웃었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나를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나뭇가지처럼 대했다. 아직까지는 하나도 아픈 곳이 없어서 평소랑 똑같은 모습인데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현재에는 내가 그들보다 훨씬 강했고 훨씬 건강했다. 날 좀먹고 있는 이 저주는 죽기 직전까지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으니까.

 평소처럼 나는 행동했고 평소처럼 말했지만 그들은 나를 평소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게 난 좀 불편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오는 것이고 나는 그저 그게 눈에 보이게 됐을 뿐이였다.

 그냥 그럴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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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2-08 14:16 | 조회 : 810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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